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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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서울特別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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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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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 | |||||
| 국가 | 파일:Flag of South Korea (1984–1997).svg 대한민국 | ||||
| 행정 구역 | 25구 | ||||
| 청사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10 | ||||
| 단체장 | 오세훈(국민의힘)[1] | ||||
| 지리 | |||||
| 면적 | 606 km2 | ||||
| 기후 | 냉대 동계 소우 기후 (Dwa) | ||||
| 시간대 | 한국 표준시(UTC+9) | ||||
| 인문 | |||||
| 인구 | 9,310,000명(2025년 11월[2]년) | ||||
| 인구 밀도 | 15,412.39명/km2 | ||||
| 지역어 | 경기 방언 | ||||
| 상징 | |||||
| 시목 | 은행나무 | ||||
| 시화 | 개나리 | ||||
| 시조 | 까치 | ||||
| 마스코트 | 해치와 소울 프렌즈 | ||||
| 표어 | 동행·매력 특별시 서울 | ||||
| 지역 부호 | |||||
| 우편번호 | 01000 ~ 08999 | ||||
| 지역번호 | 02 | ||||
| ISO 3166-2 | KR-11 | ||||
| 웹사이트 | http://www.seoul.go.kr/ | ||||
서울특별시(서울特別市)는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문화·인문·정치·경제 중심지 역할을 하는 도시로, 경기도와 인천광역시까지 아우르는 수도권의 중심지 기능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특별시로 지정된 도시이고 종주 도시(제1의 도시) 기능을 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으나 서울의 역사는 백제의 첫 수도인 위례성을 시초로 한다. 삼국시대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백제, 고구려, 신라 순으로 번갈아 차지했으며, 고려 시대에는 왕실의 별궁이 세워진 남경(南京)으로 개칭하였다.
유교의 도성제에 따라 한성에 경복궁과 종묘, 사직, 육조거리와 시전을 세우고 이를 둘러싼 한양도성을 갖추어 수도로서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세도정치 때는 명문가들이 종로에 거주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거치며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500년 넘게 조선의 수도이자 중심으로 기능하였다.
1896년 대한제국 선포 이래 전차, 교각 등의 근대 기반시설이 건설되면서 변모하기 시작한 한성부는 1910년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경성부(京城府)로 개칭되고, 일제강점기 조선의 수도로서 용산, 영등포 등지로의 영역 확장을 겪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서울로 개칭되고 특별자유시가 되었으며 이후 1949년,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특별시 지위에 올랐고,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경제성장과 강남 개발로 행정구역 확장 등의 도시 정비를 거쳤으며,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 2010 G20 정상 회의 등의 국제행사도 다수 개최하였다.
서울은 중앙에 한강이 흐르고,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불암산, 인릉산, 청계산, 아차산 등의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면적은 605.23 km2로 대한민국 면적의 0.6%이고, 인구는 9,334,828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17%를 차지한다. 시청 소재지는 중구이며, 25개의 자치구가 있다. 인구가 가장 많은 구는 송파구이며 가장 인구가 적은 구는 중구다. 대한민국의 총생산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는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으로 2018년 서울의 지역 내 총생산은 422조 원이었다.
수도로서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전통 건축과 명소가 밀집해 있는 도시로서 경복궁을 비롯한 조선의 5대 왕궁이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 창덕궁, 종묘, 조선왕릉의 총 세 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근현대 건축 역시 수많은 명소가 자리해 있으며 대표적으로 YTN서울타워, 63빌딩, 롯데월드타워,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롯데월드, 코엑스, 파크원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오늘날 대한민국의 문화산업을 주도하는 도시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특별시에는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센터가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 여의도에는 국회의사당이 위치해 있다.
"서울"의 어원에 관해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나,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수도를 뜻하는 신라 계통의 고유어인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유력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때 한자 가차 표기인 서라벌 원래 의미에 관해서도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삼국사기》 등에서 서라벌을 금성으로도 표기했다는 점과 신라까지 포함하여 "설[새: 新, 金]-벌[땅: 羅, 城]", 즉 새로운 땅이라는 뜻으로 새기는 견해가 있다. 고대-중세 한국어에서 서라벌에 관한 정확한 발음을 확실하게 확인한 게 없으며, 그 발음은 훈민정음 창제 후 "셔ᄫᅳᆯ"이라는 표기가 등장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서울 한자 음차 표기로는 이십일도회고시, 한경지략, 증보문헌비고의 서울(徐菀), 동사강목, 북학의의 서울(徐蔚), 대동지지의 서울(徐鬱), 앙엽기의 서올(徐兀) 등이 있다. 이처럼 조선 시대 서울은 한양, 한성(漢城) 외에도 서울(셔ᄫᅳᆯ), 경도(京都), 경부(京府), 경사(京師), 경성(京城), 경조(京兆)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김정호의 수선전도에서 알 수 있듯 수선(首善)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이 가운데 한양과 한성을 제외하면 모두 수도를 뜻하는 일반 명사로서 '서울'이 원래는 서울 지역(사대문 안과 성저십리)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수도를 뜻하는 일반 명사였다는 방증이다.
서울이라는 단어는 한국어에서 일반명사로도 사용된다. 국어사전에서는 일반 명사 '서울'을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고, 경제, 문화, 정치 등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라고 정의하고 있다.
1910년 10월 1일에 일제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함에 따라 일제강점기에 서울은 주로 경성으로 불렸으나, 1945년 광복 후, 경성부에서 서울특별자유시로 개칭되면서, 경성 대신에 서울로 부르게 되었다.
| 서울특별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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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정 로마자 표기: | Seoul Teukbyeolsi |
| 공식 로마자 표기: | Seoul Special City |
서울 로마자 표기 'Seoul'은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서울을 세-울(Sé-oul)로 표기한 데서 비롯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서울을 'Séoul'로 표기하고, 스페인어권에서는 'Seúl'로 쓰나 모두 '세울'로 읽는다. 또, 영미권에서는 일반적으로 'Seoul'로 쓰고 영혼을 뜻하는 단어 'Soul'처럼 '소울'로 읽는다.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기간인 2006년 11월 13일 서울시 서브슬로건(Sub slogan)을 《Soul of Asia》로 지정하였다.
서울은 순우리말 지명이기 때문에 서울이라는 한자가 존재하지 않아서 이전 중국에서는 서울을 한청(중국어 간체자: 汉城, 정체자: 漢城, 병음: Hànchéng, 한성)이라 불렀고, 1988년 서울올림픽도 한성올림픽이라고 불렀으나, 2005년에 서울시가 서울과 발음이 유사한 '셔우얼'(중국어 간체자: 首尔, 정체자: 首爾, 병음: Shǒu'ěr, 수이)을 서울 공식적인 중국어 표기로 정하면서 점차 이 표기가 확산되어 가는 추세다. 일본어 표기는 '소우루'(ソウル)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청 문서에서, 서울특별시 영문 공식 명칭은 'Seoul Independent City'였다. 직역하면 "서울독립시"이나, 독립시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한국어 관점에 따라 "특별시"(영어: special city)로 번역한 게 굳어져 'Seoul Special City'로 되었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청 홈페이지에서 서울특별시 공식 영어 명칭은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이다.
| 서울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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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강 유역에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대표적 유적지로는 암사동 선사주거지, 면목동 유적이 있다. 현 강동구에 위치한 암사동 유적은 그 조성연대가 기원전 600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움집터와 빗살무늬 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에는 삼한 중 마한에 속하였다.
기원전 18년, 서울 동부 한강변에 백제의 수도 위례성이 세워졌다. 백제는 이후 500년 가까이 위례성을 수도로 삼았다.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곳을 점령한 후 하남위례성에 한산군(漢山郡)을, 한강 이북에는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였다.
551년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게서 서울과 한강 하류지역을 탈환했으나, 553년에 나제동맹을 깬 신라에게 공격당하여, 이 지역을 빼앗겼다. 이후, 신라는 옛 위례성 인근에 한강 유역을 관할하는 한산주의 치소(治所)를 설치하였다.
조선 태조는 1392년 개경에서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10월 남경으로 천도했다.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데에는 풍수사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나, 한양의 도시계획 자체는 유교 이념에 바탕을 둔 도성제에 따라 건설되었다. 이듬해 1395년에는 한성부로 개칭하고 5부(部) 52방(坊)의 행정 구역을 확정했다. 한성부의 지리적 범위는 사대문 안 도성과 도성 밖 10리(약 4 km)까지의 성저십리(城底十里)로 구성되었다. 1398년 숭례문을 완공하였고, 1404년 경복궁을 준공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 선조는 천도를 결정하고 의주로 피난하였다. 1592년 5월 일본군에게 점령된 한양은 이어진 혼란 속에서 경복궁, 창덕궁 등 주요 궁궐이 화재로 소실되는 일을 겪었다. 이후 1637년에도 병자호란 등 전란을 거치며,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후에 서서히 재건되었다.
구한말 시기 인천, 부산 등의 개항지와 더불어 한성에도 근대적인 기반시설의 도입이 이뤄졌다.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 전기를 처음으로 들여온 것을 시작으로, 1899년 서대문~청량리 단선전차를 처음 개통하였고, 1900년 한강 가교가 준공되었다. 1902년에는 한성전화소가 서울시내전화교환업무를 시작하였다.
1896년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는 정부와 함께 기존 법궁인 경복궁과 종각을 중심으로 하던 것에서 벗어나 경운궁을 중심으로 공간구조의 개편을 꾀하는 '한성 도시개조사업'을 실시하였다. 1895년부터 1903년까지 실시된 이 사업은 기존의 좁은 도로를 확장 정비하여 원활한 교통로 확보와 위생 개선을 동시에 꾀하였으며, 근대국가의 수도로 거듭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지위를 격하시켰으며, 조선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청사를 경성부에 두었다. 1911년 경성부의 하부기관을 5부 8면으로 구분하여 성 안은 동·서·남·북·중의 5부로, 성 밖은 용산·서강·숭신·두모·인창·은평·연희·한지의 8개 면으로 구분하였다.
1914년 면(面) 제도를 폐지하고 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용산·숭신·인창·한지·두모면의 일부를 경성부에 편입시키고, 명칭은 정(町)으로 바꾸었다. 1936년 고양군·시흥군·김포군의 일부 면들이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133.94km2로 확장되었다. 1943년에는 구제를 실시하여, 중구·종로구·동대문구·성동구·서대문구·용산구·영등포구 등 7개 구로 나누었다.
일제는 조선 개국 이후로 존재했던 서울의 역사성과 공간구조를 대대적인 정비계획에 따라 훼손시켰다. 1908년 전차선로 가설을 위해 성곽의 일부가 일본군에 의해 철거된 것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도성의 성문이나 성벽 일부를 훼손하고 신작로나 철로가 개설되어 나갔다.
이 시기 일제 조선의 행정중심지로서 근대 건축물이 다수 들어섰으며, 경성부청, 경성역, 경성제국대학, 조선은행 본점, 부민관, 명치좌 등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경성부는 서울시로 개칭되었다. 1946년 9월 28일에 경기도에서 분리하여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하였다.[3] 이는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로 다시 개칭되었으며, 고양군 뚝도면·숭인면·은평면과 시흥군 도림리·구로리·번대방리 등이 편입되어 시역이 268.35 km2로 확장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수도를 부산으로 이전하였고, 6월 2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처음으로 점령하여 임시수도로 삼았다. 9월 28일에 대한민국이 수복하였으나, 1.4 후퇴 때 다시 서울을 내주고 폐허가 되었다. 1951년 3월 14일에 다시 서울을 수복한 뒤 1953년 정전 협정까지 대한민국의 점령지로 남았다.
1962년 서울특별시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국무총리 직속기구가 되었고, 시장의 행정적 지위도 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 같은해 경기도 광주군·양주군·시흥군·김포군·부천군의 7면 54리를 편입하고 시역을 대규모로 확장하여 593.75 km2가 되었다. 이 때 이른바 강남 등 서울의 한강 이남 지역인 강남이 대거 편입되었고, 한강 이북에서는 동북부의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일대가 편입되었다.
1973년 도봉구와 관악구가 신설되어 11개구가 되었고, 605.33 km2로 시역이 확장되었다. 이후 기존의 행정구역을 분리하여 1975년 강남구, 1977년 강서구, 1979년 은평구, 강동구, 1980년 동작구, 구로구, 1988년 중랑구, 노원구, 양천구, 서초구, 송파구, 1995년 강북구, 광진구, 금천구가 신설되고 광명시의 일부 지역이 금천구로 편입되었다.
1988년 하계 올림픽, 2000년 서울 아시아·유럽 정상회의, 2002년 FIFA 월드컵, 2010년 G20 정상회의 등의 국제적인 행사를 개최하였다. 서울 주변의 인천과 경기도의 위성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거대한 도시 구조인 수도권이 형성되었다.
서울은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하는 분지 지형의 도시다. 시 중심으로 한강이 흐르고, 서울 도심에는 남산과 인왕산이 있다. 시 주변으로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구룡산, 우면산, 아차산 등이 서울을 둘러싸며 경기도 및 인천광역시와 자연적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서 간의 거리는 36.78 km, 남북 간의 거리는 30.3km이며, 면적은 약 605.25 km2이다. 서울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0.6%이며 남북한 면적의 0.265%이다. 서울특별시의 최북단은 도봉구 도봉동이고 최남단은 서초구 원지동이며 최동단은 강동구 강일동, 최서단은 강서구 오곡동이다.
서울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삼각산)을 최고점으로 한 고양·양주구릉과 경기평야가 만나는 지대에 있다. 주위에는 북한산(836m), 도봉산(717m), 인왕산(338m), 관악산(629m) 등 500m 내외의 산과 구릉이 자연성벽과 같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다. 광주산맥의 한 줄기인 도봉산은 백운대·인수봉·노적봉의 3개 봉우리가 솟아 있는 북한산과 이어져 있고, 그 산줄기는 다시 남으로 뻗어 북악산(342m)을 솟게 하였다. 그리고 북악산에서 동으로 뻗은 산줄기에 낙산(125m), 서로 뻗은 산줄기에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에서 뻗은 산줄기 중 남쪽으로 뻗은 것은 숭례문을 지나 남산(265m)·응봉(175m)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무악재의 안부(鞍部)를 지나 안산(296m)과 이어져 있는데 모두 구릉성 산지이다. 한강 남쪽에는 100m 이하의 구릉지가 펼쳐져 있고, 남쪽에 천연의 요새와 같이 서울의 외곽에 솟아 있는 관악산(629m), 청계산(618m), 구룡산(306m), 우면산(293m) 등이 있다. 그 외에 서울 동부에 불암산, 수락산, 망우산, 아차산 등이 있다.
서울의 중심에는 한강 하류가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하류이기 때문에 구배는 완만하며 물의 흐름은 느리나, 홍수 때는 상·중류의 유역 지방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 때문에 수위가 높아진다. 여의도는 상류로부터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된 하중도이다. 한강물은 서울시민의 수돗물(아리수)로도 공급되는데, 과거에는 뚝섬과 선유도 등에도 취수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잠실 수중보와 팔당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공급하고 있다.
한강은 일제강점기까지 별다른 정비가 없었다가, 1960년대 이후 한강을 정비하는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밤섬을 폭파한 뒤 여의도를 개발하였고,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잠실 개발계획으로 잠실섬과 부리도의 남쪽 물길(송파강)을 막아 육지로 만들었다. 1982년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둔치를 조성하고, 강변 양쪽에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놓았다. 2006년에는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한강 주변을 다시 재정비하였다.
한강 이외의 주요 하천으로는 불광천, 안양천, 중랑천, 청계천, 탄천, 양재천, 여의천, 홍제천 등이 있다.
주변에는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계속된 침식으로 북악산과 남산에서 산기슭이 발달되어 기복이 많은 지형이 되었다. 을지로에 있던 구리개, 조선일보사 앞의 황토현(黃土峴)이란 기복은 가로공사와 도시개발에 따라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으나, 현재도 율곡로·퇴계로·을지로 곳곳에서 기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기복 때문에 이 지역에는 고개 또는 현(峴)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지명에는 충무초등학교 부근의 풀무고개 또는 대장고개(治峴), 인현(仁峴)·종현(鍾峴)·진고개(泥峴), 계동(桂洞) 일대에 관상감현(觀象監峴), 가회동 일대에 맹현(孟峴)·홍현(紅峴)·안현(安峴)·송현(松峴)·배고개(梨峴) 등이 있다.
풍수설에 따라 북악산 기슭은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 인왕산 기슭은 덕수궁을 지었고, 궁궐 사이는 궁인(宮人)·귀족·고관 들의 저택지로 이용하였다. 이 지역의 침식으로 운반된 토사는 청계천 연안에 퇴적되어 평탄한 시가지를 형성하게 하였다. 따라서 도심지에서 가장 평탄한 곳은 청계천 북쪽의 연안으로 동대문에서 세종로 사이의 종로이며, 이곳에서는 지형의 기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삼각지로부터 해발고도 20m의 갈월동을 지나면 지형이 차차 높아져서 서울역 앞에 오면 더욱 높아지기 시작하고, 숭례문 부근은 해발고도가 40m 내외가 된다. 이곳은 분수계(해발 36.6m)가 되어, 동으로는 청계천이 동으로 흘러 중랑천과 합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