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위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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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위구조(圍魏救趙)는 위(魏)나라를 포위하여 조(趙)나라를 구한다는 뜻으로, 적의 공격을 받는 곳을 직접 구원하지 않고 적의 비어 있는 근거지를 쳐서 적이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전략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중국 전국 시대에 제(齊)나라의 손빈(孫臏)이 위나라 도읍을 쳐서 조나라 도읍 한단(邯鄲)의 포위를 풀게 한 데서 나왔다.[1] 병법서 《삼십육계》의 제2계이다.
힘센 적과 정면으로 맞붙는 대신, 적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을 공격해 적을 끌어내는 방법을 말한다. 《성어전》은 “적의 후방을 습격해 적병이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게 하는 전략”으로 풀이한다.[1] 오늘날에는 군사 전략뿐 아니라 협상, 경쟁, 스포츠에서 상대의 약한 곳을 찔러 내 쪽의 압박을 푸는 방법을 비유할 때도 쓴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는 올라 있지 않다. 중국어에서는 ‘圍魏救趙(wéi wèi jiù zhào)’라 하고, 일본어에서는 ‘囲魏救趙(いぎきゅうちょう)’라고 쓴다.
《사기(史記)》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나온다.[2] 손빈은 방연(龐涓)과 함께 병법을 배웠는데, 위나라 혜왕의 장군이 된 방연은 손빈의 재주를 시기해 그를 불러들인 뒤 두 다리를 자르는 형벌을 내리고 얼굴에 먹을 새겼다. 손빈은 몰래 제나라 사신을 만나 제나라로 갔고, 장군 전기(田忌)의 객이 되었다가 위왕(威王)의 군사(軍師)가 되었다.
그 뒤 위나라가 조나라를 치자 조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위왕이 손빈을 장수로 삼으려 하자 손빈은 형벌을 받은 몸이라며 사양했고, 전기가 장수가 되고 손빈은 군사가 되어 수레 안에 앉아 계책을 세웠다. 전기가 곧장 조나라로 가려 하자 손빈이 말렸다.
孫子曰:「夫解雜亂紛糾者不控棬,救鬬者不搏撠,批亢擣虛,形格勢禁,則自為解耳。今梁趙相攻,輕兵銳卒必竭於外,老弱罷於內。君不若引兵疾走大梁,據其街路,衝其方虛,彼必釋趙而自救。是我一舉解趙之圍而收獘於魏也。」田忌從之,魏果去邯鄲,與齊戰於桂陵,大破梁軍。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 때는 주먹을 쥐고 잡아당기지 않고, 싸움을 말릴 때는 함께 치고받지 않습니다. 급소를 치고 빈 곳을 찔러 형세가 막히게 하면 저절로 풀립니다. 지금 위나라(梁)와 조나라가 서로 싸우고 있으니, 날랜 병사와 정예는 모두 밖에서 힘을 다하고 늙고 약한 사람만 안에서 지쳐 있을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 도읍 대량(大梁)으로 내달려 그 길목을 차지하고 비어 있는 곳을 치느니만 못합니다. 그러면 저들은 반드시 조나라를 놓아두고 스스로를 구하러 올 것이니, 이는 한 번 움직여 조나라의 포위를 풀고 위나라를 지치게 하는 일입니다.” 전기가 이 말을 따르자 위나라 군대는 과연 한단을 떠나 돌아왔고, 제나라는 계릉(桂陵)에서 위나라 군대를 크게 깨뜨렸다.
여기서 ‘梁’은 위나라를 가리킨다. 위나라 혜왕이 도읍을 대량으로 옮겨서 ‘양(梁)’이라고도 불렀다. 같은 열전에 따르면 13년 뒤 손빈은 같은 방법으로 다시 대량으로 진군하고, 아궁이 수를 날마다 줄여 방연을 속인 끝에 마릉(馬陵)에서 방연을 죽게 했다.[2]
같은 사건을 다룬 《사기》 권46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의 서술은 조금 다르다. 여기서는 제나라 위왕 26년, 위나라 혜왕이 한단을 포위하자 단간붕(段干朋)이 조나라 도성 교외로 가지 말고 남쪽 양릉(襄陵)을 쳐서 위나라를 지치게 하자고 제안했다. 위왕은 그 계책을 따랐고, “10월에 한단이 함락되자 제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쳐서 계릉에서 크게 깨뜨렸다(十月,邯鄲拔,齊因起兵擊魏,大敗之桂陵)”고 적었다.[3] 〈손자오기열전〉에서는 위나라 군대가 한단을 놓아두고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전경중완세가〉에서는 한단이 이미 함락된 뒤이고 손빈의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1972년 산둥성 린이(臨沂)의 인췌산(銀雀山) 한나라 무덤에서 나온 죽간 《손빈병법(孫臏兵法)》에는 〈금방연(擒龐涓)〉 편이 있어, 계릉 싸움에서 방연을 사로잡았다고 전한다. 〈손자오기열전〉에서 방연이 마릉에서 스스로 목을 찔렀다고 한 것과 달라서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4][5]
‘圍魏救趙’라는 네 글자는 남송 때 이미 보인다. 진덕수(眞德秀)는 황제와 나눈 문답을 적은 글에서, 나아가 치는 군사 말고도 변경을 지키는 군사가 따로 있어야 한다고 아뢰며 “옛사람이 말한 이른바 위위구조라는 것을 보지 못하셨습니까(豈不見古人有所謂圍魏救趙者乎)”라고 하고 손빈의 일을 풀어 말했다.[6] ‘이른바’라고 한 것을 보면 이 무렵 이미 널리 알려진 말이었다.
명청 소설에서는 계략의 이름으로 자주 쓰였다.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30회에서 조조가 원소의 군량 기지 오소(烏巢)를 습격하자, 곽도(郭圖)는 “조조가 몸소 나갔으니 진영이 비었을 것이다. 그 진영을 치면 조조가 반드시 급히 돌아올 것이니, 이것이 손빈의 ‘위위구조’ 계책이다”라고 주장했다.[7] 정사 《삼국지》 〈장합전(張郃傳)〉에도 곽도가 “그 본영을 치면 형세상 반드시 돌아올 것이니, 이것이 구하지 않고도 저절로 풀리게 하는 방법(不如攻其本營,勢必還,此爲不救而自解也)”이라고 한 말이 있다. 그러나 원소가 이 말을 따라 조조의 진영을 공격했지만 함락하지 못했고, 그 사이 오소가 무너졌다.[8] 정사에는 ‘위위구조’라는 이름이 없고, 연의가 곽도의 말에 그 이름을 붙인 것이다. 위위구조가 언제나 통하는 계책은 아니라는 예이기도 하다.
- 《수호전(水滸傳)》 제63회에서는 양산박이 대명부(大名府)를 에워싸자, 관승(關勝)이 대명부를 구하러 가지 말고 양산박의 본거지를 치자고 하고, 채경(蔡京)이 “이것이 위위구조의 계책이니 바로 내 뜻에 맞는다”며 기뻐한다.[9]
오늘날 이 말이 널리 알려진 데는 병법서 《삼십육계(三十六計)》의 영향이 크다. 이 책은 승전계(勝戰計) 첫 묶음의 둘째 계책으로 위위구조를 두고 다음과 같이 풀었다.
共敵不如分敵,敵陽不如敵陰。
“모여 있는 적을 치는 것은 적을 나누어 치는 것만 못하고, 드러난 적을 치는 것은 숨은 적을 치는 것만 못하다.” 이어지는 해설(按語)은 “군사를 다스리는 것은 물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며 날카로운 적은 물길을 터 주듯 피하고 약한 적은 둑을 쌓듯 빈 곳을 막으라고 하고, 손빈이 전기에게 한 말을 인용한다.[10] 다만 해설에 인용된 손빈의 말은 “夫解雜亂糾紛者不控拳,救鬥者不搏擊”으로, 《사기》 원문의 “紛糾”, “控棬”, “搏撠”과 글자가 조금씩 다르다.
《삼십육계》는 흔히 오래된 병법서로 소개되지만, 저자와 엮은 시기를 알 수 없고 성립이 늦은 책이다. 지금 전하는 책은 1941년 무렵 산시성(陝西省) 빈현(邠縣)에서 발견된 필사본을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찍은 소책자가 바탕이며, 1961년 ‘숙화(叔和)’라는 필자가 《광명일보》에 소개하면서 알려졌다. 책에 실린 계책 이름들이 원·명·청 시대 통속 문학에 흔히 쓰이던 말이라는 점에서, 명나라 말 이전으로 올라가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11][12] 위에서 본 대로 ‘위위구조’라는 말은 남송 때 이미 쓰였으므로, 《삼십육계》가 이 말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말을 계책 이름으로 거두어들인 것이다.
- 상대 팀이 우리 진영 왼쪽으로 몰려들자, 감독은 수비를 보태는 대신 비어 있는 상대 오른쪽을 빠르게 공략하는 위위구조로 흐름을 돌렸다.
- 침해 사고 대응에서 공격자의 명령 서버를 먼저 차단하면, 감염된 단말을 하나하나 막느라 쫓아다니지 않아도 확산이 멈춘다. 일종의 위위구조이다.
- 경쟁사가 우리 주력 시장에 가격 공세를 퍼붓자, 회사는 경쟁사의 텃밭 시장에 신제품을 내놓아 상대가 물러서게 만들었다.
- ↑ 1.0 1.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圍魏救趙”,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7170, 확인날짜=2026-10-03.
- ↑ 2.0 2.1 2.2 사마천, 《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 ↑ 사마천, 《사기》 권46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 ↑ 참고: 왕신춘(王新春), “银雀山汉简中最引人注目的两种兵法,揭开一段延续千年的历史公案”, 텅쉰뉴스(腾讯新闻)·《국가인문역사(国家人文历史)》, 2019-05-22, https://news.qq.com/rain/a/20190522A0FI63, 확인날짜=2026-10-03.
- ↑ 참고: 자이더팡(翟德芳), “银雀山汉墓竹简:破解千古之谜的考古发现”, 경제관찰망(经济观察网), 2024-05-21, https://www.eeo.com.cn/2024/0521/662237.shtml, 확인날짜=2026-10-03.
- ↑ 진덕수(眞德秀), 《서산선생진문충공문집(西山先生眞文忠公文集)》 권13.
- ↑ 나관중,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30회.
- ↑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17 〈위서·장합전(張郃傳)〉.
- ↑ 시내암(施耐庵), 《수호전(水滸傳)》(120회본) 제63회.
- ↑ 10.0 10.1 《삼십육계(三十六計)》 〈승전계(勝戰計)〉 제2계 ‘위위구조’.
- ↑ 슝젠(熊建), “《三十六计》:‘地摊文学’竟成了‘国学经典’(子曰诗云)”, 《인민일보 해외판(人民日报海外版)》, 2023-09-01, 제11면, http://paper.people.com.cn/rmrbhwb/html/2023-09/01/content_26014471.htm, 확인날짜=2026-10-03.
- ↑ 참고: 근이행지전습사(勤而行之传习社), “《三十六计》的渊源演变及其影响”, 소후(搜狐), 2018-11-03, https://www.sohu.com/a/272923931_558455,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