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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즈(Harrods)는 영국 런던 나이츠브리지의 브롬프턴 로드에 있는 고급 백화점이다. 1849년 찰스 헨리 해러드가 차와 식료품을 파는 작은 가게로 시작했으며,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이름난 백화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1]

매장 면적은 100만 제곱피트(약 9만㎡)가 넘고, 7개 층 330개 매장에서 생필품부터 사치품까지 판다. 한 해 방문객은 약 1,500만 명이다. 회사 표어는 라틴어 Omnia Omnibus Ubique(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어디에서나)이다.[1] 1985~2010년에는 이집트 출신 사업가 모하메드 알파예드가 소유했고, 2010년부터 카타르 국부펀드 카타르투자청(QIA)의 투자 회사 카타르 홀딩이 소유하고 있다.[2]

항목 내용
종류 백화점
위치 영국 런던 나이츠브리지, 브롬프턴 로드 87~135번지[3]
창업 1849년 (나이츠브리지 매장 기준), 찰스 헨리 해러드[1]
현재 건물 1901~1905년, 건축가 C. W. 스티븐스[3]
문화재 등급 2등급*(Grade II*) 등록 건축물, 1969년 4월 15일 지정[3]
규모 매장 면적 100만 제곱피트(약 9만㎡) 이상, 7개 층, 330개 매장[1]
연간 방문객 약 1,500만 명 (2010년 기준)[1]
표어 Omnia Omnibus Ubique[1]
소유주 카타르 홀딩 (카타르투자청 산하, 2010년~)[2]

찰스 헨리 해러드는 1824년 런던 남쪽 서더크의 버러 하이 스트리트에서 포목점을 시작했고, 1834년 동런던 케이블 스트리트로 가게를 옮겼다. 1836년에는 훔친 물건(건포도)을 사들인 혐의로 오스트레일리아 유형 7년을 선고받았으나, 지인들의 청원으로 런던 밀뱅크 감옥 수감으로 감형됐다.[4]

1849년 해러드는 지금의 나이츠브리지 자리에 방 한 칸짜리 가게를 열었다. 처음에는 점원 둘과 심부름하는 소년 하나를 두고 주로 차와 식료품을 팔았다. 가게는 꾸준히 커져 1880년 무렵에는 약품과 향수부터 옷과 음식까지 파는 백화점이 되었고, 부유한 손님들이 찾았다.[1] 1884년에는 매장 곳곳에 계산대를 두어 손님이 그 자리에서 값을 치르게 했고, 이듬해에는 승인된 손님에게 외상 거래를 허용했다.[5]

1883년 화재로 가게가 모두 탔다. 해러드 가문은 건축가 찰스 윌리엄 스티븐스(C. W. Stephens)에게 맡겨 같은 자리에 새 건물을 지었다. 테라코타 타일로 덮은 정면과 아르누보풍 창문, 바로크풍 돔을 갖춘 이 건물이 지금 해러즈의 모습이다.[1] 히스토릭 잉글랜드 기록에 따르면 브롬프턴 로드 쪽 정면은 1901~1905년에 지어졌고(처음에는 위쪽 4개 층이 고급 아파트였다), 뒤편 베이즐 스트리트 쪽은 1929~1930년에 다시 지었다. 건물은 1969년 4월 15일 2등급* 등록 건축물로 지정됐다.[3]

해러즈는 1889년 주식회사로 상장했다. 1890년대에는 은행과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고, 이국적인 애완동물 매장을 열어 1970년대까지 운영했다. 1898년에는 세계 최초의 에스컬레이터 가운데 하나를 매장에 설치했다.[1]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사치품 대신 군복과 낙하산, 랭커스터 폭격기 부품을 만들었다.[1]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와 알파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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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영국 백화점 그룹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가 해러즈를 사들였다. 1985년 모하메드 알파예드와 동생 알리가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를 6억 1,500만 파운드에 인수하면서 해러즈는 다시 비상장 회사가 되었다. 이 인수는 광업 대기업 론로(Lonrho)의 경영자 타이니 롤런드와 치열하게 경쟁한 끝에 이루어졌고, 롤런드의 문제 제기로 영국 통상산업부가 조사에 나섰다. 1990년 나온 조사 보고서는 알파예드 형제가 자신들의 가문 배경과 재산을 거짓으로 꾸몄다고 결론지었다.[1]

알파예드 형제는 1994년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의 나머지 사업을 다시 증시에 내놓고 해러즈만 남겼다. 2000년 무렵에는 공항과 크루즈선 QE2 안에도 매장을 냈다. 알파예드는 자기 흉상을 여러 개 둔 '이집트 홀'을 매장에 꾸미기도 했다.[1]

카타르 홀딩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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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8일 알파예드는 해러즈를 카타르 홀딩에 약 15억 파운드에 팔았다. 매각 대상에는 부동산 회사 해러즈 에스테이츠와 전세기 사업 등 해러즈 그룹 전체가 포함됐다. 몇 달 전까지 직원들에게는 회사를 팔지 않는다고 해 왔다. 알파예드는 은퇴하며 명예 회장을 맡았다.[2] 당시 직원은 약 4,000명이었다.[1]

시기 소유·지배 비고
1849~1889 해러드 가문 찰스 헨리 해러드 창업[1]
1889~1959 상장 주식회사 1889년 주식 공개[1]
1959~1985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 백화점 그룹이 인수[1]
1985~2010 알파예드 형제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 인수(6억 1,500만 파운드), 1994년 해러즈만 분리 보유[1]
2010~ 카타르 홀딩 (카타르투자청) 약 15억 파운드에 인수[2]
연도 사건
1824 찰스 헨리 해러드, 서더크에서 포목점 시작[4]
1849 나이츠브리지에 가게를 엶[1]
1883 화재로 매장 소실[1]
1889 주식회사로 상장[1]
1893 해러즈 은행 설립[6]
1898 에스컬레이터 설치[1]
1901~1905 지금의 브롬프턴 로드 정면 건물 완공[3]
1959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가 인수[1]
1969 2등급* 등록 건축물 지정[3]
1983 IRA 차량 폭탄 테러로 6명 사망[7]
1985 알파예드 형제가 인수[1]
1989 고객 복장 규정 도입[1]
1993 IRA 폭탄 테러로 4명 부상[1]
2000 왕실 납품 허가(로열 워런트) 갱신 포기[1]
2005 다이애나·도디 추모 동상 공개[8]
2010 카타르 홀딩에 매각[2]
2018 추모 동상 철거, 알파예드에게 반환[9]
2024 BBC가 알파예드의 성폭력 의혹 보도[10]

IRA 폭탄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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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2월 17일 오후, 해러즈 옆 골목에 세워 둔 차량 폭탄이 터져 경찰관 3명과 시민 3명이 숨지고 75명이 다쳤다. 경찰은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을 범인으로 보았다. 폭발 약 45분 전 암호화된 경고 전화가 걸려 왔고, 거리는 크리스마스 쇼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7] 1993년에는 매장 밖 쓰레기통에 놓인 폭탄이 터져 4명이 다쳤다.[1]

해러즈는 1989년 고객 복장 규정을 만들어 하이컷·버뮤다 반바지, 수영복, 사이클 반바지, 슬리퍼 차림의 입장을 막아 논란을 빚었다.[1] 2023년 기준으로는 별도의 복장 규정은 없고 운동복과 반바지도 입장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차림이 적절하지 않은 사람의 입장을 거절할 권리는 남겨 두었다.[11]

왕실 납품 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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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즈는 오랫동안 영국 왕실 납품업체 인증(로열 워런트)을 받아 왔다. 그러나 알파예드는 2000년 여왕과 찰스 왕세자가 몇 년 동안 해러즈에서 물건을 사지 않았다며, 왕실 문장을 계속 내거는 것은 소비자를 속이는 일이라며 워런트를 갱신하지 않았다.[1] 이는 아들 도디의 죽음을 두고 알파예드가 왕실을 비난해 온 일과 맞물려 있었다.[9]

다이애나·도디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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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알파예드의 아들 도디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뒤, 알파예드는 해러즈 안에 두 사람의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1] 2005년 9월에는 해러즈의 예술 고문 빌 미첼이 만든 청동상 '무고한 희생자들'(Innocent Victims)을 공개했다. 알파예드는 두 사람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프랑스 수사 당국은 과음하고 과속한 운전기사 앙리 폴에게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었다.[8] 카타르 홀딩 인수 뒤에도 남아 있던 이 동상은 2018년 1월 철거되어 알파예드에게 돌아갔다. 해러즈는 켄싱턴 궁전에 공식 다이애나 동상이 세워지게 된 것을 이유로 들었다.[9]

알파예드 성폭력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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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BBC는 다큐멘터리 《알파예드: 해러즈의 포식자》(Al-Fayed: Predator at Harrods)를 방송했다. BBC는 20명이 넘는 전 여성 직원에게서 알파예드에게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했다는 증언을 들었으며, 그가 해러즈를 소유한 동안 회사가 이를 막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덮는 데 가담했다는 증거를 모았다고 보도했다. 피해를 주장하는 장소는 런던의 해러즈 사무실과 파크 레인 아파트, 파리의 리츠 호텔과 빌라 윈저, 생트로페, 아부다비 등이었다. 알파예드는 방송 1년 전인 2023년 94세로 숨졌다.[10]

알파예드를 향한 의혹은 생전에도 있었다. 1995년 《배니티 페어》, 1997년 ITV, 2017년 채널 4가 성추행 의혹을 보도했고, 2008년에는 15세 소녀가 경찰에 신고했으나 기소로 이어지지 않았다.[10] 해러즈의 현 소유주는 의혹에 "몹시 경악했다"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했고, 2023년 7월부터 피해를 주장하는 전 직원들과 합의를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10] 2024년 10월 해러즈는 250명이 넘는 사람이 회사와 직접 배상 합의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고,[12] 2025년 3월에는 1인당 최대 38만 5,000파운드와 치료비를 지급하는 배상 제도를 열었다. 2025년 7월까지 100명 넘게 이 제도에 신청했다.[13]

  • 해러즈 은행: 1893년부터 이어진 은행으로 예금, 주택담보대출, 금괴 판매, 송금 업무를 했다. 손실이 이어지자 2017년 핀테크 기업 탠덤(Tandem)이 인수하기로 했다.[6]
  • 해러즈 에스테이츠(부동산)와 에어 해러즈(전세기): 2010년 매각 때 해러즈 그룹의 일부로 함께 넘어갔다.[2][1]
  • 외부 매장: 2000년 무렵 공항과 크루즈선 QE2에 매장을 냈다.[1]
  • 락드 다운: 코로나19 봉쇄로 텅 빈 런던에서 헤어지기 직전의 커플이 해러즈의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이야기다. 더그 라이먼 감독은 해러즈를 설득해 실제 해러즈 금고에서 촬영했다.[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