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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구도(鷄鳴狗盜)는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사람과 개처럼 몰래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남을 속이는 하찮은 재주나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중국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 진(秦)나라 소왕(昭王)에게 죽게 되었을 때 이런 재주를 가진 식객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데서 유래한다.[1]

두 가지 방향으로 쓰인다. 하나는 ‘보잘것없는 잔재주, 또는 그런 재주밖에 없는 비루한 무리’라는 낮잡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하찮아 보이는 재주도 쓰일 데가 있다’는 뜻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앞의 뜻으로 풀이하고,[1] 대만 교육부 《성어전》도 “비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나 비천한 재주”, 나아가 “비열한 사람이나 일”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2] 《일본국어대사전》은 두 뜻을 함께 싣는다.[3] ‘계명구도지도(鷄鳴狗盜之徒)’, 순서를 바꾼 ‘구도계명(狗盜鷄鳴)’이라고도 한다. 중국어에서는 ‘雞鳴狗盜(jī míng gǒu dào)’로 쓴다.

《사기(史記)》 권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나온다.[4] 맹상군 전문(田文)은 제나라의 왕족으로, 신분을 가리지 않고 식객을 받아들여 수천 명을 거느렸다. 제 민왕(湣王) 25년,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을 불러 재상으로 삼으려 했으나, 맹상군은 제나라 사람이니 반드시 제나라를 먼저 생각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바꾸어 그를 가두고 죽이려 했다.

孟嘗君使人抵昭王幸姬求解。幸姬曰:「妾願得君狐白裘。」此時孟嘗君有一狐白裘,直千金,天下無雙,入秦獻之昭王,更無他裘。孟嘗君患之,遍問客,莫能對。最下坐有能爲狗盜者,曰:「臣能得狐白裘。」乃夜爲狗,以入秦宮臧中,取所獻狐白裘至,以獻秦王幸姬。幸姬爲言昭王,昭王釋孟嘗君。孟嘗君得出,即馳去,更封傳,變名姓以出關。夜半至函谷關。秦昭王後悔出孟嘗君,求之已去,即使人馳傳逐之。孟嘗君至關,關法鷄鳴而出客,孟嘗君恐追至,客之居下坐者有能爲鷄鳴,而鷄齊鳴,遂發傳出。出如食頃,秦追果至關,已後孟嘗君出,乃還。始孟嘗君列此二人於賓客,賓客盡羞之,及孟嘗君有秦難,卒此二人拔之。自是之後,客皆服。

맹상군은 소왕이 아끼는 후궁에게 사람을 보내 풀려나게 해 달라고 청했다. 후궁은 맹상군의 호백구(狐白裘,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로 지은 갖옷)를 달라고 했다. 값이 천금이고 천하에 둘도 없는 옷이었으나 이미 진나라에 들어올 때 소왕에게 바쳐 다른 것이 없었다. 맹상군이 식객들에게 두루 물었지만 대답하는 이가 없었는데, 맨 아랫자리에 있던 좀도둑질을 잘하는 자가 “제가 호백구를 구해 오겠습니다” 하고, 밤에 개처럼 진나라 궁궐 창고에 숨어들어 바쳤던 호백구를 훔쳐 왔다. 후궁이 이것을 받고 소왕에게 말해 주어 맹상군은 풀려났다.

맹상군은 곧바로 말을 달려 달아나면서 통행증을 고치고 이름을 바꾸어 관문을 나가려 했고, 한밤중에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다. 소왕은 맹상군을 놓아준 것을 후회하고 역마를 달려 뒤쫓게 했다. 관문의 법은 닭이 울어야 나그네를 내보내게 되어 있었다. 추격군이 닥칠까 두려워할 때 아랫자리의 식객 가운데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울음소리를 내자 근처의 닭들이 일제히 따라 울었고, 관문이 열려 맹상군 일행은 빠져나갔다. 밥 한 끼 먹을 무렵이 지나 진나라 추격군이 관에 이르렀으나 이미 늦었다. 처음 맹상군이 이 두 사람을 빈객으로 들였을 때 다른 빈객들은 모두 이들과 같은 줄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했지만, 이 일이 있은 뒤로는 모두 탄복했다.[4] 《세계대백과사전》은 이 일을 기원전 299년의 일로 적는다.[5]

나무위키 등에는 맹상군이 평소 식객들에게 재주를 물었다거나, 탈출 뒤 이 식객들이 상등 숙소인 대사(代舍)에 배정되어 생선과 수레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으나, 《사기》에는 그런 대목이 없다. 전사(傳舍)·행사(幸舍)·대사로 식객의 대우를 나눈 이야기는 같은 열전의 풍환(馮驩) 대목에 나오는 것으로, 칼자루를 두드리며 “밥상에 생선이 없다”, “나갈 때 수레가 없다”고 노래한 풍환을 차례로 옮겨 준 일이다.[4]

네 글자 형태와 평가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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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鷄鳴狗盜’라는 네 글자는 《한서(漢書)》 권92 〈유협전(游俠傳)〉 서문에 이미 보인다. 전국 시대 위의 신릉군, 조의 평원군, 제의 맹상군, 초의 춘신군이 다투어 유협을 자처하며 “닭 울음 흉내나 개 도둑질을 하는 자까지 빈객의 예로 대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雞鳴狗盜,無不賓禮)”는 것이다.[6] 당나라 사마정(司馬貞)의 《사기색은(史記索隱)》은 〈맹상군열전〉의 찬(述贊)에서 “계명구도와 위자·풍환(鷄鳴狗盜,魏子、馮暖)”이라 하여 맹상군 식객의 대표로 꼽았다.[7]

이 말을 낮추는 뜻으로 굳힌 글로 북송 왕안석(王安石)의 〈독맹상군전(讀孟嘗君傳)〉이 유명하다.

世皆稱孟嘗君能得士,士以故歸之,而卒賴其力,以脫於虎豹之秦。嗟乎!孟嘗君特雞鳴狗盜之雄耳,豈足以言得士?不然,擅齊之強,得一士焉,宜可以南面而制秦,尚何取雞鳴狗盜之力哉?夫雞鳴狗盜之出其門,此士之所以不至也。

[8]

“세상에서는 모두 맹상군이 선비를 잘 얻었고, 그래서 선비들이 그에게 모였으며, 끝내 그 힘으로 범과 표범 같은 진나라에서 벗어났다고 칭송한다. 아, 맹상군은 계명구도의 우두머리일 뿐이니 어찌 선비를 얻었다고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강한 제나라를 쥐고서 참된 선비 한 사람만 얻었어도 천하의 임금이 되어 진나라를 제압했을 것인데, 어찌 계명구도의 힘을 빌렸겠는가. 계명구도의 무리가 그 문에서 나왔기에 참된 선비가 오지 않은 것이다.” 90자가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글은 청나라의 문장 선집 《고문관지(古文觀止)》에도 실려 널리 읽혔다. 반면 심괄(沈括)은 《몽계필담(夢溪筆談)》 권25에서 어떤 일화를 전하며 “계명구도도 모두 쓰일 데가 있다는 말은 참으로 그렇다(雞鳴狗盜皆有所用,信有之)”고 하여, 하찮은 재주의 쓸모를 말하는 뜻으로도 쓰였다.[2]

한국 문헌의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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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조 37년(1604)의 한 상소는 《주역》의 “소인은 쓰지 말라”를 풀이하며 나라를 세우는 초기에는 인재를 여러 길로 써서 “계명구도까지 모두 거두지만(雞鳴狗盜,無不俱收)” 나라가 안정되면 소인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9]
  • 인조 4년(1626) 성균관 관련 상소에서는 성균관 유생의 공궤가 아랫사람들에게 좌우되는 현실을 두고 “옛날 맹상군은 계명구도의 선비를 기르면서도 봉읍의 정당한 수입으로 먹였지 빼앗아 먹이지 않았다(昔者孟嘗君養雞鳴狗盜之士,猶以邑入之正,而不以攫挐而啗之)”고 비판했다.[10]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鷄 계 닭 닭
鳴 명 울다 울음소리를 흉내 냄
狗 구 개 개처럼
盜 도 훔치다, 도둑 좀도둑질
  • 그 해커 집단은 계명구도의 잔재주로 몇 번 이름을 알렸을 뿐, 제대로 된 보안 연구 성과는 없었다.
  • 쓸데없어 보이던 옛 스크립트 하나가 장애를 막아 주었으니, 계명구도도 쓰일 데가 있는 법이다.
  • 계명구도의 무리만 곁에 두면 참된 인재는 찾아오지 않는다.
  • 《사기》에 따르면 맹상군은 진나라를 빠져나와 조(趙)나라를 지날 때, 구경 나온 조나라 사람들이 “설공(薛公)이 헌칠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자그마한 사내로구나(乃眇小丈夫耳)” 하고 비웃자 성을 냈고, 따르던 식객들이 수레에서 내려 수백 명을 베어 죽이고 한 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떠났다.[4]
  • 일본어에서는 ‘鶏鳴狗盗(けいめいくとう)’라고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야다 소운(矢田挿雲)의 《에도에서 도쿄로(江戸から東京へ)》(1921)를 든다.[3]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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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도계명(狗盜鷄鳴): 계명구도와 같은 뜻.[2]
  • 서절구투(鼠竊狗偸): 쥐나 개처럼 몰래 훔침. 좀도둑질. 《성어전》이 가까운 말로 든다.[2]
  • 식객(食客): 세력 있는 집에 얹혀 지내며 문객 노릇을 하던 사람.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계명구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3%84%EB%AA%85%EA%B5%AC%EB%8F%84, 확인날짜=2026-09-26.
  2. ↑ 2.0 2.1 2.2 2.3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雞鳴狗盜”,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474,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일본대백과전서(日本大百科全書)》, “鶏鳴狗盗”,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B6%8F%E9%B3%B4%E7%8B%97%E7%9B%97, 확인날짜=2026-09-26.
  4. ↑ 4.0 4.1 4.2 4.3 사마천, 《사기》 권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5. ↑ 《세계대백과사전(世界大百科事典)》(구판) ‘맹상군(孟嘗君)’ 항목 중 “鶏鳴狗盗”의 언급,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B6%8F%E9%B3%B4%E7%8B%97%E7%9B%97, 확인날짜=2026-09-26.
  6. ↑ 반고(班固), 《한서》 권92 〈유협전(游俠傳)〉.
  7. ↑ 사마정(司馬貞), 《사기색은(史記索隱)》 〈맹상군열전〉 술찬(述贊).
  8. ↑ 왕안석(王安石), 〈독맹상군전(讀孟嘗君傳)〉, 《왕임천집(王臨川集)》 권71; 《고문관지(古文觀止)》 권11.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73권, 선조 37년 4월 24일 갑진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704024_003, 확인날짜=2026-09-26.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14권, 인조 4년 10월 26일 을축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pa_10410026_003,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