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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삼굴(狡兔三窟)은 교활한 토끼는 숨을 굴을 세 개 파 놓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교묘하게 잘 숨어 재난을 피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중국 전국 시대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의 식객 풍훤(馮諼)이 한 말에서 나왔다. ‘狡兎三窟’로도 적는다.

위기에 대비해 몸을 피할 곳이나 대책을 여러 겹으로 마련해 둔다는 뜻으로 쓴다. 한국에서는 앞일에 대비하는 지혜라는 긍정적인 뜻으로 인용되는 경우가 많고, 투자의 분산이나 비상 계획을 설명할 때도 자주 끌어 쓴다. 한편 ‘교활한(狡)’ 토끼라는 말에서 보듯, 제 한 몸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사람을 꼬집는 뜻으로도 쓰인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교활한 토끼는 몸을 숨길 굴이 세 곳 있다. 몸을 숨길 곳이 여러 곳이거나 화를 피할 준비가 여러 가지임을 비유한다”고 풀이한다.[2]

《전국책》의 풍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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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戰國策)》 〈제책 4(齊策四)〉에 나온다.[3] 가난한 풍훤은 맹상군의 식객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좋아하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다”고 해 푸대접을 받았다. 뒤에 맹상군이 영지 설(薛)에 가서 빚을 거두어 오라고 하자, 풍훤은 맹상군의 명이라 속이고 빚 문서를 모두 불태웠다. 그러고는 “댁에 적은 것을 사 오라 하셨는데, 댁에 드문 것은 의(義)뿐이라 의를 사 왔다”고 했다. 맹상군은 불쾌해했다.

한 해 뒤 맹상군이 제나라 왕에게 재상 자리에서 쫓겨나 설로 돌아가자, 백 리 밖에서부터 백성들이 노인을 부축하고 아이를 이끌고 나와 그를 맞았다. 맹상군이 그제야 “선생이 의를 사 왔다는 것을 오늘에야 보았다”고 하자, 풍훤이 이렇게 말했다.

馮諼曰:「狡兔有三窟,僅得免其死耳。今君有一窟,未得高枕而臥也。請為君復鑿二窟。」

“교활한 토끼는 굴이 셋 있어서 겨우 죽음을 면할 뿐입니다. 지금 군께서는 굴이 하나뿐이니 아직 베개를 높이 하고 누우실 수 없습니다. 군을 위해 굴 두 개를 더 파 드리겠습니다.”

풍훤은 맹상군에게서 수레 50승과 금 500근을 받아 서쪽 양(梁)나라로 가서 혜왕(惠王)에게 “제나라가 대신 맹상군을 내쳤으니 먼저 맞아들이는 제후는 나라가 부유해지고 군대가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나라가 윗자리를 비워 두고 황금 천 근과 수레 백 승을 보내 맹상군을 세 번이나 청했지만, 풍훤은 맹상군에게 사양하게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제나라 왕은 두려워 사과하고 맹상군을 다시 재상으로 불렀다. 풍훤은 다시 선왕의 제기(祭器)를 청해 설에 종묘를 세우게 했다. 종묘가 서자 풍훤은 “세 굴이 다 되었으니 군께서는 이제 베개를 높이 하고 즐기십시오(三窟已就,君姑高枕為樂矣)”라고 했다. 《전국책》은 “맹상군이 수십 년 재상으로 있으면서 털끝만 한 화도 입지 않은 것은 풍훤의 계책 덕분이었다”로 이야기를 맺는다.[3] 여기서 고침안면(高枕安眠)과 통하는 ‘고침이와(高枕而臥)’라는 말도 함께 나온다.

《사기》와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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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인물의 이야기가 사마천의 《사기》 권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도 실려 있는데, 이름은 풍환(馮驩)으로 적혀 있고 줄거리가 꽤 다르다.[4]

  • 《사기》에는 ‘세 굴’ 이야기가 없다. 교토삼굴이라는 말은 《전국책》에서 나온 것이다.
  • 《사기》의 풍환은 “수레 한 대를 빌려 달라”고 하여 서쪽 진(秦)나라 왕을 찾아가, 진과 제는 “자웅(雌雄)을 다투는 나라”라며 맹상군을 데려가라고 설득한다. 그리고 곧바로 제나라 왕에게 가서 진나라 사신이 오기 전에 맹상군을 복직시키라고 부추긴다. 제나라 왕은 진나라 수레가 국경에 들어선 것을 확인하고 맹상군을 복직시키며 식읍 천 호를 더 주었다.
  • 《사기》에는 복직 뒤 맹상군이 떠났던 식객들의 얼굴에 침을 뱉겠다고 하자, 풍환이 “부귀하면 선비가 많고 빈천하면 벗이 적은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라며 식객을 예전처럼 대하라고 권하는 대목이 이어진다.

나무위키 등에는 풍훤이 위(魏)나라 왕을 만나 “자웅을 겨룬다”는 논리로 설득했다는 식으로 두 이야기가 섞여 소개되는 경우가 있다. 원문을 확인해 보면 ‘자웅’의 설득과 수레 한 대는 《사기》에서 진나라 왕을 상대로 한 이야기이고, 《전국책》에서 풍훤이 찾아간 곳은 양나라 혜왕이며 이때 받은 수레는 50승이다.

  • 《진서(晉書)》 권43 〈왕연전(王衍傳)〉: 서진의 재상 왕연(王衍)은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아우 왕징(王澄)을 형주, 일가 아우 왕돈(王敦)을 청주의 장관으로 내보내며 “형주에는 강수와 한수의 요새가 있고 청주에는 바다를 낀 험지가 있으니, 그대 둘이 밖에 있고 내가 여기 남으면 세 굴이 되기에 충분하다(足以為三窟矣)”고 했다. 《진서》는 “식자들이 그를 비루하게 여겼다(識者鄙之)”고 적었다.[5] 나라보다 제 몸의 안전을 먼저 챙기는 부정적인 예로 뒤에 자주 인용되었다.
  • 당나라 두보(杜甫)의 〈조부(雕賦)〉에 “삼굴교토(三窟狡兔)”, 송나라 소식(蘇軾)의 시에 “평생 토끼 세 굴은 만들지 않았다(平生不作兔三窟)”는 구절이 있다. 당나라 진도(陳陶)의 시와 《송사(宋史)》 〈하거지(河渠志)〉에는 ‘狡兔三穴’이라는 형태가 보인다. 《송사》의 예는 관리가 “제 몸 숨길 궁리(自為潛身之計)”를 한다고 비판하는 말이다.[2]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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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종실록》에는 중종 17년(1522) 풍기 군수 문계창(文繼昌)이 죽었다는 기사에, 1519년 겨울 조광조 일파가 쫓겨날 때 대사간으로 불려 올라가는 이항(李沆)에게 “사냥이 끝났다고 어찌 세 굴로 빠져나간 것이 없으랴(獵後豈無三窟漏)”라는 절구를 지어 보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사관은 이 일을 들어 그의 처신을 낮게 평가했다.[6]
  • 유몽인(柳夢寅)은 〈증금강산승종원서(贈金剛山僧宗遠序)〉에서 “날다람쥐는 재주가 다섯 가지라도 제 몸을 지키지 못하고, 교활한 토끼는 굴이 셋이라도 오히려 그물에 걸린다(鼯鼠五技,不護其身。狡兎三窟,猶罹於罝)”며 재주가 많아도 화를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7]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狡 교 교활하다, 날쌔다 꾀가 많다
兔 토 토끼 토끼 (兎는 같은 글자)
三 삼 셋 세 개
窟 굴 굴, 구멍 숨는 굴
  • 백업을 한 곳에만 두는 것은 굴이 하나뿐인 토끼와 같다. 교토삼굴의 지혜로 원본 외에 서로 다른 매체와 외부 장소에 사본을 둔다.
  • 그는 교토삼굴이라며 본업 말고도 수입원을 두세 가지 마련해 두었다.
  • 사고가 터질 때마다 빠져나갈 구멍부터 만들어 두는 그의 처세는 교토삼굴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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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토삼혈(狡兔三穴): 교토삼굴과 같은 말. 당나라 시와 《송사》에 보이는 형태.
  • 고침안면(高枕安眠): 베개를 높이 하고 편안히 잔다는 뜻으로, 근심 없이 편안히 지냄. 풍훤의 말 “高枕而臥”와 통한다.
  • 유비무환(有備無患):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음.
  •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함.
  • 반대 의미: 주투무로(走投無路): 달아날 길이 없음. 《성어전》이 반의어로 든다.[2]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교토삼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5%90%ED%86%A0%EC%82%BC%EA%B5%B4,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2.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狡兔三窟”,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512, 확인날짜=2026-09-27.
  3. ↑ 3.0 3.1 《전국책(戰國策)》 〈제책 4(齊策四)〉 “제인유풍훤자(齊人有馮諼者)”.
  4. ↑ 사마천, 《사기》 권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5. ↑ 《진서(晉書)》 권43 〈왕연전(王衍傳)〉.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44권, 중종 17년 2월 26일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1702026_003, 확인날짜=2026-09-27.
  7.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유몽인, 《어우집(於于集)》, 〈증금강산승종원서(贈金剛山僧宗遠序)〉, 자료ID ITKC_MO_0265A_0050_010_0150,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65A_0050_010_0150,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