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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무환(有備無患)은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1]

재난 대비, 국방, 건강 관리, 노후 준비처럼 일이 터지기 전에 대비해 두어야 하는 모든 일에 두루 쓰이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노년을 예비하다”, “지휘관은 휘하 군인들에게 유비무환의 자세를 당부했다”를 용례로 든다.[1]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쓰며, 일본어에서는 흔히 ‘備えあれば憂いなし(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라고 풀어서 말한다.[2]

《서경》 〈열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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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과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모두 《서경(書經)》 〈열명(說命)〉을 출전으로 든다.[1][3] 은(殷)나라 고종(高宗) 무정(武丁)이 꿈에서 본 사람을 찾아 재상으로 삼은 부열(傅說)이 임금에게 올린 말이다.

慮善以動,動惟厥時。有其善,喪厥善;矜其能,喪厥功。惟事事,乃其有備,有備無患。

[4]

“좋은 것인지 헤아린 뒤에 움직이되, 움직임은 그 때에 맞아야 합니다. 스스로 잘한다고 여기면 그 잘함을 잃고, 제 능력을 자랑하면 그 공을 잃습니다. 일마다 일에 맞게 하는 데에 대비가 있으니, 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습니다.”

다만 오늘날 전하는 〈열명〉 상·중·하 세 편은 이른바 ‘고문상서(古文尙書)’에 속하는데, 청나라 염약거(閻若璩)가 《상서고문소증(尙書古文疏證)》에서 이 고문 편들이 후대에 만들어진 것임을 논증한 뒤로 이를 위작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그래서 아래의 《좌전》 구절이 이 말의 더 믿을 만한 옛 용례로 함께 거론된다.

《춘추좌씨전》 양공 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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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62년, 진(晉)나라 도공(悼公)은 정(鄭)나라가 화친의 대가로 보낸 악사와 병거, 편종(編鐘), 여악(女樂) 가운데 절반을 신하 위강(魏絳)에게 내리며 “그대가 과인에게 융적(戎狄)과 화친하여 중원의 나라들을 바로잡게 했으니, 8년 동안 제후를 아홉 번 모은 것이 음악이 어우러지듯 조화로웠다. 이 음악을 그대와 함께 즐기고 싶다”고 했다. 위강은 공을 임금과 동료들에게 돌리며 사양하고 이렇게 말했다.[5]

抑臣願君安其樂而思其終也。……《書》曰:『居安思危。』思則有備,有備無患,敢以此規。

“신은 임금께서 그 즐거움을 편안히 누리시되 그 끝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 《서》에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대비가 있고, 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으니, 감히 이로써 간언합니다.” 도공이 “상은 나라의 법도이니 받으라”고 거듭 권하자, 위강은 비로소 받아들였고 《좌전》은 “위강이 이때 처음으로 금석(金石)의 음악을 갖게 되었으니 예에 맞는 일이었다(魏絳於是乎始有金石之樂,禮也)”고 적었다.[5] ‘금석의 음악’은 쇠로 만든 종과 돌로 만든 경(磬)으로 연주하는 음악이다.

위강이 《서》에서 인용했다고 밝힌 것은 ‘居安思危’ 네 글자이고, 이 구절은 오늘날의 《서경》에는 없다. 이 대목에서 ‘유비무환’과 함께 거안사위(居安思危)라는 성어도 나왔다.

위강은 이보다 앞서 양공 3년에 도공의 아우 양간(揚干)이 행군 대열을 어지럽히자 그 마부를 처형해 군법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6] 이 일은 뒷날 제갈량이 마속을 벨 때 “양간이 법을 어지럽히자 위강이 그 마부를 죽였다”며 끌어댄 고사로도 유명하다(→ 읍참마속).

나무위키 등에는 위강이 ‘금석의 노래를 불러 음악을 받았다는 표시만 했다’는 식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원문은 위강이 이때 비로소 금석의 음악을 갖추게 되었다는 뜻이다. 또 《서경》의 다른 이름을 ‘상서(商書)’라고 적은 경우도 보이는데, 《서경》의 다른 이름은 ‘상서(尙書)’이고 ‘상서(商書)’는 그 가운데 은나라 부분을 가리킨다.

당나라 때부터 공문서와 상소에 관용구처럼 쓰였다. 원진(元稹)은 〈이광안 가계 제서(李光顏加階制)〉에서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싸우게 하는 것은 그들을 버리는 것이요, 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어 갑작스러운 일에 대응할 수 있다(不教人戰,是謂棄之;有備無患,可以應卒)”고 썼다.[3]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태조 3년(1394) 곡산 부사(谷山府使) 전이(田易)가 도평의사사에 올린 글이 이른 예이다. 그는 당 태종의 안시성 공격을 예로 들며 곡산의 산성에 군량과 병기를 쌓아 두자고 청하면서 “유비무환은 성인의 가르침으로 전하는 것(有備無患,聖訓所傳)”이라고 했다.[7]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有 유 있다 있다
備 비 갖추다 대비, 준비
無 무 없다 없다
患 환 근심, 재앙 근심, 화
  • 백업을 서로 다른 장소에 이중으로 보관하고 복구 훈련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랜섬웨어에 대한 유비무환이다.
  • 장마철을 앞두고 배수로를 미리 정비한 덕에 큰 피해가 없었으니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 병원에서는 “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는 뜻으로 ‘유비무환’을 비틀어 쓰는 우스개가 있다고 전해진다. 비 오는 날에는 외래 환자가 줄어든다는 경험에서 나온 말장난이다.[8][9]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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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할 때에 위태로움을 생각함. 《좌전》의 같은 대목에서 나온 말.
  • 미우주무(未雨綢繆): 비가 오기 전에 둥지를 얽어 맴. 미리 대비함.
  • 곡돌사신(曲突徙薪): 굴뚝을 구부리고 땔나무를 옮김. 화재를 미리 막음. 《성어전》은 유비무환이 준비를 갖추는 데, 곡돌사신이 예방 조치를 취하는 데 무게가 있다고 구분한다.[3]
  • 반대 의미: 망양보뢰(亡羊補牢),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성어전》은 임갈굴정(臨渴掘井, 목마르고 나서 우물 파기), 임진마창(臨陣磨槍, 싸움에 임해서야 창 갈기)을 반대말로 든다.[3]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유비무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C%A0%EB%B9%84%EB%AC%B4%ED%99%98, 확인날짜=2026-09-26.
  2. ↑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備えあれば憂いなし”,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2%99%E3%81%88%E3%81%82%E3%82%8C%E3%81%B0%E6%86%82%E3%81%84%E3%81%AA%E3%81%97,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3.2 3.3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有備無患”,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40, 확인날짜=2026-09-26.
  4. ↑ 《서경(書經)》 〈상서(商書)·열명 중(說命中)〉.
  5. ↑ 5.0 5.1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11년.
  6. ↑ 《춘추좌씨전》 양공 3년.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 1월 28일 무진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aa_10301028_002, 확인날짜=2026-09-26.
  8. ↑ 참고: 박현준, “[병원돋보기] 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 부산일보, 2003-07-28,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30728000438, 확인날짜=2026-09-26.
  9. ↑ 참고: 김대철, “[칼럼] 사회 현상과 통계 그리고 의료정책”, 데일리팜, 2020-01-06, http://m.dailypharm.com/News/260624,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