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전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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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전지책(萬全之策)은 실패할 위험이 없는, 아주 안전하고 완전한 계책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만전지계(萬全之計)’, ‘만전책(萬全策)’이라고도 한다.[1]
후한 말 형주(荊州)를 다스리던 유표(劉表)에게 부하들이 올린 진언에서 나온 말이다.
조조(曹操)와 원소(袁紹)가 관도(官渡)에서 맞서고 있을 때, 원소는 유표에게 도움을 청했다. 유표는 돕겠다고 해 놓고 군사를 보내지 않았고, 조조를 돕지도 않은 채 형세만 지켜보았다. 그러자 종사중랑 한숭(韓嵩)과 별가 유선(劉先)이 유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故爲將軍計者,不若舉州以附曹公,曹公必重德將軍;長享福祚,垂之後嗣,此萬全之策也。
그러므로 장군을 위해 계책을 세운다면, 형주를 들어 조공(조조)에게 붙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조공은 반드시 장군을 크게 고마워할 것이니, 오래도록 복을 누리고 후손에게까지 물려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만전의 계책입니다.
장수 괴월(蒯越)도 같은 뜻으로 권했지만 유표는 의심하며 결단하지 못했다. 한숭을 조조에게 보내 형편을 살피게 했는데, 한숭이 돌아와 조조의 위세를 칭찬하자 유표는 그가 조조 편이 되었다고 의심해 죽이려 했다.[4] 유표는 끝내 조조에게 붙지 않았고, 그가 죽은 뒤 아들 유종(劉琮)이 조조에게 형주를 들어 항복했다.[5]
같은 장면은 범엽의 《후한서》 〈유표전〉에도 실려 있는데, 문장이 조금 다르다. 《후한서》에서는 “지금 이길 계책으로는 형주를 들어 조조에게 붙는 것만 한 것이 없으니(今之勝計,莫若舉荊州以附曹操)… 이것이 만전의 계책입니다(此萬全之策也)”라고 되어 있다.[5] 나무위키 등에서는 출전을 《후한서》 유표전으로 소개하는데, 그 자체는 맞지만 더 먼저 편찬된 진수의 《삼국지》(3세기)에 같은 말이 이미 있으며, 대만 《성어전》과 일본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도 《삼국지》 〈위서·유표전〉을 출전으로 든다.[2][3]
‘만전지계(萬全之計)’도 같은 무렵 문헌에 보인다. 《성어전》은 《삼국지》 〈촉서·방통전〉 배송지 주가 인용한 《강표전(江表傳)》의 “이는 참으로 위험한 길에서 나온 것이지 만전의 계책이 아니다(此誠出於險塗,非萬全之計也)”를 든다.[6]
- 백업만으로는 만전지책이 될 수 없다. 복구 훈련을 정기적으로 해 봐야 한다.
- 배포 전에 롤백 절차까지 마련해 두는 것이 만전지책이다.
- 큰 공사를 앞두고 날씨까지 고려해 만전지책을 세웠다.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만전지책”,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7%8C%EC%A0%84%EC%A7%80%EC%B1%85, 확인날짜=2026-10-11.
-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萬全之策”,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2977, 확인날짜=2026-10-11.
- ↑ 3.0 3.1 3.2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万全の策”,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7%E5%85%A8%E3%81%AE%E7%AD%96, 확인날짜=2026-10-11.
- ↑ 4.0 4.1 진수, 《삼국지》 권6 〈위서·유표전(劉表傳)〉.
- ↑ 5.0 5.1 5.2 범엽, 《후한서》 권74 하 〈유표전〉.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萬全之計”,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9028, 확인날짜=2026-10-1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萬全之策”·“萬全之計”,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64권, 세종 16년 6월 19일 갑자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606019_003, 확인날짜=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