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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보뢰(亡羊補牢)는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친다는 뜻으로,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주로 이미 일을 그르친 뒤에 뉘우쳐도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본래는 양을 잃은 뒤에라도 우리를 고치면 늦지 않다는 뜻, 곧 실패하더라도 빨리 뉘우치고 수습하면 늦지 않다는 뜻으로 쓰였다.[1]

같은 네 글자가 한국과 중국에서 거의 반대 방향으로 쓰이는 성어이다. 한국에서는 우리 속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와 같은 뜻으로, 일이 터진 뒤에야 허둥지둥 대책을 세우는 어리석음을 꼬집을 때 주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도 원래의 뜻을 밝히면서 “현재는 주로” 뒤늦은 후회의 뜻으로 쓰인다고 설명한다.[1]

반면 중국어에서는 지금도 본래 뜻대로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잘못을 저지른 뒤에라도 바로 고치면 아직 바로잡을 수 있음”으로 풀고, 예문에서도 “亡羊補牢,猶未為晚(양 잃고 우리 고쳐도 아직 늦지 않다)”처럼 격려하는 뜻으로 든다.[2]

《전국책(戰國策)》 〈초책 4(楚策四)〉에 나오는 장신(莊辛)의 말에서 나왔다.[3] 전국 시대 초나라의 장신은 양왕(襄王)이 주후(州侯)·하후(夏侯)·언릉군(鄢陵君)·수릉군(壽陵君) 같은 측근과 어울려 사치와 향락에 빠지자 이대로면 도읍 영(郢)이 위태롭다고 간했다. 양왕이 “선생이 노망이 났소?”라며 듣지 않자 장신은 조(趙)나라로 떠났다. 다섯 달 뒤 진(秦)나라가 언(鄢)·영·무(巫)·상채(上蔡)·진(陳) 땅을 빼앗았고, 양왕은 성양(城陽)으로 달아났다. 그제야 양왕이 장신을 불러 “과인이 선생의 말을 듣지 않아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하고 묻자, 장신이 답했다.

臣聞鄙語曰:「見兔而顧犬,未為晚也;亡羊而補牢,未為遲也。」臣聞昔湯、武以百里昌,桀、紂以天下亡。今楚國雖小,絕長續短,猶以數千里,豈特百里哉?

“속담에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돌아보아도 늦지 않고, 양을 잃고 나서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고 했습니다. 옛날 탕왕과 무왕은 사방 백 리 땅으로 일어섰고, 걸왕과 주왕은 천하를 가지고도 망했습니다. 지금 초나라가 작아졌다지만 긴 데를 잘라 짧은 데를 이으면 아직 수천 리이니, 어찌 백 리에 비하겠습니까?”

장신은 이 말로 양왕에게 다시 힘을 내라고 권했다. 곧 ‘망양보뢰’는 원래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바로잡으라’는 격려였다. ‘견토고견(見兔顧犬)’도 같은 구절에서 나왔다.

남송의 육유(陸游)는 〈추흥(秋興)〉에서 “국에 덴 사람이 냉채를 불어 먹는 것이 어찌 잘못이랴, 양 잃고 우리 고치는 것은 마땅한 이치(懲羹吹齏豈其非,亡羊補牢理所宜)”라고 읊었다.[2]

조선 시대 문헌에서도 망양보뢰는 대체로 본래 뜻대로 쓰였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亡羊補牢’가 5건 있다.

  • 선조 31년(1598), 윤두수(尹斗壽)는 임진왜란 뒤 경기 고을의 종자곡을 마련할 방책을 올리며 “양 잃고 우리를 고치는 것은 계책으로서 늦지 않다(亡羊補牢,計不爲晩)”고 했다.[4]
  • 고종 42년(1905) 을사조약 직후, 이도재(李道宰)는 조약을 맺은 대신들의 처벌을 청하는 상소에서 “옛사람이 ‘양 잃고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亡羊補牢,未爲晩也)’고 했다”며 지금부터라도 실력을 길러 자주독립을 이루자고 했다.[5]
  • 순조 27년(1827) 기사에는 “이제 양 잃고 우리를 고치는 것이 비록 때늦었다 하나(今者亡羊補牢,雖曰晩時)”라는 표현이 보여, ‘이미 늦었다’는 뉘앙스가 함께 쓰인 예도 있다.[6]

오늘날 한국어에서 뒤늦은 후회의 뜻이 굳어진 것은, 겉모습이 같은 속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속담 쪽은 처음부터 ‘이미 늦었다’는 비아냥이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亡 망 망하다, 잃다 잃다, 달아나다
羊 양 양 양
補 보 깁다 고치다, 수리하다
牢 뢰 우리, 감옥 가축 우리
  • 망양지탄(亡羊之歎)과는 다른 말이다. 망양지탄은 《열자(列子)》 〈설부(說符)〉에서 나온 말로, 갈림길이 너무 많아 달아난 양을 찾지 못하고 탄식한다는 데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라 진리를 얻기 어려움을 이른다.[7] ‘다기망양(多岐亡羊)’이라고도 한다. 소리가 같은 ‘망양지탄(望洋之歎)’은 《장자》의 하백 이야기에서 나온 말로, 넓은 바다를 보고 자기 힘이 미치지 못함을 탄식하는 것이다.
  • 중국어로 말하거나 중국 자료를 읽을 때는 망양보뢰가 ‘지금이라도 고치면 된다’는 긍정적인 뜻이라는 점에 주의한다.

다른 언어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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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어: 비슷한 상황을 ‘도로나와(泥縄)’라고 한다. 도둑을 잡고 나서야 묶을 새끼를 꼰다는 뜻으로, 일이 벌어진 뒤에 허둥지둥 대책을 세우는 것을 비꼰다.[8]
  • 개인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된 뒤에야 접근 권한을 점검하겠다니, 망양보뢰가 따로 없다.
  • 망양보뢰라지만 지금이라도 백업 체계를 갖추어 두면 다음 장애는 막을 수 있다.
  • 청나라의 필원(畢沅)은 시에서 네 글자의 순서를 뒤집어 “우리를 고치는 것은 양을 잃은 뒤이니, 일을 꾀함에 다시는 늦지 말라(牢補羊亡後,經營莫更遲)”고 썼다. 《성어전》은 이 ‘뇌보양망(牢補羊亡)’을 망양보뢰와 같은 말로 싣는다.[2]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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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 손을 써도 소용이 없음을 비꼬는 우리 속담.
  •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사람이 죽은 뒤에 약방문을 쓴다는 뜻으로, 때가 지난 뒤에 대책을 세움.
  • 견토고견(見兔顧犬):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부름. 같은 구절에서 나왔다.
  • 만시지탄(晩時之歎), 서제막급(噬臍莫及), 후회막급(後悔莫及): 때를 놓쳐 후회함.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망양보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7%9D%EC%96%91%EB%B3%B4%EB%A2%B0, 확인날짜=2026-09-26.
  2. ↑ 2.0 2.1 2.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亡羊補牢”,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482, 확인날짜=2026-09-26.
  3. ↑ 《전국책》 〈초책 4(楚策四)〉.
  4.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01권, 선조 31년 6월 24일 정축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106024_004, 확인날짜=2026-09-26.
  5.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46권, 고종 42년 12월 31일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za_14212031_001, 확인날짜=2026-09-26.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 29권, 순조 27년 5월 29일 갑진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wa_12705029_001, 확인날짜=2026-09-26.
  7.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망양지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7%9D%EC%96%91%EC%A7%80%ED%83%84, 확인날짜=2026-09-26.
  8.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泥縄”,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B3%A5%E7%B8%84,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