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침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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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침안면(高枕安眠)은 베개를 높이 하여 편안히 잔다는 뜻으로, 근심 없이 편안히 지냄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줄여서 ‘고침(高枕)’이라고도 한다.[1]
걱정거리가 있으면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베개를 높이 괴고 깊이 잠든다는 것은 바깥의 위협이 사라져 마음 놓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주로 “이제 고침안면할 수 있게 되었다”처럼 위험이나 근심거리가 해결된 상태를 나타내며, 반대로 “아직 고침안면할 때가 아니다”처럼 방심을 경계하는 말로도 쓴다.
같은 뜻으로 중국어에서는 ‘고침무우(高枕無憂)’를 가장 널리 쓰고, 옛 문헌에서는 ‘고침이와(高枕而臥)’, ‘고침안침(高枕安寢)’, ‘고침안와(高枕安臥)’ 등 여러 형태가 쓰였다.[2] 일본어에서는 ‘枕を高くして寝る(베개를 높이 하고 잔다)’라고 하며, 한자어 ‘高枕(こうちん)’도 쓴다.[3]
‘베개를 높이 하고 눕는다(高枕而臥)’는 말은 《전국책(戰國策)》에 두 번 나온다. 《성어전》은 이 두 대목을 ‘고침무우’의 말뿌리로 든다.[2]
전국 시대 진(秦)나라의 재상 장의(張儀)는 여섯 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에 맞서는 합종(合從)을 깨뜨리고 각 나라가 따로 진나라를 섬기게 하는 연횡(連橫)을 추진했다. 《전국책》 〈위책 1(魏策一)〉에 실린 장의의 유세에서, 그는 위나라가 사방이 평지로 트여 있어 남쪽으로 초와 손잡으면 제가 동쪽을 치고, 제와 손잡으면 조가 북쪽을 치는 ‘사분오열(四分五裂)의 땅’이라고 겁을 준 뒤 이렇게 말했다.[4]
為大王計,莫如事秦,事秦則楚、韓必不敢動;無楚、韓之患,則大王高枕而臥,國必無憂矣。
“대왕을 위해 계책을 세운다면 진나라를 섬기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진나라를 섬기면 초나라와 한나라가 감히 움직이지 못할 것이고, 초와 한의 걱정이 없어지면 대왕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고 누우실 수 있으며 나라에는 반드시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위왕은 “과인이 어리석어 앞서 계책을 잘못 세웠다”며 진나라의 동쪽 번국을 자처하고 하외(河外)의 땅을 바치겠다고 했다.[4]
같은 유세는 《사기》 권70 〈장의열전(張儀列傳)〉에도 거의 같은 문장으로 실려 있다. 《사기》는 그 앞뒤 사정을 더 자세히 적어, 장의가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의 재상이 되어 위왕에게 진나라를 섬기라고 거듭 권했으나 듣지 않자 몰래 진나라를 시켜 위나라를 치게 했고, 이어 진나라가 한(韓)나라 신차(申差)의 군대를 깨뜨려 8만 명의 목을 베자 제후들이 두려워 떠는 틈을 타 다시 유세했다고 한다.[5] 나무위키 등에는 위 애왕(哀王)이 한나라가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대목이 덧붙어 있기도 하나, 이는 《전국책》과 《사기》의 원문에는 없는 내용이다. 《전국책》은 이 임금을 ‘위왕’이라고만 적고, 《사기》는 ‘애왕’이라 적었다.
《한서(漢書)》 권94 〈흉노전(匈奴傳)〉에는 “북적(흉노)이 복종하지 않으니 중국은 베개를 높이 하고 편히 잘 수 없었다(故北狄不服,中國未得高枕安寢也)”는 말이 있고, 후한 왕충(王充)의 《논형(論衡)》 〈순고(順鼓)〉에는 ‘高枕安臥’가 보인다.[7][8] 한국어 표제어인 ‘高枕安眠’이라는 형태는 중국 문헌에서 드물다. 송나라 초 《태평광기(太平廣記)》 권358이 인용한 이야기에 이불 속의 사람이 “베개를 높이 하고 편안히 자고 있었다(被中人高枕安眠)”는 문장이 있지만 글자 그대로의 묘사이고,[9] 그 뒤로도 명청 시문에 드물게 보일 뿐이다. 중국어에서는 ‘高枕無憂’가 표준적인 형태로 굳었고, 《성어전》은 그 네 글자의 이른 용례로 《구오대사(舊五代史)》 권133 〈고계흥전(高季興傳)〉을 든다.[2]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高枕安眠’은 나오지 않고 ‘高枕而臥’가 4건 있다.[10] 1437년(세종 19년) 세종은 김종서에게 함경도 4진의 경계를 논하는 글을 내리면서 “용성(龍城)은 매우 요해처이니 관새로 삼으면 우리가 베개를 높이 하고 누울 수 있다(以爲關塞,則我可以高枕而臥)”는 주장을 들고, 용성을 경계로 삼으면 야인도 용성까지 내려와 살 것이라며 반박했다.[11]
‘高枕安眠’ 네 글자는 조선 문인의 글에서 보인다. 조우인(曺友仁)은 무기고가 새로 완성된 것을 기리는 시 〈영무고신성유영(營武庫新成有咏)〉에서 “빈틈없는 계책을 갖추었으니, 사십 고을이 베개를 높이 하고 편히 자리라(極知勝筭無遺策,高枕安眠四十州)”라고 읊었다.[12] 19세기 이상수(李象秀)도 〈한무제론(漢武帝論)〉에서 한 무제가 흉노를 친 일을 두고, 할아버지가 도둑에게 다치고 아버지가 욕을 당한 집안의 자손이 도둑을 물리쳐 “집안사람들이 베개를 높이 하고 편히 자게 되었다(家人高枕安眠)”는 비유를 들었다.[13]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高 | 고 | 높다 | 높이 하다 |
| 枕 | 침 | 베개 | 베개 |
| 安 | 안 | 편안하다 | 편안히 |
| 眠 | 면 | 자다 | 잠자다 |
- 취약점 패치를 모두 적용했다고 해서 고침안면할 수는 없다. 새로운 공격 기법은 계속 나온다.
- 이중화와 백업을 마친 뒤에야 운영팀은 고침안면할 수 있었다.
- 큰 빚을 다 갚고 나니 비로소 고침안면하게 되었다.
- 고침(高枕): 같은 말.[1]
- 고침무우(高枕無憂), 고침이와(高枕而臥): 베개를 높이 하고 근심 없이 누움. 중국에서 주로 쓰는 형태.
- 교토삼굴(狡兔三窟): 교활한 토끼는 굴을 셋 파 둔다는 뜻으로, 여러 겹으로 대비해 화를 피함. ‘고침이와’가 함께 나오는 고사이다.
- 유비무환(有備無患):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음.
- 태평무사(太平無事): 세상이 평화롭고 아무 일이 없음.
- 반대 의미: 전전반측(輾轉反側): 걱정으로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함. 《성어전》은 ‘危在旦夕’, ‘忐忑不安’을 반대말로 든다.[2]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고침안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3%A0%EC%B9%A8%EC%95%88%EB%A9%B4,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2.2 2.3 2.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高枕無憂”,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55,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高枕”,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AB%98%E6%9E%95, 확인날짜=2026-09-27.
- ↑ 4.0 4.1 《전국책(戰國策)》 〈위책 1(魏策一)〉 “장의가 진나라를 위해 연횡하여 위왕을 설득하다(張儀為秦連橫說魏王)”.
- ↑ 사마천, 《사기》 권70 〈장의열전(張儀列傳)〉.
- ↑ 《전국책(戰國策)》 〈제책 4(齊策四)〉 “제나라 사람 풍훤(齊人有馮諼者)”.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高枕安寢”,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088, 확인날짜=2026-09-27.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高枕安臥”,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4386, 확인날짜=2026-09-27.
- ↑ 《태평광기(太平廣記)》 권35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高枕安眠”(0건), “高枕而臥”(4건),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78권, 세종 19년 8월 6일 계해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908006_003, 확인날짜=2026-09-27.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조우인, 《이재집(頤齋集)》 〈영무고신성유영(營武庫新成有咏)〉, 확인날짜=2026-09-27.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상수, 《어당집(峿堂集)》 권15 〈한무제론(漢武帝論)〉,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