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학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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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학아세(曲學阿世)는 바른길에서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에게 아첨함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곡학(曲學)’은 학문을 굽힌다는 뜻이고, ‘아세(阿世)’는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이다. 학자나 전문가가 자신이 아는 진실을 굽혀 권력자나 여론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비판할 때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도 “자신의 학식을 왜곡하거나 거슬러 세속의 기호에 영합한다”고 풀이한다.[2] 중국어(qū xué ē shì)와 일본어(きょくがくあせい)에서도 같은 한자로 쓴다.
《사기(史記)》 권121 〈유림열전(儒林列傳)〉의 원고생(轅固生) 전에 나온다.[3] 원고생은 제(齊)나라 사람으로 《시경》을 전공해 경제(景帝) 때 박사가 되었고, 성품이 곧기로 이름났다. 도가를 숭상하던 두태후(竇太后)가 그를 불러 《노자》에 대해 묻자 “이것은 평범한 집안사람의 말일 뿐(此是家人言耳)”이라고 답했다가, 노한 태후에게 우리에 들어가 멧돼지를 찌르라는 벌을 받았다. 경제가 그가 곧은 말을 했을 뿐 죄가 없음을 알고 날카로운 병기를 빌려주어, 원고생은 한 번에 멧돼지의 심장을 찔러 살아났다.[3]
무제(武帝)가 즉위하자 원고생은 다시 현량(賢良)으로 부름을 받았다.
今上初即位,復以賢良徵固。諸諛儒多疾毀固,曰「固老」,罷歸之。時固已九十餘矣。固之徵也,薛人公孫弘亦徵,側目而視固。固曰:「公孫子,務正學以言,無曲學以阿世!」
“지금의 임금(무제)이 즉위하자 다시 현량으로 원고생을 불렀다. 아첨하는 유생들이 그를 시기하여 ‘원고는 늙었다’고 헐뜯으니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가게 되었다. 이때 원고생은 이미 아흔이 넘었다. 원고생이 부름을 받았을 때 설(薛) 사람 공손홍(公孫弘)도 부름을 받았는데, 곁눈질로 원고생을 보았다. 원고생이 말했다. ‘공손 선생, 바른 학문에 힘써 말하고,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하지 마시오.’”[3]
원고생의 말은 “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의 대구로, ‘정학(正學)’과 ‘곡학(曲學)’이 맞선다. 이 뒤의 네 글자가 성어로 굳었다.
원문에서 ‘세상(世)’은 권력자라기보다 세속의 풍조를 가리키지만, 뒤에는 권력자의 뜻에 맞추어 학설을 바꾸는 행위까지 넓게 가리키게 되었다. 《일본국어대사전》도 “시세나 권력자에게 아첨하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들도록 언동하는 것”으로 풀이한다.[5] 오늘날 한국어에서 흔히 쓰는 ‘어용학자(御用學者)’는 권력에 영합하는 학자를 가리키는 말로, 세속의 인기에 영합하는 경우까지 아우르는 곡학아세와 뜻이 겹치지만 초점이 조금 다르다.
중국 문헌에서는 《명사(明史)》 〈육찬전(陸粲傳)〉의 “남경 예부상서 황관은 곡학아세하며 헛된 말로 사람을 현혹한다(黃綰曲學阿世,虛談眩人)”처럼 상대를 탄핵하는 말로 쓰였다.[2]
고려 말의 윤소종(尹紹宗)은 이색(李穡)을 논하며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하고 거짓을 꾸며 이름을 낚는 자(曲學阿世,飾詐釣名者)”라고 했다. 이 말은 《태종실록》 태종 11년(1411) 6월 29일 기사에서 태종이 이색의 행장 내용을 반박하며 다시 끌어 썼다.[6] 불교를 좋아한 이색을 두고 성리학자들이 쓴 말이어서, 여말선초의 사상 대립을 보여 주는 용례이다.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曲 | 곡 | 굽다, 굽히다 | 바른 것을 굽히다 |
| 學 | 학 | 배우다, 학문 | 학문 |
| 阿 | 아 | 언덕, 아첨하다 | 아첨하다, 영합하다 |
| 世 | 세 | 세상, 대 | 세상 사람, 세속 |
- 광고주의 요구에 맞추어 보안 취약점의 위험도를 낮춰 발표한 보고서는 곡학아세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연구 결과를 정권의 입맛에 맞게 고치는 곡학아세의 풍조를 경계해야 한다.
- 원고생의 경고를 들은 공손홍은 뒤에 승상에 올라 평진후(平津侯)에 봉해졌다. 《사기》 〈유림열전〉은 공손홍이 《춘추》로 벼슬 없는 몸에서 삼공(三公)이 되자 “천하의 학사들이 바람에 쓸리듯 따랐다”고 적었다.[3]
- 일본에서는 1950년 5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가 연합국 전체와의 ‘전면 강화’를 주장한 난바라 시게루(南原繁) 도쿄대 총장을 “곡학아세의 무리(曲学阿世の徒)”라고 비난해 큰 논란이 되었다.[5] 《일본국어대사전》은 일본어의 첫 용례로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오리타쿠시바노키(折たく柴の記)》(1716년 무렵)를 든다.[5]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곡학아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3%A1%ED%95%99%EC%95%84%EC%84%B8, 확인날짜=2026-09-26.
-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曲學阿世”,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0617, 확인날짜=2026-09-26.
- ↑ 3.0 3.1 3.2 3.3 사마천, 《사기》 권121 〈유림열전(儒林列傳)〉.
- ↑ 4.0 4.1 사마천, 《사기》 권112 〈평진후주보열전(平津侯主父列傳)〉.
- ↑ 5.0 5.1 5.2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曲学阿世”,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B%B2%E5%AD%A6%E9%98%BF%E4%B8%96, 확인날짜=2026-09-2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21권, 태종 11년 6월 29일 무오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1106029_001,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