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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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제월(光風霽月)은 비가 갠 뒤의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뜻으로, 마음이 넓고 시원하여 아무 거리낌이 없는 인품을 비유하는 한자성어이다.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이 주돈이(周敦頤)의 인품을 평한 말에서 유래한다. ‘광제(光霽)’라고 줄여 말하기도 한다.[1][2]
북송의 시인 황정견은 성리학의 비조로 꼽히는 주돈이(호 염계 濂溪)의 거처를 노래한 〈염계시(濂溪詩)〉를 짓고, 그 서문에서 주돈이의 사람됨을 이렇게 평했다.
舂陵周茂叔,人品甚高,胸中灑落,如光風霽月。
“용릉(舂陵)의 주무숙은 인품이 매우 높고 가슴속이 시원스러워 맑은 바람, 갠 달과 같다.” 무숙(茂叔)은 주돈이의 자이고, 용릉은 그의 고향이다. 《성어전》도 이 서문을 인품의 고결함을 기리는 뜻의 출처로 든다.[3]
원나라 때 편찬된 《송사(宋史)》 〈주돈이전〉은 이 평을 조금 다른 글자로 옮기고, 서문의 뒷부분까지 함께 인용했다.
黃庭堅稱其「人品甚高,胸懷灑落,如光風霽月。廉于取名而銳於求志,薄於徼福而厚於得民,菲於奉身而燕及煢嫠,陋於希世而尚友千古。」
“황정견은 그를 두고 ‘인품이 매우 높고 가슴에 품은 뜻이 시원스러워 맑은 바람, 갠 달과 같다. 이름을 얻는 데는 담박하고 뜻을 구하는 데는 날카로웠으며, 복을 바라는 데는 엷고 백성을 얻는 데는 두터웠으며, 자기 몸을 받드는 데는 검소하면서 외로운 이들에게까지 은혜가 미쳤고, 세상에 영합하는 데는 서툴렀으나 천고의 옛사람을 벗 삼았다’고 했다.” 서문의 ‘胸中灑落(가슴속이 시원스럽다)’이 《송사》에서는 ‘胸懷灑落’으로 되어 있다. 조선 숙종 때의 한 상소는 송준길(宋浚吉)을 기리며 ‘胸襟灑落,如光風霽月’이라고 써서, 같은 평이 글자를 조금씩 바꾸어 가며 인용되었음을 보여 준다.[7]
이 평은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도를 깨친 사람의 기상을 그린 말로 사랑받았다. 주희의 스승 이동(李侗)은 황정견의 이 구절을 좋아하여 “이 구절은 도가 있는 사람을 형용한 것”이라고 했고, 《송사》 〈이동전〉도 그가 이 말을 도 있는 이의 기상을 잘 그린 것으로 여겼다고 적었다.[8] 주희와 여조겸이 엮은 《근사록(近思錄)》도 성현의 기상을 다룬 권14에 “주무숙은 가슴속이 시원스러워 광풍제월과 같다”를 실었다.[9] 남송 나대경(羅大經)은 《학림옥로(鶴林玉露)》에서, 왕안석이 주돈이를 따라 “광풍제월 속에 몸을 씻었더라면” 치우친 생각이 풀려 신법의 번거로움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3]
《성어전》은 이 말의 원형을 당나라 무명씨의 시 〈초박정(楚泊亭)〉의 “갠 달과 맑은 바람이 위아래로 한가지다(霽月光風上下同)”로 본다. 《전당시외편(全唐詩外編)》에 실린 시로, 여기서는 순서가 ‘霽月光風’이고 비 갠 뒤의 맑은 경치를 그린 말이다.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의 “대체로 바람 맑고 달 갠 때는 적고, 음산한 비에 어두운 때는 많았다(大概風光霽月之時少,陰雨晦冥之時多)”는 태평한 시절을 비유한 쓰임이다.[3] ‘광풍’이라는 말은 더 거슬러 올라가 《초사(楚辭)》 〈초혼(招魂)〉의 “맑은 바람이 혜초를 흔들고 무성한 난초에 넘실댄다(光風轉蕙,氾崇蘭些)”에도 보인다.[10]
고려 말부터 성리학자의 인품을 기리는 말로 쓰였다. 이색(李穡)은 이제현(李齊賢)의 묘지명 명(銘)에서 그를 “북두와 태산 같은 이는 창려의 한유요, 광풍제월은 용릉의 주무숙이다(北斗泰山。昌黎之韓。光風霽月。舂陵茂叔)”라고 하여 한유와 주돈이에 견주었다.[11]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 光風霽月은 415건이 검색될 만큼 자주 쓰였다.
조선에서는 특히 문묘에 모실 유학자를 기리는 말로 많이 쓰였다. 정조 14년(1790) 김인후(金麟厚)의 문묘 종사를 청한 상소는 이이(李珥)가 김인후를 두고 “맑은 물의 연꽃이요 광풍제월이다(淸水芙蓉,光風霽月)”라고 했다고 인용했고,[12] 순종 2년(1909)에는 임금이 서도를 순행하며 이이의 사당에 제사를 내리는 조서에서 “광풍제월의 기상을 직접 뵙는 듯하다(光風霽月之象,怳如親覿)”고 했다.[13]
- 그 선생님은 평생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지 않아, 제자들은 그의 인품을 광풍제월에 견주었다.
- 오래 끌던 감사가 끝나자 팀원들은 광풍제월을 맞은 듯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 장맛비가 그친 밤, 광풍제월 아래 강가를 걸었다.
- 전라남도 담양의 소쇄원(瀟灑園)에 있는 두 건물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霽月堂)은 황정견이 주돈이를 평한 이 말에서 이름을 따왔다.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가 스승 조광조가 유배되자 벼슬의 뜻을 버리고 고향에 조성한 정원이다.[14]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광풍제월”,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4%91%ED%92%8D%EC%A0%9C%EC%9B%94, 확인날짜=2026-10-03.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광풍제월”,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A%B4%91%ED%92%8D%EC%A0%9C%EC%9B%94, 확인날짜=2026-10-03.
- ↑ 3.0 3.1 3.2 3.3 3.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光風霽月”,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113, 확인날짜=2026-10-03.
- ↑ 4.0 4.1 4.2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光風霽月”,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5%89%E9%A2%A8%E9%9C%BD%E6%9C%88, 확인날짜=2026-10-03.
- ↑ 황정견, 〈염계시서(濂溪詩序)〉. 여조겸 편, 《송문감(宋文鑑)》 권30; 주희 편, 《연평답문(延平答問)》에 인용.
- ↑ 탈탈 등, 《송사(宋史)》 권427 〈도학열전 1〉 ‘주돈이’.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60권, 숙종 43년 11월 19일 기사(己巳)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4311019_003, 확인날짜=2026-10-03.
- ↑ 주희 편, 《연평답문(延平答問)》; 《송사》 권428 〈도학열전 2〉 ‘이동’.
- ↑ 주희·여조겸 편, 《근사록(近思錄)》 권14.
- ↑ 《초사(楚辭)》 〈초혼(招魂)〉.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색, 《목은고(牧隱藁)》 〈계림부원군 시문충 이공 묘지명(雞林府院君諡文忠李公墓誌銘)〉,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20A_0580_010_0020,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29권, 정조 14년 3월 22일 임인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1403022_003,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 3권, 순종 2년 1월 27일 6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zb_10201027_006, 확인날짜=2026-10-03.
-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담양 소쇄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3811,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