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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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정대(公明正大)는 하는 일이나 태도가 사사로움이나 그릇됨이 없이 아주 정당하고 떳떳함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송나라 성리학자들이 군자의 덕을 말할 때 쓰던 표현이다. 주희(朱熹)는 남송의 문신 반량귀(潘良貴)의 문집에 붙인 〈금화반공문집서(金華潘公文集序)〉에서, 《주역》이 양(陽)을 군자로, 음(陰)을 소인으로 여기는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蓋陽之德剛,陰之德柔。剛者常公而柔者常私,剛者常明而柔者常闇,剛者未嘗不正而柔者未嘗不邪,剛者未嘗不大而柔者未嘗不小。公明正大之人用於世則天下蒙其福,私暗邪僻之人得其志則天下受其禍,此理之必然也。
“양의 덕은 굳세고 음의 덕은 부드럽다. 굳센 이는 늘 공정하나 부드러운 이는 늘 사사롭고, 굳센 이는 늘 밝으나 부드러운 이는 늘 어두우며, 굳센 이는 바르지 않은 적이 없으나 부드러운 이는 그릇되지 않은 적이 없고, 굳센 이는 크지 않은 적이 없으나 부드러운 이는 작지 않은 적이 없다. 공명정대한 사람이 세상에 쓰이면 천하가 그 복을 입고, 사암사벽(私暗邪僻)한 사람이 뜻을 얻으면 천하가 그 화를 입으니, 이는 이치의 필연이다.” 공(公)·명(明)·정(正)·대(大)를 하나씩 풀어 놓은 뒤 네 글자로 묶은 것으로, 이 말의 짜임을 잘 보여 준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15건이 있다.[5] 가장 이른 것은 단종 1년(1453) 10월 10일, 계유정난이 일어난 날의 기사이다. 정변 뒤에 편찬되어 정변을 일으킨 쪽의 시각이 담긴 이 기사에는, 조극관(趙克寬)이 일찍이 아우 조수량(趙遂良)에게 “안평대군은 음란하고 탐욕스러워 나라 사람이 다 알지만, 수양대군은 공명정대하여 세종께서 군국의 중대사를 많이 물으셨으니 참으로 명망이 있다(首陽公明正大,世宗凡軍國重事,多咨問,實有名望)”고 했다는 말이 실려 있다. 조수량은 “말씀은 옳지만 이미 모의에 참여했으니 중도에 바꿀 수 없다”고 답했다고 적혀 있다.[6]
국역문에는 ‘공명정대’가 57건으로 원문보다 훨씬 많다.[7] 번역자가 ‘공정하다’, ‘바르다’는 뜻의 여러 원문 표현을 이 말로 옮긴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 버그 바운티 보상은 미리 공개한 기준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심사해야 참여자의 신뢰를 얻는다.
- 인사 평가가 공명정대하지 않으면 조직의 사기가 떨어진다.
- 심판은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경기를 운영했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공명정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3%B5%EB%AA%85%EC%A0%95%EB%8C%80, 확인날짜=2026-10-01.
- ↑ 2.0 2.1 2.2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公明正大”,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5%AC%E6%98%8E%E6%AD%A3%E5%A4%A7, 확인날짜=2026-10-01.
-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光明正大”,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101, 확인날짜=2026-10-01.
- ↑ 주희(朱熹), 〈금화반공문집서(金華潘公文集序)〉, 《회암집(晦菴集)》 권7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公明正大”(15건),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단종실록》 8권, 단종 1년 10월 10일 계사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fa_10110010_004,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국역 검색 “공명정대”(57건),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