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은 닭의 무리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 가운데서 뛰어난 인물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계군고학(鷄群孤鶴)’, ‘계군일학(鷄群一鶴)’이라고도 한다.[1]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재능이나 풍채가 유난히 돋보이는 사람을 칭찬할 때 쓴다. 사람뿐 아니라 여럿 가운데 두드러지게 뛰어난 작품이나 물건에도 쓴다. 중국어에서는 같은 뜻으로 ‘학립계군(鶴立雞群)’을 주로 쓰고,[2] 일본어에서는 ‘계군의 일학(鶏群の一鶴, けいぐんのいっかく)’이라고 한다.[3]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의 아들 혜소(嵇紹)를 두고 한 말에서 나왔다. 혜소는 열 살 때 아버지가 죄를 얻어 처형되자 어머니를 모시며 조용히 지냈다. 뒷날 산도(山濤)가 인사를 맡았을 때 진(晉) 무제에게 “《서경》 〈강고(康誥)〉에 ‘아버지와 아들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혜소의 어짊은 극결(郤缺)과 견줄 만하니 비서랑으로 삼으소서”라고 천거했고, 무제는 “경의 말대로라면 비서승도 감당할 만한데 어찌 낭에 그치겠는가”라며 비서승으로 불렀다.[4]

紹始入洛,或謂王戎曰:「昨于稠人中始見嵇紹,昂昂然如野鶴之在雞群。」戎曰:「君復未見其父耳。」

“혜소가 처음 낙양에 들어오자 어떤 사람이 왕융(王戎)에게 말했다. ‘어제 사람들 틈에서 처음으로 혜소를 보았는데, 의젓하고 늠름한 것이 마치 들학이 닭 무리 속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왕융이 말했다. ‘그대는 아직 그의 아버지를 보지 못했을 뿐이오.’”[4] 왕융 역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혜강을 직접 알던 사람이다.

《진서》보다 이른 기록

편집 원본 편집

표준국어대사전은 출전을 《진서》로 들지만,[1] 《진서》는 당나라 때인 648년에 편찬된 책이고 같은 이야기는 그보다 앞선 문헌에 이미 실려 있다. 남조 송의 유의경(劉義慶)이 엮은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에는 “어떤 사람이 왕융에게 ‘혜연조(嵇延祖, 혜소의 자)는 우뚝한 것이 들학이 닭 무리 속에 있는 것 같다’고 하자, ‘그대는 그 아버지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답했다(有人語王戎曰:「嵇延祖卓卓如野鶴之在雞群。」答曰:「君未見其父耳!」)”고 되어 있다.[5]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이보다 더 이른 동진 대규(戴逵)의 〈죽림칠현론(竹林七賢論)〉(《예문유취(藝文類聚)》 권90 인용)을 ‘鶴立雞群’의 근원으로 든다.[2] 일본의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도 이 이야기의 출처를 《세설신어》로 소개한다.[3]

네 글자 형태

편집 원본 편집

‘群鷄一鶴’이라는 네 글자는 중국의 한문 전적에서는 찾기 어렵고, 조선 문헌에서 쓰였다. 권벌(權橃)은 중종 3년(1508)의 일기에서 박상(朴祥)을 두고 “논사가 지나칠 때도 있으나 꾸밈이 없고 학문에 뜻이 독실하여 군계일학처럼 홀로 우뚝하니, 때의 논의에 용납되지 못하였다(群鷄一鶴。獨立寡和。不爲時論所容)”고 평했다.[6] 김천일(金千鎰)이 시인 백광훈(白光勳)을 위해 지은 제문에도 “맑고 깨끗한 기운과 빼어난 재주는 군계일학이라 티끌 밖으로 멀리 벗어났다(淸淑之氣。英澈之材。羣鷄一鶴。迥出塵埃)”는 구절이 있다.[7] 중국에서는 원나라 문헌부터 ‘鶴立雞群’의 형태가 보이고,[2] 《조선왕조실록》에도 정조가 이 형태를 썼다(아래 여담).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群 군 무리 무리를 이룬
鷄 계 닭 닭(평범한 사람들)
一 일 하나 한 마리
鶴 학 학, 두루미 학(뛰어난 사람)
  • 이번 해킹 대회 참가자 가운데 그는 군계일학이었다. 혼자서 제한 시간 절반 만에 모든 문제를 풀었다.
  • 수많은 지원서 가운데 그 포트폴리오는 군계일학처럼 눈에 띄었다.
  • 혜소는 뒷날 시중(侍中)이 되었고, 304년 탕음(蕩陰) 싸움에서 진 혜제(惠帝)의 군대가 무너져 신하들이 모두 흩어질 때 홀로 의관을 갖추고 황제를 몸으로 막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 피가 황제의 옷에 튀었는데, 싸움이 끝난 뒤 좌우가 옷을 빨려 하자 혜제는 “이것은 혜 시중의 피이니 없애지 말라(此嵇侍中血,勿去)”고 했다.[4] 남송의 문천상(文天祥)은 〈정기가(正氣歌)〉에서 절의의 예로 “혜 시중의 피(為嵇侍中血)”를 읊었다.[8]
  • 정조는 정조 24년(1800) 세자빈 간택에서 김조순의 딸을 두고 “검소하게 차려입었는데도 복스러운 기운이 얼굴에 가득하여 무리 가운데 빼어났으니, 참으로 이른바 학립계군(鶴立鷄群)”이라고 했다.[9] 이 세자빈이 뒷날의 순원왕후이다.
  • 일본어의 ‘鶏群の一鶴’에 대해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이와야 사자나미(巖谷小波)의 《당세소년기질(当世少年気質)》(1892)을 든다.[3]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학립계군(鶴立鷄群): 학이 닭 무리 가운데 서 있음. 중국어에서 주로 쓰는 형태.[2]
  • 계군고학(鷄群孤鶴), 계군일학(鷄群一鶴): 같은 뜻.[1]
  • 철중쟁쟁(鐵中錚錚): 쇠붙이 가운데 유난히 맑게 쟁그랑거리는 소리. 평범한 사람 가운데 뛰어난 사람.
  •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저절로 드러남.
  • 백미(白眉):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
  • 출류발췌(出類拔萃): 같은 무리 가운데 특별히 뛰어남. 《성어전》이 가까운 말로 든다.[2]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군계일학”,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5%B0%EA%B3%84%EC%9D%BC%ED%95%99, 확인날짜=2026-09-26.
  2. ↑ 2.0 2.1 2.2 2.3 2.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鶴立雞群”,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17,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3.2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鶏群の一鶴”,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B6%8F%E7%BE%A4%E3%81%AE%E4%B8%80%E9%B6%B4, 확인날짜=2026-09-26.
  4. ↑ 4.0 4.1 4.2 방현령(房玄齡) 등, 《진서(晉書)》 권89 〈충의전(忠義傳)·혜소(嵇紹)〉.
  5. ↑ 유의경(劉義慶),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
  6.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권벌(權橃), 《충재집(冲齋集)》 권3 일기, 무진년(1508).
  7.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김천일(金千鎰), 《건재집(健齋集)》 〈제백옥봉광훈문(祭白玉峯光勳文)〉. 백광훈의 《옥봉집(玉峯集)》에도 실려 있다.
  8. ↑ 문천상(文天祥), 〈정기가(正氣歌)〉, 《지남후록(指南後錄)》 권3.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53권, 정조 24년 2월 27일 경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2402027_001,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