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중취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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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중취물(囊中取物)은 주머니 속에서 물건을 꺼내듯이 아주 손쉽게 얻을 수 있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탐낭취물(探囊取物)’이라고도 한다.[1]
제 주머니에 든 물건은 손만 넣으면 꺼낼 수 있다는 데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을 비유한다. 흔히 “~하기를 낭중취물처럼 한다”, “낭중취물과 같다”처럼 자신이나 남의 능력을 크게 내세우는 말에 쓰인다.
중국어에서는 ‘탐낭취물(探囊取物)’이 대표 형태이고, 《성어전》은 ‘낭중취물’을 같은 뜻의 말로 싣는다.[2][3] 일본어에서는 ‘嚢中の物を探るが如し(주머니 속 물건을 찾는 것과 같다)’라고 한다.[4]
같은 ‘주머니(囊中)’가 들어가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는 뛰어난 재능은 숨겨도 드러난다는 뜻으로, 낭중취물과는 뜻이 전혀 다르다.
《성어전》은 이 말의 뿌리를 구양수(歐陽脩)의 《신오대사(新五代史)》 〈남당세가(南唐世家)〉에 실린 이야기로 본다.[2] 후당(後唐) 명종(明宗) 때 한희재(韓熙載)는 남쪽의 오(吳)나라로 달아났다. 《성어전》 해설에 따르면 아버지가 일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벗 이곡(李穀)이 정양(正陽)까지 배웅하며 이별의 술자리를 가졌을 때 두 사람이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熙載謂穀曰:「江左用吾為相,當長驅以定中原。」穀曰:「中國用吾為相,取江南如探囊中物爾。」
한희재가 “강남(江左)에서 나를 재상으로 쓴다면 곧장 몰아쳐 중원을 평정하겠다”고 하자, 이곡은 “중원에서 나를 재상으로 쓴다면 강남을 차지하는 것은 주머니 속 물건을 꺼내는 것과 같을 것이다”라고 받았다. 《신오대사》는 뒷날 후주(後周)가 회남(淮南)을 칠 때 이곡이 장수가 되어 회남을 빼앗았고, 한희재는 남당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한희재는 남당의 후주 이욱(李煜)이 재상으로 쓰려 했으나 집에 기녀와 첩을 수십 명 두고 방탕하게 지내는 바람에 끝내 재상이 되지 못했다.[6]
네 글자로 굳은 형태는 원나라 잡극과 명나라 소설에서 널리 쓰였다. 《성어전》은 원 잡극 《연환계(連環計)》와 《노참관평(怒斬關平)》의 ‘탐낭취물’을 이른 용례로 든다.[2] 특히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이 말이 여러 번 나온다.
| 회 | 말한 사람 | 원문 | 장면 |
|---|---|---|---|
| 제3회 | 이숙(李肅) | 功名富貴,如探囊取物 | 여포(呂布)에게 동탁 편에 서면 부귀공명은 손쉽다고 꾀는 말 |
| 제5회 | 화웅(華雄) | 吾斬眾諸侯首級,如探囊取物耳 | 여포를 대신해 제후군을 치겠다고 나서며 한 장담 |
| 제25회 | 관우(關羽) | 吾弟張翼德於百萬軍中取上將之頭,如探囊取物耳 | 안량(顏良)의 목을 벤 뒤 조조의 칭찬에 겸손하게 답한 말 |
| 제42회 | 조조(曹操) | 翼德於百萬軍中,取上將之首,如探囊取物 | 장판교에서 장비를 보고 관우의 말을 떠올리는 장면 |
| 제88회 | 제갈량(諸葛亮) | 吾擒此人,如囊中取物耳 | 사로잡은 맹획(孟獲)을 풀어 주며 장수들에게 한 말 |
‘낭중취물’이라는 형태는 제88회의 제갈량의 말에서 볼 수 있으며, 《성어전》도 이 대목을 근거로 든다.[3] 제갈량은 “내가 이 사람을 사로잡는 것은 주머니 속 물건을 꺼내는 것과 같다. 모름지기 그 마음을 굴복시켜야 저절로 평정될 것이다(直須降伏其心,自然平矣)”라고 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시작이다. 제25회의 관우의 말을 들은 조조는 크게 놀라 좌우에게 “앞으로 장익덕을 만나면 가볍게 대적하지 말라”며 옷섶 안쪽에 적어 두게 했다(令寫於衣袍襟底以記之).[8] 이 대목들은 소설의 내용이며,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말은 아니다.
-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한명회(韓明澮)의 신도비명에 따르면, 영안도 남도 절도사를 없애자는 논의가 나왔을 때 한명회만 반대하며,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남도 절도사가 있어 북도와 서로 호응했다면 “저 어린놈은 주머니 속 물건을 꺼내는 것과 같았을 것(如探囊中物耳)”이라고 했다.[9]
- 《중종실록》 중종 16년(1521) 대사헌 홍숙의 차자에는 상대 당파가 “높은 벼슬을 줍기를 주머니 속 물건을 꺼내듯 했다(驟拾高爵,如探囊中之物)”고 비난하는 말이 있다.[10]
조선 문헌에서는 네 글자 ‘낭중취물’보다 《신오대사》의 표현을 따른 ‘探囊中物’이 주로 쓰였고,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囊中取物’과 ‘探囊取物’이 모두 보이지 않는다.[11]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囊 | 낭 | 주머니 | 주머니 |
| 中 | 중 | 가운데 | 속 |
| 取 | 취 | 가지다, 취하다 | 꺼내다 |
| 物 | 물 | 물건 | 물건 |
- 기본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은 공유기는 공격자에게 낭중취물이나 다름없다.
- 그는 이번 대회 우승쯤은 낭중취물이라고 큰소리쳤지만 예선에서 탈락했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낭중취물”,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2%AD%EC%A4%91%EC%B7%A8%EB%AC%BC,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2.2 2.3 2.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探囊取物”,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644,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囊中取物”,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4499, 확인날짜=2026-09-27.
- ↑ 《회화에서 쓸 수 있는 속담 사전(会話で使えることわざ辞典)》, “嚢中の物を探るが如し”, 이미다스(imidas), https://imidas.jp/proverb/detail/X-02-C-25-1-0006.html, 확인날짜=2026-09-27.
- ↑ 구양수(歐陽脩), 《신오대사(新五代史)》 권62 〈남당세가(南唐世家)〉.
- ↑ 구양수, 《신오대사》 권62 〈남당세가〉.
- ↑ 나관중(羅貫中),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모종강본) 제3회·제5회·제25회·제42회·제88회.
- ↑ 나관중, 《삼국지연의》 제25회.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서거정, 《사가집(四佳集)》 보유 권1, 〈의정부영의정상당부원군한공신도비명(議政府領議政上黨府院君韓公神道碑銘)〉, 자료ID ITKC_MO_0061A_0360_010_0050,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61A_0360_010_0050,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42권, 중종 16년 8월 23일 임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1608023_002,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囊中取物”, “探囊取物”,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7.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탐낭취물”,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83%90%EB%82%AD%EC%B7%A8%EB%AC%BC,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