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취의
더 많은 작업
단장취의(斷章取義)는 남이 쓴 글이나 시의 한 부분을 전체의 뜻은 고려하지 않고 따다가 쓰는 일, 또는 그렇게 인용해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는 일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글자 그대로는 ‘글의 장(章)을 끊어 내어 뜻을 취한다’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남의 말이나 글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대목만 잘라 내어 본래 뜻과 다르게 쓰는 것을 비판할 때 주로 쓴다. 인터뷰의 한 문장만 떼어 내 제목을 다는 보도, 논문의 한 구절을 앞뒤 맥락 없이 끌어다 반박하는 글 따위가 전형적인 단장취의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말을 문학 용어로 분류하고 ‘단장 취의’처럼 띄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되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한다.[1]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斷章取義, duàn zhāng qǔ yì)로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시편의 한 장이나 한 구를 잘라 자기 뜻을 나타내는 데 쓰고 원작자의 본뜻은 돌보지 않음”에서 “남의 시문이나 말의 한 단락을 잘라 쓰고 원뜻을 돌보지 않음”으로 뜻이 넓어졌다고 풀이한다.[2] 일본어에서도 ‘断章取義(だんしょうしゅぎ)’라 하여 “글 전체의 본뜻과 관계없이 한 대목만 떼어 그 뜻으로 쓰는 것, 나아가 자기에게 편한 대로 인용하는 것”을 이른다.[3] 논리학에서 말하는 ‘맥락 무시의 오류(contextomy, quoting out of context)’와 통한다.
이 말의 뿌리는 《좌전(左傳)》 양공(襄公) 28년의 이야기이다. 제나라의 경사(慶舍)는 가신 노포계(盧蒲癸)를 총애해 딸을 아내로 주었다. 그런데 경씨와 노포씨는 모두 강(姜)씨에서 갈라진 같은 성이었다. 경사의 다른 가신이 “남녀는 성을 가려야 하는데 그대는 같은 종족을 피하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이냐”고 묻자 노포계는 이렇게 답했다.
宗不余辟,余獨焉辟之?賦詩斷章,余取所求焉,惡識宗?
“종족이 나를 피하지 않는데 나 혼자 어찌 피하겠소? 시를 읊을 때 한 장만 끊어 내어 내가 구하는 뜻만 취하듯이 하는 것이니, 종족 따위를 어찌 알겠소?” 노포계는 그해 겨울 태공의 사당에서 제사가 열렸을 때 뒤에서 경사를 찔렀고, 이 난으로 경씨 집안은 몰락했다.[4] 아내의 집안이라는 사정은 그에게 ‘필요한 대목만 취하면 그만’인 일이었던 셈이다.
노포계의 말은 당시 귀족 사회의 관습을 빗댄 것이다. 춘추시대 사람들은 외교 자리나 연회에서 《시(詩)》의 한 장을 읊어 자기 뜻을 넌지시 전했는데, 이때 시 전체의 본뜻과는 상관없이 필요한 구절의 뜻만 빌렸다. 예를 들어 양공 14년 진(晉)나라가 제후들의 군대를 이끌고 진(秦)나라를 치러 갔다가 경수(涇水)에 이르러 건널지 망설이자, 진나라의 숙향(叔向)이 노나라의 숙손목자(叔孫穆子)를 찾아갔다. 숙손목자는 〈포유고엽(匏有苦葉)〉을 읊었고, 숙향은 물러나 배를 준비했다.[5] 〈포유고엽〉은 지금의 《시경》 〈패풍(邶風)〉에 있는 시로, 첫 장에 “물이 깊으면 옷을 입은 채 건너고, 얕으면 걷고 건넌다(深則厲,淺則揭)”는 구절이 있다. 원래는 혼인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읊은 시인데, 숙손목자는 이 구절만 빌려 “물이 깊든 얕든 반드시 건너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성어전》은 이런 ‘부시단장(賦詩斷章)’에서 단장취의라는 성어가 나왔다고 본다.[2]
네 글자로 쓴 이른 예는 남조 양나라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 〈장구(章句)〉이다.[2] 유협은 글의 장과 구가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지를 논하면서 이렇게 썼다.
尋詩人擬喻,雖斷章取義,然章句在篇,如繭之抽緒,原始要終,體必鱗次。
“시인의 비유를 살펴보면, 비록 장을 끊어 뜻을 취하는 일이 있더라도 장과 구는 한 편 안에 있으니,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듯 처음과 끝이 이어지고 짜임이 물고기 비늘처럼 차례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아직 나쁜 뜻이 아니라, 시를 인용할 때 한 장만 떼어 쓰는 관습 자체를 가리킨다.
이후 송나라 손혁(孫奕)의 《이재시아편(履齋示兒編)》, 청나라 심덕잠(沈德潛)의 《고시원(古詩源)》 범례 등에도 이 말이 쓰였고, 《홍루몽》, 《관장현형기》 같은 소설에서는 남의 말을 반만 듣고 멋대로 해석한다는 오늘날의 뜻으로 쓰였다.[2] 일본에서는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이 당나라 공영달의 《예기정의(禮記正義)》 〈중용〉 소(疏)를 출전으로 들고,[3]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는 1872년 〈교토 학교의 기(京都学校の記)〉에서 번역서와 한서를 가르치되 글자 뜻만 풀지 않고 “단장취의하여 문명의 취지를 말하는 것을 주로 한다”고 썼다.[3] 이 대목에서는 ‘필요한 부분을 골라 활용한다’는 중립적인 뜻이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斷章取義’가 22건 나온다.[8]
- 가장 이른 것은 태조 7년(1398) 명나라 예부가 보낸 자문이다. 이른바 표전문(表箋文) 문제로 조선과 명이 갈등하던 때, 명나라는 조선 국왕을 따르는 무리가 “모두 경박한 백면서생으로, 도로써 왕을 돕지 않고 중국 성현의 경전을 표절해 장을 끊어 뜻을 취하고(斷章取義) 뒤집어 희롱하는 말을 만든다”고 꾸짖으며 글을 쓴 사람들을 보내라고 요구했다.[9]
-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 무렵, 연산군은 이극균(李克均)이 옛 대간들의 처벌을 논하면서 “지난 허물은 교화와 함께 사라진다(旣往之愆,與化俱徂)”는 옛말을 인용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극균은 “신이 단장취의하여 잘못 인용해 아뢰었으니 신에게 실로 죄가 있습니다(臣斷章取義,誤引以啓,臣實有罪)”라고 답했다.[10] 이극균은 그해 사사되었다.
- 보안 보고서의 “이 취약점은 현재로서는 악용 가능성이 낮다”는 문장에서 ‘현재로서는’을 빼고 인용하면 단장취의가 된다.
- 상대 후보의 발언을 단장취의해 만든 광고가 논란이 되었다.
- 경전의 한 구절만 떼어 내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은 전형적인 단장취의이다.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단장취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B%A8%EC%9E%A5%EC%B7%A8%EC%9D%98, 확인날짜=2026-10-10.
- ↑ 2.0 2.1 2.2 2.3 2.4 2.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斷章取義”,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515, 확인날짜=2026-10-10.
- ↑ 3.0 3.1 3.2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断章取義”,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6%AD%E7%AB%A0%E5%8F%96%E7%BE%A9, 확인날짜=2026-10-10.
- ↑ 4.0 4.1 《좌전(左傳)》 양공(襄公) 28년.
- ↑ 《좌전(左傳)》 양공(襄公) 14년.
- ↑ 유협(劉勰), 《문심조룡(文心雕龍)》 〈장구(章句)〉.
- ↑ 이색(李穡), 《목은문고(牧隱文藁)》 권1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斷章取義”,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14권, 태조 7년 5월 14일 경신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aa_10705014_002, 확인날짜=2026-10-1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8일 기묘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1003018_005, 확인날짜=202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