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은 임자 없는 빈산이라는 뜻의 한자성어로, 인가도 인기척도 없는 쓸쓸한 곳을 이르기도 한다.[1] 오늘날에는 주인이나 강자가 없어 누구나 차지하려고 다툴 수 있는 자리나 영역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많이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1」 임자 없는 빈산, 「2」 인가도 인기척도 전혀 없는 쓸쓸한 곳이라는 두 뜻을 싣고 있다. 둘째 뜻의 용례로는 “난군은 금방 쳐들어온다는데, 무주공산이 되어 버렸구먼”(송기숙, 《녹두 장군》)을 든다.[1]

신문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이 불출마하거나 연임 제한으로 출마할 수 없어 뚜렷한 강자가 없는 선거구를 ‘무주공산’이라고 흔히 부른다.[2] 경영에서도 아직 지배적인 사업자가 없는 시장을 이렇게 부르는데, 이때는 ‘누구든 먼저 차지하면 임자’라는 기회의 뜻이 담긴다.

이 네 글자는 한국에서 쓰는 말이다. 중국 시문에도 ‘…無主,空山…’처럼 두 낱말이 이어 나오는 구절은 있지만 하나의 성어로 쓴 예는 확인되지 않는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無 무 없다 없다
主 주 주인, 임금 임자, 소유자
空 공 비다 비어 있다
山 산 뫼, 산 산

‘임자가 없는(無主) 빈 산(空山)’이라는 짜임이다.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조선 후기에는 산림과 땅의 소유를 따지는 행정 용어로 쓰였다. 조선에서는 주인 없는 산이나 묵은 땅을 관아에 신청해 ‘입안(立案)’이라는 증명 문서를 받으면 차지하거나 개간할 수 있었는데, 그 대상이 되는 땅을 ‘無主空山’이라 불렀다.

  • 숙종 9년(1683) 금위영은 풍덕부 땅에 “주인 없는 빈산으로 나무를 기를 만한 곳(無主空山,可養樹木處)”을 떼어 받아 산지기를 정해 지키게 했다며 경계를 다시 살피게 해 달라고 청했다.[3]
  • 박태보(朴泰輔, 1654~1689)는 감영에 올린 글에서 훈련도감이 둔전을 처음 설치할 때 “주인 없는 빈산에 대해 입안을 받아 냈다(無主空山,受出立案)”고 적었다.[4]
  • 영조 27년(1751)에는 궁가와 사대부 집안이 주인 없는 빈산에 입안 한 장만 만들어 두었다가, 누가 그 땅을 일구면 자기가 입안한 곳이라며 세를 거두는 바람에 백성들이 개간하려 하지 않는다는 폐단이 보고되었다.[5]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고종 44년(1907) 이용직(李容稙)의 상소에 한 번 나온다. 조상의 산소가 있는 산을 두고 다툰 소송에서 재판관이 “지형을 그려 오게 한 뒤 멀고 가까운 형편은 묻지 않고 주인 없는 빈산으로 돌려 버렸다(歸之於無主空山)”고 호소한 대목이다.[6] 이처럼 조선 문헌의 무주공산은 ‘아직 아무도 소유권을 갖지 않아 차지할 수 있는 땅’이라는 실무적인 뜻이었다. 오늘날 ‘주인 없는 자리’를 두고 다투는 비유적 쓰임은 이 뜻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근대 이후에는 쓸쓸하고 텅 빈 곳이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잡지 《별건곤》에 실린 수필 〈눈 오는 날〉은 세상을 떠난 오빠를 그리며 “무주공산(無主空山)에 외로이 누우셔서”라고 썼다.[7]

  • 현역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그 선거구는 무주공산이 되어 예비 후보가 열 명 넘게 몰렸다.
  • 아직 강자가 없는 무주공산의 시장이라 해도 표준과 보안 인증부터 갖추지 않으면 금세 밀려난다.
  • 피란민이 모두 떠나자 마을은 무주공산이 되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육리청산(陸里靑山): 표준국어대사전이 무주공산의 참고 어휘로 드는 말.[1]
  • 군웅할거(群雄割據): 여러 영웅이 각기 한 지방씩 차지하고 세력을 다툼. 무주공산을 두고 여럿이 다투는 형국.
  • 각축(角逐): 서로 이기려고 다투며 덤벼듦.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무주공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C%B4%EC%A3%BC%EA%B3%B5%EC%82%B0, 확인날짜=2026-10-10.
  2. ↑ “‘광주 여론조사’ 민평당 현역 강세·‘무주공산’ 지역 초접전, 전남도 이어지나”, 뉴시스, 2018-03-13, https://www.newsis.com/view/NISX20180313_0000250339, 확인날짜=2026-10-10.
  3.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숙종 9년 7월 15일 갑신 기사, https://sjw.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0.
  4.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박태보, 《정재집(定齋集)》 권10 〈신순영논진현전계장(申廵營論鎭縣田界狀)〉,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41A_0100_010_0060, 확인날짜=2026-10-10.
  5.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영조 27년 1월 18일 병진 기사, https://sjw.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0.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48권, 고종 44년 1월 21일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za_14401021_004, 확인날짜=2026-10-10.
  7. ↑ 김원주, 〈눈 오는 날〉, 《별건곤》 제35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s://db.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