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불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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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불염사(兵不厭詐)는 군사(軍事)에서는 적을 속이는 꾀도 꺼리지 않는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1] 전쟁에서는 이기는 것이 목적이므로 속임수도 정당한 전술이 된다는 말이며, 뒤에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쓴다.[2]
‘염(厭)’은 여기서 ‘싫어하다, 꺼리다’라는 뜻이다. 전쟁에서 상대를 속이는 일을 변명하거나 정당화할 때, 또는 협상·경쟁에서 상대의 술수를 경계하라고 할 때 쓴다. 뜻이 통하는 말로 《손자》 〈계(計)〉의 “병법은 속이는 도이다(兵者,詭道也)”가 있다.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쓰며(간체 兵不厌诈), 《성어전》은 비슷한 말로 ‘병행궤도(兵行詭道)’를 든다.[2] 영어에서는 흔히 “All's fair in love and war(사랑과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공평하다)”라는 속담에 견준다.
이 말의 뿌리는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기원전 632년 성복(城濮) 전투를 앞두고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외삼촌 구범(舅犯, 호언狐偃)에게 계책을 물었다.[3]
晉文公將與楚人戰,召舅犯問之,曰:「吾將與楚人戰,彼衆我寡,爲之奈何?」舅犯曰:「臣聞之:繁禮君子,不厭忠信;戰陣之間,不厭詐僞。君其詐之而已矣。」
“내가 초나라와 싸우려 하는데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구범이 답했다. “신이 듣기로, 예를 중히 여기는 군자는 충성과 신의를 아무리 해도 꺼리지 않고, 싸움터에서는 속임수를 아무리 해도 꺼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임금께서는 그들을 속이시면 될 뿐입니다.”
문공은 다시 옹계(雍季)에게 물었다. 옹계는 “숲을 태워 사냥하면 당장은 짐승을 많이 잡겠지만 뒤에는 짐승이 없어지고, 속임수로 백성을 대하면 한때 이익을 얻겠지만 뒤에는 다시 얻을 수 없다”고 답했다. 문공은 구범의 꾀를 써서 초나라를 이겼지만, 돌아와 벼슬을 내릴 때는 옹계를 앞세우고 구범을 뒤로 했다. 신하들이 의아해하자 문공은 “구범의 말은 한때의 권도이고 옹계의 말은 만세의 이익”이라고 했고, 공자는 이를 듣고 문공이 패자가 된 것이 마땅하다고 칭찬했다.[3]
한비자는 이 이야기를 소개한 뒤 “어떤 이는 말한다(或曰)”로 시작하는 반론을 붙였다. 옹계의 답은 적은 군사로 많은 적을 어떻게 이기느냐는 물음에 맞지 않으며, 오늘 지면 만세의 이익을 기다릴 겨를도 없다는 것이다. 또 “구범이 말한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는 것은 백성을 속이라는 것이 아니라 적을 속이라는 것(舅犯所謂「不厭詐僞」者,不謂詐其民,謂詐其敵也)”이라고 짚고, 공을 세운 구범을 뒤로 돌린 문공과 이를 칭찬한 공자는 상을 줄 줄 몰랐다고 비판했다.[3] 같은 이야기는 《여씨춘추(呂氏春秋)》 〈의상(義賞)〉에는 “전쟁을 잦게 하는 임금은 속임수가 모자라지 않다(繁戰之君,不足於詐)”로,[4]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에는 “싸움의 일에서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戰陳之事,不厭詐偽)”로 실려 있다.[5]
지금의 네 글자 형태는 《한비자》보다 훨씬 뒤에 보인다. 《후한서》 〈우후전(虞詡傳)〉에는 후한의 우후가 도적이 들끓던 조가(朝歌)의 현장(縣長)으로 부임하면서 “군사는 임기응변을 꺼리지 않는다(兵不猒權)”며 재량을 달라고 한 말이 있다. 《성어전》은 이 ‘병불염권(兵不厭權)’을 병불염사와 같은 말로 본다.[6]
‘兵不厭詐’ 네 글자는 《북제서(北齊書)》 권18 〈사마자여전(司馬子如傳)〉에 나온다. 530년 북위 효장제가 권신 이주영(尒朱榮)을 죽이자, 이주영의 무리인 이주세륭(尒朱世隆)은 북쪽으로 달아나려 했다. 이때 사마자여는 “일은 기회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고, 군사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 천하가 흉흉하여 오직 강한 쪽만 바라보는 때이니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事貴應機,兵不厭詐,天下恟恟,唯強是視,於此際會,不可以弱示人)”며 군사를 돌려 낙양을 치자고 했다.[7] 《성어전》도 이 대목을 첫 번째 서증으로 든다.[2] 당나라 이전(李筌)은 《손자》 〈계〉의 “兵者,詭道也”에 “군사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軍不厭詐)”라고 주를 달았고,[8] 사마정(司馬貞)의 《사기색은(史記索隱)》도 〈전단열전〉 논찬의 “奇正”을 풀며 “兵不厭詐”라고 썼다.[9]
이 말을 널리 알린 것은 《삼국지연의》이다. 모종강본에서는 세 장면에 나온다.[10]
- 제30회: 관도 전투 때 원소를 떠나 찾아온 허유(許攸)가 군량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자 조조는 거짓으로 답하다 들키고는 웃으며 “병불염사를 듣지 못했는가(豈不聞兵不厭詐)?”라고 한다.
- 제46회: 조조가 채중·채화를 거짓 항복시켜 보낸 것을 주유가 역이용하자, 제갈량은 노숙에게 “병불염사이니, 공근(주유)의 꾀가 옳다”고 설명한다.
- 제59회: 마초·한수가 땅을 떼어 주겠다며 화친을 청하자 가후(賈詡)가 “병불염사이니 거짓으로 허락한 뒤 이간책을 쓰자”고 하고, 조조가 이를 받아들인다.
나무위키 등에는 《삼국지연의》에서 조조의 입을 통해 이 말이 23번 나온다는 설명이 있으나, 원문에서 확인되는 것은 위의 세 곳이며 그중 조조가 직접 말하는 것은 제30회 한 번이다.[10]
- 선조 27년(1594), 임진왜란 강화 교섭 중에 선조는 대신들과 가토 기요마사(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行長) 사이를 벌려 놓을 방도를 의논하며 “병불염사이니, 고니시와 소 요시토시(義智)의 편지를 가토에게 보내 이간하는 것이 묘책(兵不厭詐。行長、義智之書, 送于淸正, 行間爲妙)”이라고 했다.[11] 두 왜장의 반목은 유성룡도 “분명하다”고 답한 사실이었다.
- 병불염사라지만, 모의 해킹은 계약서에 적힌 범위 안에서만 속임수를 써야 한다.
- 레드팀 훈련에서 피싱 메일로 직원들을 속이는 것은 병불염사의 원리를 방어 훈련에 쓴 것이다.
- 그는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가 병불염사로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었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병불염사”,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3%91%EB%B6%88%EC%97%BC%EC%82%AC, 확인날짜=2026-10-03.
- ↑ 2.0 2.1 2.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兵不厭詐”,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29, 확인날짜=2026-10-03.
- ↑ 3.0 3.1 3.2 3.3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
- ↑ 《여씨춘추(呂氏春秋)》 권14 〈효행람(孝行覽)·의상(義賞)〉.
- ↑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
- ↑ 《후한서(後漢書)》 권58 〈우후전(虞詡傳)〉. 대만 교육부 《성어전》 2020, “兵不厭權”,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442, 확인날짜=2026-10-03.
- ↑ 《북제서(北齊書)》 권18 〈사마자여전(司馬子如傳)〉.
- ↑ 《십일가주손자(十一家注孫子)》 〈계(計)〉 이전(李筌) 주.
- ↑ 사마천, 《사기》 권82 〈전단열전(田單列傳)〉 사마정 색은.
- ↑ 10.0 10.1 나관중,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30회·제46회·제59회.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55권, 선조 27년 9월 13일 무자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2709013_004, 확인날짜=2026-10-03.
- ↑ 《춘추공양전》 희공 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