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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대로(以逸待勞)는 편안히 쉬면서 힘을 기른 군대로 먼 길을 와서 지친 적을 기다렸다가 친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 병법에서 나온 말로, 자기 쪽은 힘을 아껴 두고 상대가 지치기를 기다려 유리한 때에 맞선다는 뜻으로 넓혀 쓴다.[1]

‘일(逸)’은 편안함, ‘로(勞)’는 수고로움·피로이다. 먼저 싸움터에 자리 잡고 쉬고 있는 쪽이 멀리서 달려온 쪽을 맞이하면 이긴다는 병가의 상식을 네 글자로 줄인 말이다. 오늘날에는 전쟁뿐 아니라 경쟁이나 협상에서 서두르지 않고 상대가 먼저 힘을 빼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말할 때도 쓴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조선 시대 문헌에는 자주 쓰였다(아래 한국 문헌의 용례).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쓰며(간체 以逸待劳), 명청 이후 병법서 《삼십육계》의 제4계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성어전》은 비슷한 말로 ‘양정축예(養精蓄銳)’를, 반대말로 ‘피어분명(疲於奔命)’을 든다.[1]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以 이 ~로써 ~을 가지고
逸 일 편안하다, 달아나다 쉬어서 힘이 남아 있는 상태
待 대 기다리다 맞이하여 기다리다
勞 로 수고롭다, 지치다 지친 적

원전인 《손자》에는 ‘逸’ 대신 ‘佚(일)’로 적혀 있다. 《성어전》은 “‘佚’은 ‘逸’과 같다”고 풀이한다.[1]

《손자》 〈군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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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孫子)》 〈군쟁(軍爭)〉에서 군대를 다스리는 네 가지 방법(治氣·治心·治力·治變)을 말하는 대목에 나온다.[2]

三軍可奪氣,將軍可奪心。是故朝氣銳,晝氣惰,暮氣歸。故善用兵者,避其銳氣,擊其惰歸,此治氣者也;以治待亂,以靜待譁,此治心者也;以近待遠,以佚待勞,以飽待飢,此治力者也。

“삼군은 기세를 빼앗길 수 있고, 장수는 마음을 빼앗길 수 있다. 아침의 기세는 날카롭고, 낮의 기세는 느슨해지며, 저녁의 기세는 돌아갈 생각뿐이다. 그러므로 용병을 잘하는 자는 날카로운 기세를 피하고 느슨해져 돌아가려 할 때를 친다. 이것이 기세를 다스리는 것이다. 정돈된 채로 어지러운 적을 기다리고, 고요한 채로 떠들썩한 적을 기다리니 이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가까이 있으면서 멀리서 오는 적을 기다리고, 편안한 채로 지친 적을 기다리며, 배부른 채로 굶주린 적을 기다리니 이것이 힘을 다스리는 것이다.”

같은 생각은 〈허실(虛實)〉 첫머리에도 있다. “먼저 싸움터에 자리 잡고 적을 기다리는 쪽은 편안하고, 뒤늦게 싸움터에 이르러 서둘러 싸우는 쪽은 지친다. 그러므로 잘 싸우는 자는 적을 끌어오지 적에게 끌려가지 않는다(凡先處戰地而待敵者佚,後處戰地而趨戰者勞。故善戰者,致人而不致於人).”[3] 《오자(吳子)》 〈치병(治兵)〉에도 “以近待遠,以佚待勞,以飽待飢”라는 같은 세 구절이 군사 훈련의 요목으로 나온다.[4]

‘以逸待勞’ 네 글자의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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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逸’ 자를 쓴 형태는 한나라 때부터 보인다. 《한서(漢書)》 권69 〈조충국전(趙充國傳)〉에는 전한 선제 때 노장 조충국(趙充國)이 강족(羌族)을 상대로 둔전(屯田)을 하자고 올린 글에 “봉화가 다행히 통하면 형세가 힘을 합칠 수 있으니, 편안함으로 지친 적을 기다리는 것은 군사의 이로움이다(烽火幸通,勢及并力,以逸待勞,兵之利者也)”라는 구절이 있다. 같은 전에는 ‘以逸擊勞(편안함으로 지친 적을 친다)’라는 말도 나온다.[5] 《후한서(後漢書)》 권17 〈풍이전(馮異傳)〉에는 30년 풍이(馮異)가 외효(隗囂)의 군대보다 먼저 순읍(栒邑)성을 차지하려 하면서 “공격하는 쪽은 모자라고 지키는 쪽은 남는다. 지금 먼저 성을 차지해 편안함으로 지친 적을 기다리는 것은 다툼이 아니다(今先據城,以逸待勞,非所以爭也)”라고 말하고, 실제로 쫓아온 적을 크게 깨뜨린 일이 실려 있다.[6]

당나라 두우(杜佑)의 《통전(通典)》은 권156 〈병(兵) 9〉에서 ‘以逸待勞’를 아예 항목 이름으로 세우고 《손자》 〈허실〉의 구절과 사례를 모았다.[7] 이처럼 이 말은 병서의 한 구절에서 출발해 한대 이후 장수들의 상주문과 병서 분류어로 굳어졌다.

《삼십육계》의 제4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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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말~청 이후에 정리된 것으로 보이는 병법서 《삼십육계》는 첫 묶음인 승전계(勝戰計)의 네 번째 계책으로 ‘以逸待勞’를 두었다.[8]

困敵之勢,不以戰;損剛益柔。

“적의 기세를 곤궁하게 만드는 데에는 싸움으로 하지 않는다. 굳센 것을 덜어 부드러운 것을 보탠다.” 뒷구절은 《주역》 손괘(損卦)의 말을 빌린 것이다. 해설(按語)은 앞의 《손자》 〈허실〉 구절을 인용한 다음, “병서는 적을 논했지만 여기서는 형세를 논한다. 그 뜻은 땅을 골라 적을 기다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간단함으로 번잡함을 다스리고, 변하지 않음으로 변함에 대응하며, 움직이지 않음으로 움직임에 대응하는 데 있다”고 풀고, 관중(管仲)이 군령을 내정에 담은 일, 손빈(孫臏)이 마릉(馬陵)에서 방연(龐涓)을 기다려 친 일, 이목(李牧)이 안문(雁門)을 지키며 오래 싸우지 않다가 흉노를 크게 깨뜨린 일을 예로 든다.[8] 곧 《삼십육계》의 이일대로는 단순히 먼저 도착해 쉬라는 뜻을 넘어, 주도권을 쥐고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운영 전반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사례: 왕전의 초나라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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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대로의 예로 자주 거론되는 것은 진(秦)나라 장수 왕전(王翦)의 초나라 정벌이다. 《사기》 〈백기왕전열전〉에 따르면, 이신(李信)이 20만 군으로 초나라를 치다 패하자 진시황은 은퇴했던 왕전에게 60만 군을 주었다. 왕전은 초나라 땅에 이르러 성채를 굳게 지키기만 하고 싸우지 않았다. 초나라 군이 여러 번 싸움을 걸어도 나가지 않고, 날마다 병사들을 쉬고 씻게 하며 잘 먹이고 자신도 병사들과 같은 음식을 먹었다. 얼마 뒤 사람을 보내 “군중에서 무슨 놀이를 하느냐”고 묻자 “돌을 던지고 뛰어넘기를 겨루고 있다(方投石超距)”고 하니, 왕전은 “이제 병사들을 쓸 만하다”고 했다. 싸움을 걸다 지친 초나라 군이 동쪽으로 물러나자 왕전은 뒤쫓아 크게 깨뜨리고 장수 항연(項燕)을 죽였으며, 한 해 남짓 뒤 초왕 부추(負芻)를 사로잡았다.[9] 남송의 왕지도(王之道)는 《손자》의 ‘以佚待勞’를 풀면서 “돌을 던지고 뛰어넘게 한 것, 이것이 왕전이 항연을 죽인 방법”이라고 바로 이 일을 예로 들었다.[10] 항연은 뒤에 초한 전쟁을 일으킨 항량(項梁)의 아버지이자 항우의 할아버지이다.[11]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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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는 건국 직후부터 이 말이 보인다.

  • 태조 3년(1394) 곡산 부사 전역(田易)은 도평의사사에 글을 올려 “군량을 굳센 성에 쌓고 요해처에 진을 둔 뒤에야, 편안함으로 지친 적을 기다리고 배부름으로 굶주린 적을 기다려 적의 목숨을 쥘 수 있다(然後以逸待勞, 以飽待飢, 而能制敵之命也)”고 하며 당 태종의 안시성 공격 때 고구려 장수들의 일을 예로 들었다.[12]
  • 세종 15년(1433) 파저강 야인 정벌을 논할 때는 “나무 울타리를 치고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면 얼음이 얼 때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니, 우리는 엄하게 지키며 편안함으로 지친 적을 기다린다. 이것이 병가에서 말하는 적을 끌어오되 적에게 끌려가지 않는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13] 《손자》 〈허실〉의 ‘致人而不致於人’과 함께 쓴 것이다.
  • 상대 팀이 연장전까지 치르고 올라온 만큼, 우리는 이일대로의 자세로 체력을 아끼며 후반을 노리기로 했다.
  • 디도스 공격이 몰려올 때 무리하게 맞서기보다 미리 캐시와 우회 경로를 갖춰 두고 공격이 지치기를 기다리는 것도 일종의 이일대로이다.
  • 협상에서 먼저 조건을 내밀지 않고 상대가 조급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이일대로의 계산이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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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일격로(以逸擊勞): 편안한 군사로 지친 적을 침. 《한서》 〈조충국전〉에 나온다.
  • 양정축예(養精蓄銳): 기운을 기르고 날카로움을 쌓음.
  • 지피지기(知彼知己): 적을 알고 나를 앎. 《손자》 〈모공〉.
  • 반대 의미: 피어분명(疲於奔命): 명령에 따라 바쁘게 뛰어다니다 지침.
  • 《삼십육계》의 다른 계책: 위위구조, 차도살인, 성동격서, 미인계, 공성계.
  1. ↑ 1.0 1.1 1.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以逸待勞”,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72, 확인날짜=2026-10-03.
  2. ↑ 《손자(孫子)》 〈군쟁(軍爭)〉.
  3. ↑ 《손자》 〈허실(虛實)〉.
  4. ↑ 《오자(吳子)》 〈치병(治兵)〉.
  5. ↑ 《한서(漢書)》 권69 〈조충국전(趙充國傳)〉.
  6. ↑ 《후한서(後漢書)》 권17 〈풍이전(馮異傳)〉.
  7. ↑ 두우(杜佑), 《통전(通典)》 권156 〈병(兵) 9〉.
  8. ↑ 8.0 8.1 《삼십육계(三十六計)》 〈승전계(勝戰計)〉 제4계 ‘이일대로(以逸待勞)’.
  9. ↑ 사마천, 《사기》 권73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
  10. ↑ 왕지도(王之道), 《상산집(相山集)》 권21.
  11. ↑ 사마천, 《사기》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 1월 28일 무진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aa_10301028_002, 확인날짜=2026-10-03.
  13.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59권, 세종 15년 2월 15일 기해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502015_002,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