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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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정심(誠意正心)은 뜻을 정성스럽게 품고 마음을 바르게 가짐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유교 경전 《대학(大學)》의 여덟 조목(팔조목) 가운데 셋째와 넷째인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이은 말이다.
자기 뜻을 속이지 않고 참되게 하며(성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도록 마음을 바로잡는(정심) 내면 수양을 말한다. 《대학》의 팔조목은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인데, 성의정심은 앎을 넓히는 격물치지와 몸을 닦는 수신 사이에 놓인 단계다. 조선 시대에는 임금에게 학문과 수양을 권하는 상소와 경연에서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한 줄로 이어 쓰는 일이 많았다.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는 《대학》의 서술 순서(“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를 따라 ‘정심성의(正心誠意)’로 쓰는 경우가 많다.[2][3] 한국 문헌에서는 두 순서가 모두 쓰였다(§ 한국에서의 쓰임).
《대학》 첫머리, 이른바 경(經) 1장에 나온다. 《대학》은 본래 《예기(禮記)》의 한 편이었고, 송나라 주희(朱熹)가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지어 사서의 하나로 삼았다.[4]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欲治其國者,先齊其家。欲齊其家者,先脩其身。欲脩其身者,先正其心。欲正其心者,先誠其意。欲誠其意者,先致其知。致知在格物。物格而後知至,知至而後意誠,意誠而後心正,心正而後身脩,身脩而後家齊,家齊而後國治,國治而後天下平。
“옛날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고, …… 그 몸을 닦고자 한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했으며,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한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정성스럽게 했고,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자 한 사람은 먼저 그 앎을 지극히 했으니,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은 사물에 나아가는 데 있다. 사물에 나아간 뒤에 앎이 지극해지고, 앎이 지극해진 뒤에 뜻이 정성스러워지며, 뜻이 정성스러워진 뒤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 ……”
거슬러 올라가며 말할 때는 ‘정심 → 성의’, 차례대로 말할 때는 ‘성의 → 정심’ 순서가 된다. 중국어의 ‘正心誠意’는 앞의 순서를, 한국어의 ‘誠意正心’은 뒤의 순서를 따른 셈이다. 《대학》 원문에는 네 글자가 이어져 나오지 않지만, 바로 이 구절이 출전이 된다. 《성어전》도 이 대목을 語本으로 든다.[2]
《대학》은 뒤에서 두 조목을 따로 풀이한다. 성의에 대해서는 “이른바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니,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 하고 좋은 빛깔을 좋아하듯 하는 것(所謂誠其意者,毋自欺也。如惡惡臭,如好好色)”이라 하고, 그래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故君子必慎其獨也)고 했다.[5] 정심에 대해서는 몸에 분노·두려움·좋아함·근심이 있으면 마음이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하고, “마음이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心不在焉,視而不見,聽而不聞,食而不知其味)”고 했다.[5]
두 조목을 붙여 한 단어처럼 쓰는 것은 《대학》이 중시된 송나라 이후에 흔해졌다. 《송사(宋史)》 〈주희전〉에는 1188년(순희 15) 주희가 효종에게 입대하러 가는 길에 어떤 이가 “정심성의(正心誠意)의 논의는 임금께서 듣기 싫어하시니 말하지 말라”고 하자, 주희가 “내가 평생 배운 것이 오직 이 네 글자뿐인데 어찌 입을 다물어 우리 임금을 속이겠는가(吾平生所學,惟此四字,豈可隱默以欺吾君乎)”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6] 《성어전》은 송나라 하원정(夏元鼎)의 사(詞) 〈만정방(滿庭芳)〉의 “정심성의는 유교·불교·도교가 모두 같다(正心誠意,儒釋道俱同)”와 《원사(元史)》 〈오고손양정전(烏古孫良楨傳)〉을 용례로 든다.[2]
고려 말 이제현(李齊賢)은 충목왕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도당(都堂)에 글을 올려, 어진 선비를 골라 《효경》과 사서를 강론하게 해 “격물치지·성의정심의 도를 익히게 하라(以習格物致知誠意正心之道)”고 청했다.[7]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11월 간관들은 진덕수(眞德秀)의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설명하며 그 책이 “경외를 숭상하고 일욕을 경계하는 것으로 성의정심의 요체를 삼았다(崇敬畏戒逸欲者,誠意正心之要也)”고 하고, 날마다 경연에서 《대학》을 강론해 “격물치지·성의정심의 학문을 연구하라”고 청해 윤허를 받았다.[8]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誠意正心이 36건, 正心誠意가 32건 보여, 두 순서가 비슷하게 쓰였다.[9] 오늘날 한국어 사전에는 ‘성의정심’ 쪽이 올라 있다.[1]
- 보안 사고의 책임을 덮기보다 먼저 사실을 밝히는 것이 조직의 성의정심이다.
- 선비들은 성의정심을 수신의 바탕으로 삼아 홀로 있을 때에도 몸가짐을 삼갔다.
- ↑ 1.0 1.1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성의정심”,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C%84%B1%EC%9D%98%EC%A0%95%EC%8B%AC&dicType=1, 확인날짜=2026-10-03.
- ↑ 2.0 2.1 2.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正心誠意”,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6954, 확인날짜=2026-10-03.
- ↑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 “正心誠意”,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AD%A3%E5%BF%83%E8%AA%A0%E6%84%8F, 확인날짜=2026-10-03.
- ↑ 4.0 4.1 《예기(禮記)》 〈대학(大學)〉; 주희(朱熹), 《대학장구(大學章句)》 경 1장.
- ↑ 5.0 5.1 《예기(禮記)》 〈대학(大學)〉; 주희(朱熹), 《대학장구(大學章句)》 전 6장·전 7장.
- ↑ 탈탈(脫脫) 등, 《송사(宋史)》 권429 〈도학전 3 주희(朱熹)〉.
- ↑ 이제현(李齊賢), 〈상도당서(上都堂書)〉, 《익재난고(益齋亂藁)》,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11월 14일 신묘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aa_10111014_001,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誠意正心”·“正心誠意”,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