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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身土不二)는 몸과 땅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으로, 자기가 사는 땅에서 산출한 농산물이라야 체질에 잘 맞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오늘날 한국에서는 국산 농산물을 먹자는 구호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989년 농업협동조합중앙회(농협)가 우리 농산물 애용 운동의 구호로 내세우면서 대중화되었고,[2] 지금도 “역시 신토불이”처럼 우리 땅에서 난 음식이 몸에 좋다는 뜻으로 쓴다.

하지만 같은 네 글자는 본래 전혀 다른 뜻의 불교 용어였다. 이 말의 역사는 세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중국 천태종 문헌의 불교 용어: 부처의 몸(身)과 그 부처가 머무는 국토(土)는 둘이 아니다.
  2. 근대 일본 식양(食養) 운동의 구호: 그 땅, 그 철에 난 음식이 몸에 좋다.
  3. 1989년 이후 한국 농협의 구호: 우리 농산물이 우리 몸에 맞는다.

일본어에서는 불교 용어일 때 ‘しんどふに’, 식양 운동의 구호일 때 ‘しんどふじ’로 읽어 구별한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身 신 몸 (불교) 행위의 결과로 받은 몸 / (현대) 사람의 몸
土 토 흙, 땅 (불교) 몸이 의지하는 국토 / (현대) 사는 땅, 그 땅의 산물
不 불 아니다 아니다
二 이 둘 둘

‘몸과 땅(身土)은 둘이 아니다(不二)’라는 짜임이다. ‘불이(不二)’는 둘로 보이는 것이 본래 하나라는 불교의 표현으로, ‘불이문(不二門)’, ‘불이법문(不二法門)’ 같은 말에도 쓰인다.

불교 용어 ‘신토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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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 교학에서는 중생이나 부처의 몸을 지난 행위의 과보로 받은 ‘정보(正報)’, 그 몸이 의지해 사는 환경과 국토를 ‘의보(依報)’라 하고, 둘이 따로 있지 않다는 ‘의정불이(依正不二)’를 말한다. 《디지털 다이지센》은 불교의 ‘신토불이(しんどふに)’를 “몸(정보)과 땅(의보)의 둘은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으로 풀이한다.[3]

이 표현은 당나라 천태종 승려 형계 담연(荊溪湛然, 711~782)의 《유마경소기(維摩經疏記)》에 보인다. 《유마경》 첫머리에서 부처가 불국토를 나타내 보인 대목을 풀이하며 담연은 이렇게 적었다.

離身無別土者,此法身身土不二之明文也。諸部文中雖有此意文相不顯,不得此文將何以消諸部碩妨?

[4]

“‘몸을 떠나서는 따로 국토가 없다’는 것은 법신(法身)에서 몸과 국토가 둘이 아님을 밝힌 분명한 글이다. 여러 경전에 이 뜻이 있기는 하나 글로 드러나지 않았으니, 이 글이 없으면 여러 경전의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겠는가.”

북송의 천태종 승려 고산 지원(孤山智圓, 976~1022)은 《유마경약소수유기(維摩經略疏垂裕記)》 권2에서 “법신 아래는 신토불이를 드러낸다(法身下顯身土不二)”고 풀이하고 담연의 위 구절을 인용했다.[5] 원나라 보도(普度)가 1305년에 엮은 정토 문헌 《여산연종보감(廬山蓮宗寶鑑)》 권2에는 ‘신토불이’를 제목으로 한 게송이 있다.

身土不二:毘盧即是寂光土,寂光即是大毘盧。身土本來無二相,皇城元是大京都。

[6]

“신토불이: 비로자나불이 곧 상적광토(常寂光土)요, 상적광토가 곧 큰 비로자나불이다. 몸과 국토는 본래 두 모습이 없으니, 황성이 원래 큰 서울이다.” 부처의 몸과 그 부처가 머무는 정토가 본래 하나라는 교리를 읊은 것으로, 음식이나 농산물과는 관계가 없다.

근대 일본의 식양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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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난 음식과 사람의 몸을 연결하는 뜻은 근대 일본에서 생겼다. 《디지털 다이지센》은 식양 운동의 ‘신토불이(しんどふじ)’를 “사람의 몸과 땅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 그 땅에서 그 계절에 난 것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생각”으로 풀고, 메이지 시대에 이시즈카 사겐(石塚左玄) 등이 주장했다고 설명한다.[3] 이시즈카 사겐(1851~1909)은 현미와 식양의 원조로 꼽히는 의사·약제사로, 그가 회장을 맡은 ‘식양회(食養會)’를 통해 이 생각이 퍼졌다고 소개된다.[7] 불교 용어를 빌려 왔지만 뜻은 달라진 것이다.

한국 농협의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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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신토불이가 대중적인 말이 된 것은 1989년 이후이다. 당시 농협중앙회장 한호선(1936~2025)은 1989년 ‘신토불이’ 운동을 직접 기획해 전국에 우리 농산물 애용 바람을 일으켰다.[2]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으로 농산물 시장 개방 압력이 커지던 때였다.[8] 1993년에는 가수 배일호의 노래 〈신토불이〉가 발표되어 이 말을 더욱 널리 알렸다.[9] 이 구호가 일본 식양 운동에서 먼저 쓰인 말이라는 점은 국내 언론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8]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는 ‘身土不二’가 검색되지 않는다.[10] 조선 시대에는 쓰이지 않던 말이 20세기 말에 구호로 들어와 표준국어대사전에까지 오른 셈이다.

잘못 알려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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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를 설명하며 조조(曹操)가 한중(漢中)에서 유비와 싸울 때 향수병에 걸린 병사들에게 화타(華佗)가 고향 흙을 물에 타 먹이게 했다는 일화가 소개되는 경우가 있다(나무위키 등). 그러나 《삼국지(三國志)》 〈화타전〉에 따르면 화타는 조조에게 처형되었고, 조조는 아들 조충(曹沖)이 병들어 죽어 갈 때 “화타를 죽인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다.[11] 조충은 건안 13년(208)에 죽었으므로,[12] 화타는 조조가 한중에서 유비와 싸운 건안 24년(219)보다 10년도 더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 일화는 정사와 맞지 않는다.

다른 언어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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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표현 비고
한국어 신토불이(身土不二) 국산 농산물 애용 구호로 대중화
일본어 身土不二(しんどふに / しんどふじ) 불교 용어는 ‘ふに’, 식양 구호는 ‘ふじ’로 읽음
중국어 身土不二 불교 용어. 《성어전》 표제어 아님
  • 신토불이라더니, 외국 출장에서 돌아와 먹는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다.
  • 이번 급식 개편은 신토불이를 내세워 지역 농산물 비중을 크게 늘렸다.
  • 신토불이라는 말이 생기기 훨씬 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담은 글이 있다. 1898년 최익현(崔益鉉)은 상소에서 김홍륙(金鴻陸) 독차 사건을 언급하며, 외국 음식은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토산이 같지 않아 위의 기운이 상한다(土産不同,胃氣受損)”며 임금에게 조심하기를 청했다.[13]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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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정불이(依正不二): 정보(몸)와 의보(환경)가 둘이 아님. 불교의 신토불이와 같은 뜻.
  • 지산지소(地産地消): 그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그 지역에서 소비함. 일본에서 쓰는 말.
  • 불이법문(不二法門): 둘이 아닌 진리에 들어가는 가르침. 《유마경》.
  • 산해진미(山海珍味): 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진귀한 음식.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신토불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B%A0%ED%86%A0%EB%B6%88%EC%9D%B4, 확인날짜=2026-10-01.
  2. ↑ 2.0 2.1 “‘신토불이 운동’ 앞장…한호선 전 농협중앙회장 별세”, 《농민신문》, 2025-07-28, https://www.nongmin.com/article/20250728500637, 확인날짜=2026-10-01.
  3. ↑ 3.0 3.1 3.2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 “身土不二”,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BA%AB%E5%9C%9F%E4%B8%8D%E4%BA%8C-538615, 확인날짜=2026-10-01.
  4. ↑ 담연(湛然), 《유마경소기(維摩經疏記)》 권1, CBETA X0340, https://cbetaonline.dila.edu.tw/, 확인날짜=2026-10-01.
  5. ↑ 지원(智圓), 《유마경약소수유기(維摩經略疏垂裕記)》 권2, CBETA T1779, https://cbetaonline.dila.edu.tw/, 확인날짜=2026-10-01.
  6. ↑ 보도(普度) 편, 《여산연종보감(廬山蓮宗寶鑑)》 권2, CBETA T1973, https://cbetaonline.dila.edu.tw/, 확인날짜=2026-10-01.
  7. ↑ 참고: ELEMINIST 편집부, “「身土不二(しんどふじ・しんどふに)」とは 意味や考え方、地産地消との違いを知る”, 2021-02-26, https://eleminist.com/article/1067, 확인날짜=2026-10-01.
  8. ↑ 8.0 8.1 참고: 이윤옥, “‘신토불이’의 유래”, 《우리문화신문》, 2013-08-19, https://koya-culture.com/mobile/article.html?no=92074, 확인날짜=2026-10-01.
  9.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신토불이「002」”(김동찬 작사, 박현진 작곡, 1993년 배일호 앨범 수록), https://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1472975, 확인날짜=2026-10-01.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국역 검색, 승정원일기 검색,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고전원문 검색 “身土不二”, 확인날짜=2026-10-01.
  11. ↑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29 〈위서(魏書)·방기전(方技傳)〉 화타.
  12. ↑ 진수(陳壽), 《삼국지》 권20 〈위서·무문세왕공전(武文世王公傳)〉 등애왕 충(鄧哀王沖).
  13.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38권, 고종 35년 12월 10일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za_13512010_002, 확인날짜=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