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불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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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불관언(吾不關焉)은 ‘나는 그 일에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모른 체하는 태도를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인데도 “나와는 상관없다”며 손을 놓아 버리는 태도를 비판할 때 주로 쓴다. “주민들의 불편에는 오불관언이다”, “오불관언의 태도로 일관하다”처럼 명사로 쓰거나, 서술어 자리에 ‘~이다’를 붙여 쓴다. 한문 어순 그대로 ‘吾(나)+不關(관계하지 않다)+焉(단정의 어조사)’으로 된 짧은 문장이다.
같은 한자로 된 말이 중국 고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일본어에는 ‘我関せず焉(われかんせずえん)’, 줄여서 ‘我関せず’라는 같은 뜻의 관용 표현이 있다.[2] 현대 중국어로는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뜻의 “事不關己,高高掛起(자기와 상관없는 일은 높이 걸어 둔다)”라는 속담이나, 일에서 몸을 빼 상관하지 않는다는 置身事外 등이 비슷한 뜻을 나타낸다.[3][4]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한문 전적 전문 검색에서 ‘吾不關焉’이라는 네 글자는 확인되지 않는다.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과 번역문,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도 나오지 않는다. 조선 문헌에는 정승의 직분을 두고 “임금의 덕의 득실과 정사의 잘잘못에 관계되지 않는 것이 없다(君德之得失,政事之臧否,靡不關焉)”라고 한 것처럼 ‘不關焉’이 쓰인 문장은 있으나,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으로 쓰인 예는 아니다.[5]
이 형태는 근대 일본에서 먼저 보인다. 일본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에는 한자로 ‘吾不關焉’이라 적은 예가 1892년 《이탈리아 건국 삼걸(伊太利建国三傑)》에 이미 있고,[6] 이를 훈독한 ‘吾關せず焉’도 1897년 이후의 책과 1906년의 문법서 《신일본문전(新日本文典)》 등에 보인다.[7] 《일본국어대사전》이 든 첫 용례(1941)보다 훨씬 이르다.[2] 한국에서는 1920년대 잡지와 신문에서 널리 쓰였다. 《개벽》 제61호(1925)의 논설에는 조선 기독교계의 현실을 두고 “개중에 吾不關焉의 태도를 갖는 이도 있지만”이라는 문장이 있고,[8] 1930년대 《동아일보》에는 “大衆의 不便은 吾不關焉”(1939) 같은 기사 제목이 자주 보인다.[9] 이런 흐름으로 보아, 한문 투의 일본어 관용구가 근대에 들어와 한국에서 한자성어처럼 굳은 것으로 보인다.
- 보안 담당 부서만 챙기면 된다는 오불관언의 태도로는 사내 피싱 사고를 막을 수 없다.
- 장애 알림이 수십 건 쌓이는데도 담당 팀은 오불관언이었다.
- 이웃의 어려움에 오불관언하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하기 어렵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오불관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8%A4%EB%B6%88%EA%B4%80%EC%96%B8, 확인날짜=2026-09-30.
- ↑ 2.0 2.1 2.2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我関せず焉”,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88%91%E9%96%A2%E3%81%9B%E3%81%9A%E7%84%89, 확인날짜=2026-09-30.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事不關己,高高掛起”,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7766, 확인날짜=2026-09-30.
- ↑ 4.0 4.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置身事外”,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658, 확인날짜=2026-09-3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1권, 성종 2년 7월 27일 무술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0207027_003, 확인날짜=2026-09-30.
- ↑ 平田久 편역, 《伊太利建国三傑》, 1892, 일본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s://dl.ndl.go.jp/pid/777020, 확인날짜=2026-09-30.
- ↑ 上田万年·福井久蔵, 《新日本文典》, 1906, 일본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s://dl.ndl.go.jp/pid/992206, 확인날짜=2026-09-30.
- ↑ 견지동인(堅志洞人), 〈『에루살넴의 朝鮮』을 바라보면서, 朝鮮 基督敎 現狀에 對한 所感〉, 《개벽》 제61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s://db.history.go.kr/id/ma_013_0600_0140, 확인날짜=2026-09-30.
- ↑ 〈大衆의 不便은 吾不關焉 配電會社謀利에 汲汲〉, 《동아일보》 1939년 7월 5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s://db.history.go.kr/id/npda_1939_07_05_w0002_0180, 확인날짜=2026-09-30.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수수방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8%98%EC%88%98%EB%B0%A9%EA%B4%80, 확인날짜=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