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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모도원(日暮途遠)은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늙고 쇠약한데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아직 많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사기》에 나오는 오자서(伍子胥)의 말에서 나왔다.[1]

‘해(日)는 저무는데(暮) 길(途)은 멀다(遠)’는 말이다. 남은 시간은 얼마 없는데 이룰 일은 까마득할 때의 조급함과 탄식을 담는다. 원래 오자서는 이 말을 ‘그래서 도리에 어긋난 일도 서둘러 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으로 썼기 때문에, 이 말 뒤에는 흔히 ‘도행역시(倒行逆施, 도리를 거슬러 행함)’가 함께 붙어 다녔다.

일본어에서는 ‘日暮れて道遠し(ひくれてみちとおし)’라고 하며, 나이는 들었는데 목적은 아직 멀었다는 뜻과, 기한이 다가오는데 일이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쓴다.[2] 중국어에서는 ‘日暮途窮(날은 저물고 길은 막혔다)’이 더 흔하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日暮途遠’을 이 말의 이형으로 다룬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日 일 해, 날 해
暮 모 저물다 (해가) 저물다
途 도 길 갈 길
遠 원 멀다 멀다

오자서와 신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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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 사람 오자서(伍員)는 평왕(平王)이 아버지와 형을 죽이자 오나라로 달아나 오왕 합려를 섬겼다. 기원전 506년 오나라 군대가 초나라 도읍 영(郢)을 함락하자, 오자서는 달아난 소왕을 찾지 못하고 이미 죽은 평왕의 무덤을 파헤쳤다.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은 이렇게 적는다.[4]

乃掘楚平王墓,出其尸,鞭之三百,然後已。申包胥亡於山中,使人謂子胥曰:「子之報讎,其以甚乎!吾聞之,人眾者勝天,天定亦能破人。今子故平王之臣,親北面而事之,今至於僇死人,此豈其無天道之極乎!」伍子胥曰:「為我謝申包胥曰,吾日莫途遠,吾故倒行而逆施之。」於是申包胥走秦告急,求救於秦。

“초 평왕의 무덤을 파서 시신을 꺼내 채찍으로 삼백 대를 친 뒤에야 그만두었다. 산속에 숨어 있던 신포서(申包胥)가 사람을 보내 오자서에게 말했다. ‘그대의 복수는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내가 듣기로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기도 하지만, 하늘이 정하면 사람을 깨뜨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대는 본래 평왕의 신하로 몸소 북면하여 섬겼는데, 이제 죽은 사람을 욕보이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천도를 거스른 극치가 아니겠는가.’ 오자서가 말했다. ‘나를 위해 신포서에게 사과해 다오. 나는 해는 저무는데 길은 멀어서, 그래서 거꾸로 가고 거슬러 행한 것이다.’ 이에 신포서는 진(秦)나라로 달려가 위급을 알리고 구원을 청했다.” 신포서는 진나라 조정에서 이레 밤낮을 울어 마침내 구원병을 얻어 낸다.[4]

《사기》 원문은 ‘暮’ 대신 같은 뜻의 옛 글자 ‘莫’을 써서 ‘日莫途遠’이라 했다. 《성어전》도 ‘莫’은 ‘暮’와 같다고 풀이한다.[3] 《태평어람》이 이 대목을 인용할 때는 ‘吾日暮途遠’으로 적었다.[5]

나무위키 등에는 신포서가 이때 다른 나라에 가 있다가 편지를 보냈다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사기》 원문에서는 신포서가 산속에 숨어 있다가 사람을 보내 말을 전했고, 진나라로 간 것은 오자서의 대답을 들은 뒤이다.[4] 한편 시신의 눈을 도려냈다는 이야기는 《사기》가 아니라 후한의 《오월춘추(吳越春秋)》에 나온다. 이 책은 오자서가 평왕의 시신을 채찍질하고 “왼발로 배를 밟고 오른손으로 눈을 도려내며(左足踐腹,右手抉其目)” 꾸짖었다고 적었다.[6]

같은 표현은 《사기》 〈평진후주보열전〉에도 나온다. 한 무제 때의 주보언(主父偃)은 대신들의 비리를 들추어 위세가 커지자 누군가 “너무 횡포하다”고 하니 이렇게 답했다.[7]

臣結發游學四十餘年,身不得遂,親不以為子,昆弟不收,賓客棄我,我阸日久矣。且丈夫生不五鼎食,死即五鼎烹耳。吾日暮途遠,故倒行暴施之。

“나는 머리를 땋고 공부를 떠난 지 사십여 년이 되도록 뜻을 이루지 못해, 부모는 자식으로 여기지 않고 형제는 거두지 않고 빈객은 나를 버려 곤궁한 지 오래되었다. 대장부가 살아서 오정(五鼎)의 음식을 먹지 못할 바에는 죽어서 오정에 삶기면 그만이다. 나는 해는 저물고 길은 멀어서 거꾸로 가고 사납게 행하는 것이다.”[7] 오자서가 복수를 서두른 변명이었다면, 주보언에게는 늦게 얻은 출세를 밀어붙이는 변명이었다. 《성어전》은 이 두 대목에서 ‘日暮途窮’이 나왔다고 본다.[3] 당나라 설봉(薛逢)도 재상에게 올린 글에서 “다만 해는 저물고 길은 멀어 거꾸로 가고 거슬러 행할 뿐(但以日暮途遠,倒行逆施)”이라며 자신의 다급한 처지를 빗대었다.[8]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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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이 말이 효종의 북벌 의지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현종 9년(1668) 송시열(宋時烈)은 현종에게, 지난날 재상 이경여(李敬輿)가 “나라의 힘은 미약한데 임금께서 너무 마음을 쓰시니 일을 이루기도 전에 도리어 화를 부를까 걱정”이라고 하자 효종이 “지극한 아픔이 마음에 있어, 해는 저물고 길은 멀다는 탄식이 있다(至痛在心,有日暮途遠之歎)”고 답했다고 전했다. 송시열은 “해는 저물고 길은 멀다는 것은 우리의 일은 큰데 나이는 이미 저물었다는 말인데, 그때 선왕은 한창 나이였으니 어찌 이런 탄식을 하셨겠는가. 신은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9] 이 ‘至痛在心,日暮途遠’은 뒤에 숙종 대 신하들이 효종의 뜻을 기릴 때 거듭 인용되었다.[10]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日暮途遠’이 24건, ‘日暮道遠’이 9건 나온다.[11]

  • 정년까지 두 해가 남았는데 레거시 시스템 이전은 아직 절반도 못 했으니 일모도원의 심정이다.
  • 마감은 내일인데 테스트 케이스는 산더미 같아 일모도원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 늦깎이로 학위 공부를 시작한 그는 일모도원을 핑계 삼지 않고 하루하루 꾸준히 나아갔다.
  • 경기도 가평군의 조종암(朝宗巖)에는 효종이 내린 글 ‘日暮途遠 至痛在心’이 송시열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명나라 의종의 친필 ‘思無邪’, 선조의 친필 ‘萬折必東 再造藩邦’과 함께 새겨져 있으며, 조종암은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12]
  • 일본의 《일본국어대사전》은 이 말의 첫 용례로 요시다 겐코의 수필 《쓰레즈레구사(徒然草)》(1331년경) 제112단 “일생은 잡다한 일의 작은 예절에 가로막혀 헛되이 저물 것이다. 날은 저물고 길은 멀다”를 든다.[2]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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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모도궁(日暮途窮): 날은 저물고 길은 막힘. 처지가 몹시 궁하거나 늘그막에 이른 것을 비유한다. 중국어에서 주로 쓰는 형태.
  • 도행역시(倒行逆施): 도리를 거슬러 행함. 같은 대목에서 나온 말.
  • 굴묘편시(掘墓鞭屍):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매질함. 지나친 복수를 이르는 말로, 같은 고사에서 나왔다.
  • 임중도원(任重道遠):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 《논어》 〈태백〉에서 증자가 한 말로, 맡은 책임이 크다는 데 무게가 있다.
  • 만시지탄(晩時之歎): 때를 놓친 탄식.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일모도원”,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C%EB%AA%A8%EB%8F%84%EC%9B%90, 확인날짜=2026-10-10.
  2. ↑ 2.0 2.1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日暮れて道遠し”,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7%A5%E6%9A%AE%E3%82%8C%E3%81%A6%E9%81%93%E9%81%A0%E3%81%97, 확인날짜=2026-10-10.
  3. ↑ 3.0 3.1 3.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日暮途窮”,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8406, 확인날짜=2026-10-10.
  4. ↑ 4.0 4.1 4.2 사마천, 《사기》 권66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5. ↑ 《태평어람(太平御覽)》 권394, 《사기》 인용.
  6. ↑ 조엽(趙曄), 《오월춘추(吳越春秋)》 〈합려내전(闔閭內傳)〉.
  7. ↑ 7.0 7.1 사마천, 《사기》 권112 〈평진후주보열전(平津侯主父列傳)〉.
  8. ↑ 설봉(薛逢), 〈상백상공계(上白相公啟)〉, 《전당문(全唐文)》.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현종실록》 15권, 현종 9년 10월 30일 을미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ra_10910030_001, 확인날짜=2026-10-10.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11권, 숙종 7년 1월 3일 정사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0701003_002, 확인날짜=2026-10-10.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日暮途遠’ 24건, ‘日暮道遠’ 9건), 확인날짜=2026-10-10.
  12.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종암”,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4411, 확인날짜=202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