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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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보옥(掌中寶玉)은 손안에 있는 보배로운 구슬이라는 뜻으로, 귀하고 보배롭게 여기는 존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같은 뜻으로 ‘장중주(掌中珠)’라고도 한다.[2]
비유의 뿌리는 서진(西晉)의 문인 부현(傅玄)의 악부시 〈단가행(短歌行)〉이다. 사랑하던 사람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목소리로 된 시로, 다음 구절이 있다.
昔君視我,如掌中珠。何意一朝,棄我溝渠。昔君與我,如影如形,何意一去,心如流星。
“지난날 그대는 나를 손바닥 위의 구슬처럼 보더니, 어찌 하루아침에 나를 도랑에 버렸는가. 지난날 그대와 나는 그림자와 몸처럼 붙어 있더니, 어찌 한번 떠나자 마음이 유성처럼 날아가 버렸는가.”
원래는 연인에게 한때 받았던 사랑을 가리킨 말이었다. 《성어전》과 일본의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 모두 이 시를 掌上明珠·掌中の珠의 출전으로 든다.[3][4] 뒤에 이 비유가 부모가 아끼는 자식, 특히 딸을 가리키게 되었다. 《성어전》은 금나라 원호문(元好問)이 벗의 아들 출생을 축하한 시의 “손바닥 위의 밝은 구슬이 늙은 마음을 위로하네(掌上明珠慰老懷)”, 《홍루몽》 제2회에서 임여해 부부가 다섯 살 난 딸 임대옥을 “손바닥 위의 밝은 구슬처럼 사랑했다”는 대목을 예로 든다.[3]
‘장중보옥’이라는 네 글자 형태는 중국·한국의 옛 한문 전적에서 확인되지 않으며,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과 번역문,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도 없다. 근대 한국어에서 쓰인 예가 확인된다. 대한제국 말기의 《대동학회월보》 제20호에 실린 〈가정교육의 필요〉에는 “掌中寶玉과 如히 思量”한다는 표현이 있고,[6] 1920~1930년대 《개벽》·《별건곤》·《삼천리》 등의 글에도 “장중보옥같이 기르는 외아들” 같은 쓰임이 보인다.[7] 부현의 ‘掌中珠’를 바탕으로 한국어에서 ‘보옥(寶玉)’을 넣어 네 글자로 다듬은 말로 보인다.
- 늦둥이 딸을 장중보옥처럼 키운 아버지는 딸의 첫 출근길을 끝내 따라나섰다.
- 그는 20년 동안 모은 초판본 서적들을 장중보옥처럼 아꼈다.
- 핵심 소스 코드 저장소를 장중보옥처럼 여긴다면 접근 권한과 백업부터 챙겨야 한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장중보옥”,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A5%EC%A4%91%EB%B3%B4%EC%98%A5, 확인날짜=2026-09-30.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장중주”,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A5%EC%A4%91%EC%A3%BC, 확인날짜=2026-09-30.
- ↑ 3.0 3.1 3.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掌上明珠”,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01, 확인날짜=2026-09-30.
- ↑ 4.0 4.1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掌中の珠”,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8E%8C%E4%B8%AD%E3%81%AE%E7%8F%A0, 확인날짜=2026-09-30.
- ↑ 부현(傅玄), 〈단가행(短歌行)〉, 곽무천(郭茂倩) 편, 《악부시집(樂府詩集)》 권30 〈상화가사(相和歌辭)〉.
- ↑ 김문연(金文演), 〈家庭敎育의 必要〉, 《대동학회월보》 제20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s://db.history.go.kr/id/ma_012_0190_0020, 확인날짜=2026-09-30.
- ↑ 최인아(崔忍兒), 〈勞働者의 안해〉, 《별건곤》 제27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s://db.history.go.kr/id/ma_015_0250_0420, 확인날짜=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