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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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 남을 속이려 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중국 진(秦)나라의 조고(趙高)가 자기 권세를 시험하려고 황제 호해(胡亥)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한 데서 나왔다.[1][2]
권력을 쥔 사람이 뻔한 사실을 뒤집어 말하고, 주변 사람들이 두려워서 그 말을 따르거나 입을 다무는 상황을 비판할 때 쓴다.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거짓을 통해 누가 자기 편인지 가려내고 반대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권력의 횡포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사슴을 말이라고 가리켜 자기의 위세를 드러냄. 일부러 옳고 그름을 뒤바꿈을 비유한다”로 풀이한다.[3] 일본어에서는 ‘鹿を指して馬となす(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라고 하며, 사람을 위압하여 잘못을 밀어붙이거나 남을 속여 빠뜨리는 것을 비유한다.[4]
진시황이 죽은 뒤 조고는 승상 이사(李斯)와 함께 유언을 조작해 맏아들 부소(扶蘇)를 죽게 하고 작은아들 호해를 2세 황제로 세웠다. 그 뒤 이사마저 죽이고 승상이 된 조고는 반란을 꾀하면서 신하들이 따르지 않을까 걱정해 먼저 시험을 해 보았다. 《사기(史記)》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는 2세 황제 3년(기원전 207) 8월의 일을 이렇게 적었다.[5]
八月己亥,趙高欲為亂,恐群臣不聽,乃先設驗,持鹿獻於二世,曰:「馬也。」二世笑曰:「丞相誤邪?謂鹿為馬。」問左右,左右或默,或言馬以阿順趙高。或言鹿,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後群臣皆畏高。
“8월 기해일, 조고가 난을 일으키려 했으나 신하들이 따르지 않을까 두려워, 먼저 시험해 보려고 사슴을 가져다 2세에게 바치며 ‘말입니다’라고 했다. 2세가 웃으며 ‘승상이 잘못 안 것이 아니오? 사슴을 말이라 하다니’ 하고 좌우에게 물었다. 좌우는 더러 입을 다물었고, 더러는 말이라고 하여 조고에게 아첨했으며, 더러는 사슴이라고 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들을 몰래 법에 걸어 해쳤다. 그 뒤로 신하들이 모두 조고를 두려워했다.”
원문에는 ‘지록위마’가 아니라 ‘위록위마(謂鹿爲馬, 사슴을 일러 말이라 함)’라고 되어 있다.
같은 《사기》 권87 〈이사열전(李斯列傳)〉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기서는 조고가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하자 좌우가 모두 “말입니다”라고 했고, 2세는 놀라 자기가 무엇에 홀렸다고 여겨 태복(太卜)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태복이 제사 때 재계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라고 하자, 2세는 상림원(上林苑)에 들어가 재계하다가 사냥을 하며 지나가던 사람을 쏘아 죽였고, 조고는 이를 빌미로 2세를 망이궁(望夷宮)으로 옮기게 했다.[6] 곧 〈이사열전〉에서는 황제가 스스로 자기 눈을 의심할 만큼 조정이 조고에게 넘어가 있었던 것으로 그려진다.
《성어전》은 이 성어의 전거로 한나라 초 육가(陸賈)의 《신어(新語)》 〈변혹(辨惑)〉을 든다. 여기서는 조고가 사슴이 끄는 수레를 타고 황제를 따라가자 2세가 “승상은 어찌 사슴을 타시오?”라고 물었고, 조고는 말이라고 우기며 신하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신하들은 “절반은 말이라 하고 절반은 사슴이라 했다(群臣半言馬,半言鹿)”. 육가는 “사슴과 말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인데도 그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했으니, 하물며 어두운 일에서야 어떻겠는가”라고 평했다.[7][3]
《사기》에 따르면 조고는 망이궁에 머물던 2세를 몰아붙여 자살하게 했다(〈진시황본기〉는 조고가 사위인 함양령 염락(閻樂)을 보냈다고 적었다). 〈이사열전〉은 그 뒤 조고가 옥새를 차고 제위에 오르려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좌우의 백관이 아무도 따르지 않았고, 전각에 오르자 전각이 세 번이나 무너지려 했다(左右百官莫從;上殿,殿欲壞者三)”. 조고는 하늘도 신하들도 자기를 허락하지 않음을 알고 시황제의 아우(〈진시황본기〉에는 2세의 형의 아들)인 자영(子嬰)에게 옥새를 넘겼다.[6] 나무위키 등에는 조고가 2세를 죽인 뒤 “직접 황제에 올랐다”고 적은 경우가 있으나, 원문은 조고가 제위에 오르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영을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자영은 즉위한 뒤 조고를 죽였는데, 〈이사열전〉은 환관 한담(韓談)이 찔러 죽였다고 하고, 〈진시황본기〉는 자영이 재궁(齋宮)에서 조고를 찔러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고 적었다.[5][6]
조고는 흔히 환관으로 소개된다. 《사기》 〈몽염열전〉은 “조고의 형제 여럿이 모두 은궁(隱宮)에서 태어났고, 그 어머니가 형벌을 받아 대대로 비천했다”고 적었고, 〈이사열전〉에서 2세는 조고를 “본래 환인(宦人)”이라 불렀다.[8][6] 옛 주석가들은 ‘隱宮’을 궁형을 받은 사람과 관련된 곳으로 풀었다. 그러나 마페이바이(馬非百) 등 현대 학자 일부는 이를 수호지 진간(睡虎地秦簡)에 보이는 ‘은관(隱官)’, 곧 형벌을 받아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을 거두어 일하게 하던 관청을 잘못 적은 것으로 보고, 조고가 거세된 환관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조고에게 염락이라는 사위가 있었다는 점도 논점이 되었다. 이에 대해 베이징대학의 신더융(辛德勇)은 2세의 말과 옛 주석, 조고가 궁궐 안에서 맡았던 일 등을 들고 ‘은궁’과 ‘은관’은 다른 것이라며 조고가 거세된 환관이었다고 반박했다.[9] 학계의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
후대 중국 문헌에서는 권신이 황제를 속이고 옳고 그름을 뒤집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였다. 《후한서(後漢書)》 〈두융열전(竇融列傳)〉에서 장제(章帝)는 공주의 땅을 빼앗은 외척 두헌(竇憲)을 꾸짖으며 “주인의 전원을 빼앗을 때 어찌 조고의 지록위마보다 낫다 하겠는가”라고 했다.[3] 《성어전》은 같은 뜻의 옛 형태로 ‘호록위마(呼鹿為馬)’(《양서》 〈하침열전〉), ‘지록작마(指鹿作馬)’(《삼국지》 〈위서·포훈전〉) 등을 든다.[3]
한국에서도 조선 초부터 쓰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8년(1408) 기사에서 좌정승 성석린(成石璘)은 귀양 보내게 된 대간들을 변호하며 “대간의 말이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 것이겠습니까(臺員之言,亦豈指鹿爲馬者哉)”라고 했다.[10] 양희지(楊熙止)는 흙비가 봄부터 여름까지 이어져 모두가 재변이라 하는데도 홀로 재변이 아니라고 한 임사홍(任士洪)을 두고 “이는 조고의 지록위마와 같다(此與趙高之指鹿爲馬)”고 상소했다.[11]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指 | 지 | 손가락, 가리키다 | 가리키다 |
| 鹿 | 록 | 사슴 | 사슴 |
| 爲 | 위 | 하다, 되다, 삼다 | ~라고 하다, ~로 삼다 |
| 馬 | 마 | 말 | 말 |
- 장애 원인이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윗선의 눈치를 보며 보고서에 ‘외부 요인’이라고만 적게 한 것은 지록위마나 다름없다.
- 모두가 결함을 알면서도 결정권자의 말에 맞춰 “문제없다”고 답하는 조직에서는 지록위마가 일상이 된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지록위마”,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7%80%EB%A1%9D%EC%9C%84%EB%A7%88, 확인날짜=2026-09-26.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지록위마”,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C%A7%80%EB%A1%9D%EC%9C%84%EB%A7%88, 확인날짜=2026-09-26.
- ↑ 3.0 3.1 3.2 3.3 3.4 3.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指鹿為馬”,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1, 확인날짜=2026-09-26.
-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鹿を指して馬となす”,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B9%BF%E3%82%92%E6%8C%87%E3%81%97%E3%81%A6%E9%A6%AC%E3%81%A8%E3%81%AA%E3%81%99, 확인날짜=2026-09-26.
- ↑ 5.0 5.1 사마천, 《사기》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 ↑ 6.0 6.1 6.2 6.3 사마천, 《사기》 권87 〈이사열전(李斯列傳)〉.
- ↑ 육가(陸賈), 《신어(新語)》 〈변혹(辨惑)〉.
- ↑ 사마천, 《사기》 권88 〈몽염열전(蒙恬列傳)〉.
- ↑ 辛德勇, “辛德勇读《赵正书》︱细说赵高:到底还是去势的人”, 澎湃新闻, 2019-06-21, https://www.thepaper.cn/newsDetail_forward_3408069,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 11월 1일 을사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0811001_004, 확인날짜=2026-09-26.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채제공 찬, 〈신도비명(神道碑銘)〉, 《대봉집(大峯集)》 권3,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73A_0040_010_0070, 확인날짜=2026-09-26.
- ↑ “2014년 올해의 사자성어 ‘指鹿爲馬’”, 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0141, 확인날짜=2026-09-26.
- ↑ “올해의 사자성어에 ‘지록위마’(指鹿爲馬)”, 한국일보, 2014-12-21,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201412211148977808, 확인날짜=2026-09-26.
-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馬鹿”,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A6%AC%E9%B9%BF,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