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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호위(狐假虎威)는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다는 뜻으로,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스스로는 힘이 없으면서 윗사람이나 권력자의 힘을 등에 업고 남을 누르는 사람을 비판할 때 쓴다. 권력자의 측근이나 친인척이 그 이름을 팔아 이권을 챙기는 일, 상급 기관의 권위를 내세워 하급자를 압박하는 일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 ‘假’는 ‘거짓’이 아니라 ‘빌리다’라는 뜻이다.[2]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쓰며,[2] 일본어에서는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는 여우(虎の威を借る狐, とらのいをかるきつね)’라고 풀어서 쓴다.[3]

《전국책》의 강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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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널리 알려진 출전은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1〉이다.[1] 초나라 선왕(宣王)이 “북쪽 나라들이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한다는데 정말 그러한가”라고 묻자 신하들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는데, 강일(江一)이 이렇게 답했다.[4]

荊宣王問群臣曰:「吾聞北方之畏昭奚恤也,果誠何如?」群臣莫對。江一對曰:「虎求百獸而食之,得狐。狐曰:『子無敢食我也。天帝使我長百獸,今子食我,是逆天帝命也。子以我為不信,吾為子先行,子隨我後,觀百獸之見我而敢不走乎?』虎以為然,故遂與之行。獸見之皆走。虎不知獸畏己而走也,以為畏狐也。今王之地方五千里,帶甲百萬,而專屬之昭奚恤;故北方之畏奚恤也,其實畏王之甲兵也,猶百獸之畏虎也。」

“호랑이가 온갖 짐승을 찾아 잡아먹다가 여우를 잡았습니다. 여우가 말했습니다. ‘그대는 감히 나를 먹지 못한다. 천제(天帝)께서 나를 온갖 짐승의 우두머리로 삼으셨으니, 지금 그대가 나를 먹으면 천제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앞장설 테니 그대는 뒤따라오며, 짐승들이 나를 보고 감히 달아나지 않는지 보라.’ 호랑이가 그럴듯하다 여겨 함께 가니, 짐승들이 보고 모두 달아났습니다.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두려워해 달아나는 줄 모르고 여우를 두려워한다고 여겼습니다. 지금 왕의 땅은 사방 5천 리이고 무장한 군사가 백만인데, 이를 오로지 소해휼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북쪽 나라들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왕의 군대를 두려워하는 것이니, 짐승들이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원문의 ‘북방(北方)’은 초나라 북쪽의 여러 나라, 곧 중원의 제후국을 가리킨다. 이를 ‘북방 민족’으로 옮긴 설명도 보이지만 전국 시대 초나라의 북쪽 이웃은 한·위·제 같은 제후국이었다. 강일은 소해휼이 위세를 떨치는 것이 그 자신의 힘이 아니라 왕이 맡긴 군대 덕분이라고 말해, 왕과 소해휼 사이를 떼어 놓으려 한 것이다. 일본의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은 강일이 소해휼의 권세를 시기해 이런 말을 했다면, 왕의 힘을 빌려 대신을 몰아내려 한 강일 자신이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여우’였던 셈이라고 꼬집는다.[3]

《성어전》이 보는 더 이른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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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이 이야기의 가장 이른 전거를 《윤문자(尹文子)》의 일문(逸文)으로 본다. 지금 전하는 《윤문자》에는 없고, 송나라 초의 백과사전 《태평어람(太平御覽)》 권494가 인용해 전하는 글이다.[2]

虎求百獸食之,得狐。狐曰:「子無食我也,天帝令我長百獸,今子食我,是逆天帝命也。子以我言不信,吾為子先行,子隨我後,觀百獸之見我不走乎?」虎以為然,故遂與行。獸見之皆走,虎不知獸之畏己而走,以為畏狐也。

《성어전》은 이 밖에 한나라 유향(劉向)의 《신서(新序)》 권2 〈잡사(雜事)〉와 《춘추후어(春秋後語)》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으며, 뜻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은 《전국책》이라고 설명한다.[2]

네 글자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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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을 비롯한 앞의 출전들에는 이야기만 있고 ‘狐假虎威’라는 네 글자는 나오지 않는다.[4] 남조 송나라의 《송서(宋書)》 〈은행전(恩倖傳)〉 서문에는 “쥐는 사당에 기대어 귀해지고 여우는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다(鼠憑社貴,狐藉虎威)”는 구절이 있고, 북주 유신(庾信)의 〈애강남부(哀江南賦)〉에는 “호랑이 위세를 여우가 빌렸다(虎威狐假)”는 구절이 있다.[2] 남송의 홍매(洪邁)는 《용재오필(容齋五筆)》 권1에 〈호가호위〉라는 조목을 두고, 속담에 이 말이 있는데 어린아이가 그 뜻을 묻기에 《전국책》과 《신서》에 실린 이야기를 보여 주었다고 적었다.[2] 《성어전》은 이 밖에 원나라 방회(方回)의 시 〈매우대수(梅雨大水)〉의 “여우가 범의 위세를 빌리니 이 무리는 넉넉하고, 쥐가 소뿔로 파고드니 우리 백성이 걱정이다(狐假虎威饒此輩,鼠穿牛角念吾民)”를 비롯해 명나라 《경세통언(警世通言)》 권31, 청나라 《유림외사(儒林外史)》 제1회와 청말 소설 《문명소사(文明小史)》 제30회를 네 글자 형태의 용례로 든다.[2]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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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부터 용례가 보인다. 이색(李穡)은 시 〈유감(有感)〉에서 “여우가 호랑이 위세를 빌리니 귀신이라도 있는 듯하다(狐假虎威如有神)”고 읊었다.[5] 김종직(金宗直)은 〈관해루기(觀海樓記)〉에서 원나라가 일본 원정을 준비하던 때 합포(合浦)에 머문 흔도(忽敦)와 홍다구(洪茶丘)가 “호가호위하며 함부로 횡포를 부려(狐假虎威。憑陵縱虣)” 호남 수천 리가 시달렸다고 썼다.[6]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명종 20년(1565) 대사헌 이탁(李鐸)과 대사간 박순(朴淳) 등이 윤원형(尹元衡)을 탄핵하며 “여우처럼 임금의 위세를 빌려 주고 빼앗는 것을 제멋대로 했다(狐假主威,而與奪隨手)”고 했다.[7] 광해군 13년(1621) 지평 유활(柳活)은 자신을 공격한 상소가 쓴 ‘狐威是假’라는 표현을 두고 “옛글에 호가호위라는 말이 있는데, 여우는 본래 위세가 없다(古之文字,有狐假虎威之語,狐則本無威)”며 그 속뜻을 따졌다. 이 대목은 중초본에만 있고 정초본을 만들 때 삭제 표시가 된 부분이다.[8]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狐 호 여우 여우(권세를 빌리는 사람)
假 가 거짓, 빌리다 빌리다
虎 호 범, 호랑이 호랑이(권력자)
威 위 위엄, 위세 위세
  • 관리자 계정을 가진 담당자가 경영진 지시라며 부서 권한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은 호가호위에 가깝다.
  • 실세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호가호위하던 인물들이 정권이 바뀌자 줄줄이 물러났다.
  • 사장의 친척이라는 점을 내세워 호가호위하는 직원 때문에 분위기가 나빠졌다.
  • 일본의 《일본국어대사전》은 ‘虎の威を借る狐’의 첫 용례로 교카집 《오긴가슈(吾吟我集)》(1649)의 노래를 든다.[3]
  • 《성어전》은 가까운 말로 ‘당나귀가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는 ‘여몽호피(驢蒙虎皮)’를 든다.[2] 서양에도 사자 가죽을 쓰고 다른 짐승을 겁주다 울음소리 때문에 정체가 드러난 당나귀 이야기가 이솝 우화로 전한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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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세기인(仗勢欺人): 세력을 믿고 남을 업신여김.[2]
  • 서빙사귀(鼠憑社貴): 쥐가 사당에 기대어 귀해짐. 권세 있는 곳에 기대어 행세함.[2]
  • 호가치장(狐假鴟張): 여우가 호랑이 위세를 빌리고 올빼미가 날개를 펼치듯 날뜀.[2]
  • “원님 덕에 나팔 분다”: 남의 덕으로 대접을 받거나 우쭐댄다는 우리말 속담.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호가호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8%B8%EA%B0%80%ED%98%B8%EC%9C%84, 확인날짜=2026-09-26.
  2. ↑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2.10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狐假虎威”,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32,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3.2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虎の威を借る狐”,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99%8E%E3%81%AE%E5%A8%81%E3%82%92%E5%80%9F%E3%82%8B%E7%8B%90, 확인날짜=2026-09-26.
  4. ↑ 4.0 4.1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1〉.
  5.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색(李穡), 《목은시고(牧隱詩藁)》 권16 〈유감(有感)〉,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20A_0230_010_1380, 확인날짜=2026-09-26.
  6.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김종직(金宗直), 《점필재문집(佔畢齋文集)》 권2 〈관해루기(觀海樓記)〉,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66A_0250_000_0110, 확인날짜=2026-09-26.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31권, 명종 20년 8월 14일 무인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ma_12008014_001, 확인날짜=2026-09-26.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중초본] 56권, 광해 13년 6월 23일 계사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oa_11306023_002,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