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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행합일(知行合一)은 지식과 행동이 서로 맞음, 곧 앎과 행함이 하나라는 뜻의 한자성어이다. ‘지행일치(知行一致)’라고도 한다.[1] 명나라의 왕수인(王守仁, 호 양명陽明)이 내세운 양명학의 핵심 명제에서 나온 말이다.

일상에서는 “아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배운 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뜻으로 넓게 쓴다. 그러나 왕수인이 말한 지행합일은 이보다 강한 주장이다. 앎과 행함은 처음부터 한 가지 일의 두 면이어서 떼어 놓을 수 없고, 알면서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참으로 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 참고어 목록은 “명나라 왕수인이 주창한 학설로, 앎과 행함은 한 가지 일이지 두 토막이 아니다. 아버지를 보면 저절로 효도할 줄 알고 형을 보면 저절로 공경할 줄 아니, 알면서 행하지 않으면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2] 일본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쓰며 ‘ちこうごういつ’라고 읽는다.[3]

주자학의 ‘선지후행’과 양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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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주희(朱熹)의 주자학은 앎과 행함의 관계를 두고, 순서로 보면 앎이 먼저이고 무게로 보면 행함이 무겁다는 이른바 ‘선지후행(先知後行)’의 입장을 취했다. 사물의 이치를 먼저 궁구해 안 뒤에 실천에 나아간다는 것이다. 왕수인은 이것이 앎과 행함을 두 가지 일로 갈라 놓아, 사람들이 평생 앎만 쌓다가 끝내 실천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비판하며 지행합일을 내세웠다.[3]

귀양서원에서 처음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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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수인은 환관 유근(劉瑾)의 미움을 사 귀주(貴州) 용장역(龍場驛)의 역승으로 좌천되어 있었다. 그의 연보는 정덕(正德) 4년(1509), 그가 서른여덟 살 때 귀주 제학부사 석서(席書)의 초빙으로 귀양서원(貴陽書院)을 맡았고 “이 해에 선생이 비로소 지행합일을 논했다(是年先生始論知行合一)”고 적는다. 석서가 주자와 육구연(陸九淵)의 같고 다름을 묻자 왕수인은 그에 답하지 않고 자기가 깨달은 바를 말했으며, 석서는 의심을 품고 돌아갔다가 이튿날 다시 와서 앎과 행함의 본체를 오경과 제자서로 증명해 보이는 말을 듣고 여러 차례 오간 끝에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4]

《전습록》의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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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수인의 어록 《전습록(傳習錄)》 권상에는 제자 서애(徐愛)가 지행합일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해 묻는 대목이 있다.[5] 서애가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효도하고 형에게 공경해야 함을 알면서도 효도하지도 공경하지도 못하니, 앎과 행함은 분명 두 가지가 아닙니까”라고 묻자 왕수인은 그것은 사사로운 뜻에 가로막힌 것이지 앎과 행함의 본래 모습이 아니라며 이렇게 답했다.

未有知而不行者;知而不行,只是未知。

“알면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모르는 것일 뿐이다.” 왕수인은 《대학》의 “아름다운 빛깔을 좋아하듯,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如好好色,如惡惡臭)”을 예로 들었다. 아름다운 빛깔을 보는 것은 앎에 속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것은 행함에 속하지만, 보는 순간 이미 좋아하는 것이지 보고 난 뒤에 따로 좋아하기로 마음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했다.

知是行的主意,行是知的功夫;知是行之始,行是知之成。

“앎은 행함의 주된 뜻이고 행함은 앎의 공부이다. 앎은 행함의 시작이고 행함은 앎의 완성이다.”[5]

왕수인은 한 편지에서 “내가 지금 지행합일을 말하는 것은 지금 시대의 치우침을 바로잡으려는 말이기도 하지만, 앎과 행함의 본체가 본래 이러하다(某今說知行合一,雖亦是就今時補偏救弊說,然知行體段亦本來如是)”고 밝혔다.[6]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도 이 말의 전거로 《전습록》 중권의 〈답고동교서(答顧東橋書)〉를 든다.[3]

한국에서의 수용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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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주자학이 정통이었기 때문에 지행합일설은 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 이황(李滉)은 〈전습록논변(傳習錄論辯)〉에서 서애와의 문답을 직접 인용한 뒤, 왕수인이 배우는 사람들의 병폐를 바로잡으려 한 뜻은 알겠지만 “억지로 지행합일의 논을 뚫어 만들었다(强鑿爲知行合一之論)”며 말이 교묘할수록 뜻은 더 멀어진다고 비판했다.[7]
  • 유성룡(柳成龍)은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지어 왕수인이 주자의 설을 힘써 비방한 것을 반박했다.[8]
  • 한원진(韓元震)은 〈왕양명집변(王陽明集辨)〉에서 지행합일을 양명학의 종지로 보고, 궁리(窮理)의 공부를 버리고 지름길을 찾으려는 마음에서 나온 설이라고 공격했다.[9]
  • 반면 정제두(鄭齊斗)는 중년에 양명의 글을 읽고 치양지(致良知)와 지행합일의 설에 깊이 공감했다고 문인들이 기록했다. 그는 벗과의 문답에서도 왕수인의 비유가 지행합일의 본체를 밝히려는 것이지 앞뒤를 나누려는 것이 아니라고 변호했다.[10][11] 정제두의 학문은 뒤에 강화학파로 이어졌다.
  •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知行合一’이 나오지 않고, 국역본의 주석에만 보인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知 지 알다 앎, 지식
行 행 다니다, 행하다 행함, 실천
合 합 합하다 하나가 되다
一 일 하나 하나
  • 언행일치(言行一致)는 ‘말’과 행동이 같음을, 지행합일은 ‘앎’과 행동이 하나임을 말한다. 언행일치는 약속을 지키는 신의의 문제에, 지행합일은 참된 앎이란 무엇인가 하는 공부의 문제에 가깝다.
  • 오늘날 “지행합일을 실천하자”처럼 ‘알았으면 행하라’는 권유로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확장이지만, 왕수인의 본뜻은 ‘행하지 않는 앎은 앎이 아니다’라는 앎의 정의에 무게가 있다.
  • 보안 교육을 이수하고도 비밀번호를 모니터에 붙여 두는 직원이 있다면, 그 교육은 지행합일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 그는 환경 보호를 강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생활로 지행합일을 보여 주었다.
  • 일본에서 양명학을 처음 강설한 사람은 에도 초기의 나카에 도주(中江藤樹)이며, 그 문하에서 구마자와 반잔(熊沢蕃山) 등이 나왔다. 양명학이 크게 일어난 것은 막부 말 유신기로, 사토 잇사이(佐藤一斎)와 오시오 헤이하치로(大塩平八郎) 등이 활약했고 사토 잇사이의 문하에서 유신기에 활약한 양명학자가 많이 나왔다.[12]
  • 일본의 《오분샤 일본사사전》은 양명학이 실천을 중시하는 탓에 에도 막부 등으로부터 위험한 사상으로 여겨졌다고 적는다.[3]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이 근대 일본어의 첫 용례로 드는 것은 하세가와 뇨제칸(長谷川如是閑)의 글(1915)로, “지행합일의 철리, 프래그머티즘의 이치” 하고 서양의 실용주의와 나란히 든 대목이다.[3]
  • 중국에서도 지행합일은 당대부터 논쟁거리였다. 《사고전서》의 해제는 명나라 학자 황좌(黃佐)가 왕수인과 지행합일의 뜻을 두고 직접 논변하여 밝힌 바가 많았다고 적는다.[13]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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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행일치(知行一致): 지행합일과 같은 말.
  • 언행일치(言行一致): 말과 행동이 하나로 들어맞음.
  • 치양지(致良知): 사람이 본디 지닌 양지를 끝까지 발휘함. 지행합일과 함께 양명학의 핵심 명제.
  • 심즉리(心卽理): 마음이 곧 이치라는 양명학의 명제.
  • 선지후행(先知後行): 먼저 알고 뒤에 행함. 주자학의 입장.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지행합일”,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7%80%ED%96%89%ED%95%A9%EC%9D%BC, 확인날짜=2026-09-26.
  2.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知行合一”(참고어),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7874,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3.2 3.3 3.4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오분샤 일본사사전(旺文社日本史事典)》, “知行合一”,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9F%A5%E8%A1%8C%E5%90%88%E4%B8%80, 확인날짜=2026-09-26.
  4. ↑ 전덕홍(錢德洪) 등 편, 〈연보(年譜) 1〉, 《왕문성공전서(王文成公全書)》 권32.
  5. ↑ 5.0 5.1 왕수인, 《전습록(傳習錄)》 권상.
  6. ↑ 왕수인, 《왕문성공전서(王文成公全書)》 권6.
  7.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황, 《퇴계집》 권41 〈전습록논변(傳習錄論辯)〉,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44A_0410_010_0060, 확인날짜=2026-09-26.
  8.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유성룡, 《서애집》 권15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24A_0150_010_0050, 확인날짜=2026-09-26.
  9.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원진, 《남당집》 권27 〈왕양명집변(王陽明集辨)〉,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91A_0270_010_0050, 확인날짜=2026-09-26.
  10.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정제두, 《하곡집》 권2 〈중답박대숙문목(重答朴大叔問目)〉,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33A_0030_020_0040, 확인날짜=2026-09-26.
  11.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정제두, 《하곡집》 권11 〈문인어록(門人語錄)〉,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33A_0120_040_0010, 확인날짜=2026-09-26.
  12.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일본대백과전서(日本大百科全書, 닛포니카)》·《개정신판 세계대백과사전(改訂新版 世界大百科事典)》, “陽明学”,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99%BD%E6%98%8E%E5%AD%A6, 확인날짜=2026-09-27.
  13. ↑ 《태천집(泰泉集)》 사고전서본 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