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지행일치(知行一致)는 지식과 행동이 서로 맞음, 곧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어긋나지 않음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말을 지행합일(知行合一)과 같은 말로 올린다.

“아는 만큼 행하라”, “배운 대로 실천하라”는 뜻으로 교육·수양·직업윤리를 말할 때 두루 쓴다.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한다는 언행일치(言行一致)와 짝을 이루는 말이며,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과는 반대쪽에 선다.

사전에서는 지행합일과 같은 말로 처리하지만, 두 말이 걸어온 길은 조금 다르다. 지행합일은 명나라 왕수인(王守仁, 호 양명陽明)이 내세운 양명학의 명제를 그대로 가리키는 말이다. 이에 견주어 지행일치라는 네 글자는 조선의 주자학자들이 ‘앎과 실천이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즐겨 쓴 표현이었고, 근대에 들어서는 양명학의 지행합일을 소개하는 말로도 쓰였다(아래 ‘유래’ 참고).

일본어에서도 ‘知行一致(ちこういっち)’라는 말을 쓰며, 메이지 시대 문헌에서는 주로 양명학의 가르침을 가리키는 말로 나온다.[2]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知 지 알다 앎, 지식
行 행 다니다, 행하다 행함, 실천
一 일 하나 하나로
致 치 이르다, 이루다 (일치: 서로 꼭 맞음)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성리학에서 오래 다뤄 온 ‘앎(知)과 행함(行)’의 관계를 네 글자로 줄인 말이다.

주희의 ‘지행상수’

편집 원본 편집

송나라 주희(朱熹)는 앎과 행함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9 〈학 3(學三)·논지행(論知行)〉의 첫 조목은 이렇다.

知行常相須,如目無足不行,足無目不見。論先後,知為先;論輕重,行為重。

[3]

“앎과 행함은 늘 서로를 필요로 한다. 눈이 있어도 발이 없으면 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눈이 없으면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앞뒤로 따지면 앎이 먼저이고, 무게로 따지면 행함이 무겁다.” 주희는 앎을 먼저 쌓는 공부(선지후행)를 강조하면서도 둘이 어느 한쪽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주희의 글에 ‘知行一致’라는 네 글자가 그대로 나오지는 않는다.

조선 주자학자들의 ‘지행일치’

편집 원본 편집

‘知行一致’라는 네 글자는 중국 고전에서는 찾기 어렵고, 조선 중기 이후 문집에 집중해서 나온다. 이른 예로 17세기 초의 문인 노경임(盧景任)은 〈잡설(雜說)〉에서 오늘 한 가지 이치를 따지고 내일 또 한 가지를 따지며, 오늘 어려운 일 하나를 행하고 내일 또 하나를 행하다 보면 “얼음 녹듯 풀리고 이치가 순하게 되어, 앎과 행함이 하나가 되고 겉과 속에 틈이 없게 된다(渙然氷釋。怡然理順。知行一致。表裏無間)”고 했다.[4] 이는 주희가 말한 ‘오늘 하나, 내일 하나’의 공부법을 따른 것이다.

이현일(李玄逸)은 1690년(경오년) 임금에게 올린 상소에서 《서경》의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렵다(非知之艱,惟行之艱)”를 끌어온 뒤 “전하께서는 지행일치의 도에 아직 다하지 못한 바가 있는 듯하다(殿下其於知行一致之道。恐有所未盡也)”고 아뢰었다.[5] 《승정원일기》에도 1852년(철종 3년) 상소에 “마음으로 체득하고 일에서 증험하여 지행일치한 뒤에야 학문이라 할 수 있다(體心驗事,知行一致,然後方可謂學矣)”는 구절이 있다.[6]

이들 조선 학자의 글에서 지행일치는 왕수인의 지행합일설을 받아들인 말이 아니라, 주자학의 테두리 안에서 ‘앎을 쌓는 공부와 실천하는 공부가 결국 하나로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정재규(鄭載圭)처럼 “공부로 말하면 먼저 알고 뒤에 행하지만, 이루어진 덕으로 말하면 지행일치여서 앞뒤를 말할 수 없다”며 둘을 나누어 설명한 학자도 있다.[7]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이 네 글자가 없다. 실록 국역문에 보이는 ‘지행일치’는 번역자가 쓴 말이다.[8]

근대: 양명학 소개어로

편집 원본 편집

근대에는 이 말이 양명학의 지행합일을 설명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1893년 책에 양명학을 논하면서 “‘지행일치’ 네 글자(「知行一致」の四字)”를 내세운 대목이 보인다.[2] 한국에서는 1910년 《서북학회월보》에 김원극(金源極)이 옮겨 쓴 〈왕양명학론(王陽明學論)〉이 양명학의 요지를 “곧 지행일치가 이것이다(卽 知行一致가 是耳라)”라고 정리했다.[9] 이렇게 근대 이후 두 말이 같은 뜻으로 섞여 쓰이면서 오늘날 사전에서도 같은 말로 묶이게 되었다.

잘못 알려진 내용

편집 원본 편집

사자성어 목록 가운데에는 지행일치의 출전을 ‘주자서(朱子書)’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나무위키 등). 주희가 앎과 행함이 서로 필요하다고 한 말(知行常相須)은 이 말의 사상적 바탕이지만, ‘知行一致’라는 네 글자 자체는 《주자어류》 등 주희의 글에서 확인되지 않으며 조선 문인들의 글에서 굳어진 표현이다.

  • 보안 교육을 이수한 직원이 여전히 모니터에 비밀번호를 붙여 두는 것을 보면, 교육의 목표는 지식 전달이 아니라 지행일치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 코드 리뷰 원칙을 세운 팀장이 자기 코드부터 리뷰를 받는 모습은 지행일치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 선생님은 늘 지행일치를 강조하며, 아는 것을 몸으로 옮기지 않으면 모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지행합일(知行合一): 지행일치와 같은 말. 왕수인 양명학의 명제를 가리킬 때 주로 쓴다.[1]
  • 언행일치(言行一致): 말과 행동이 같음.
  • 선지후행(先知後行): 먼저 알고 뒤에 행함. 주자학에서 앎과 행함의 순서를 말한 것.
  • 표리부동(表裏不同):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속으로 가지는 생각이 다름. 반대쪽 뜻.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지행일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7%80%ED%96%89%EC%9D%BC%EC%B9%98, 확인날짜=2026-10-12.
  2. ↑ 2.0 2.1 岡崎遠光(卜里老猿), 《耶蘇教の危機》, 1893,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s://dl.ndl.go.jp/pid/825233, 확인날짜=2026-10-12.
  3. ↑ 여정덕(黎靖德) 편, 《주자어류(朱子語類)》 권9 〈학 3(學三)〉.
  4.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노경임, 《경암집(敬菴集)》 〈잡설 상(雜說上)〉,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91A_0040_010_0170, 확인날짜=2026-10-12.
  5.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현일, 《갈암집(葛庵集)》 권3 〈사직겸진소회소(辭職兼陳所懷疏) 경오〉,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391A_0030_010_0160, 확인날짜=2026-10-12.
  6.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철종 3년 2월 21일 임인 17번째 기사, https://sjw.history.go.kr/id/SJW-J03020210-01700, 확인날짜=2026-10-12.
  7.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정재규, 《노백헌집(老柏軒集)》 〈답정경회대학발문대목(答鄭景晦大學發問對目)〉,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1253A_0210_010_0110, 확인날짜=2026-10-12.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知行一致”(0건)·국역 검색 “지행일치”,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2.
  9.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김원극(金源極) 술, “王陽明學論”, 《서북학회월보》 제19호, 1910년 1월 1일, https://db.history.go.kr/id/ma_004_0190_0050, 확인날짜=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