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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발검(見蚊拔劍)은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으로, 사소한 일에 크게 성내어 덤비는 것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하찮은 일에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작은 문제에 걸맞지 않은 큰 대응을 하는 것을 꼬집을 때 쓴다. 같은 계열의 우도할계(牛刀割鷄)가 ‘작은 일에 큰 재주나 도구를 쓴다’는 낭비와 어울리지 않음에 무게가 있다면, 견문발검은 ‘작은 일에 성을 내며 과하게 반응한다’는 감정과 태도에 무게가 있다.

중국과 일본의 사전에는 이 네 글자가 올라 있지 않고, 중국 고전과 조선 문헌의 원문에서도 찾아지지 않는다(아래 ‘유래’). 조선 시대 문헌에서는 같은 뜻으로 ‘파리에 성나 칼을 뺀다’는 뜻의 노승발검(怒蠅拔劍)을 썼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見 견 보다 보다
蚊 문 모기 모기(하찮은 것)
拔 발 뽑다, 빼다 (칼을) 빼다
劍 검 칼 칼(큰 대응)

고전 원문에 없는 네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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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발검은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중국 고전 원문, 《조선왕조실록》 원문,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 어디에서도 ‘見蚊拔劍’은 확인되지 않는다.[2] 대만 교육부 《성어전》에도 없다.[3]

확인되는 이른 기록은 조선총독부가 1920년에 펴낸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이다. 이 사전은 ‘見蚊拔劒(견문발검)’을 표제어로 올리고 “작은 일에 허둥댐을 비유한다(칼을 빼어 모기를 쫓는다는 뜻)”라고 일본어로 풀었다.[4] 문헌 용례 없이 사전에 먼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입말이나 한자 숙어 학습에서 쓰이던 말이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시 풀이는 ‘허둥댐(狼狽)’이었고, 오늘날 표준국어대사전은 ‘크게 성내어 덤빔’으로 풀어 무게가 조금 다르다.[1]

조선 문헌의 ‘怒蠅拔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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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같은 뜻으로 실제로 쓰인 말은 ‘怒蠅拔劍’이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영조·정조 대의 6건이 있다.[5] 영조 5년(1729) 7월, 영조는 역모 혐의자를 직접 국문하려다가 “한번 친국하고 싶으나 파리에 성나 칼을 빼는 일에 가깝다(欲一親鞫,而近於怒蠅拔劍)”고 말했다.[6] 이 밖에 이항복(李恒福)의 《백사집(白沙集)》, 최현(崔晛)의 《인재집(訒齋集)》, 채제공(蔡濟恭)의 《번암집(樊巖集)》 등 문집에도 보인다.[7] 《승정원일기》 영조 45년(1769) 8월에는 영조가 “어찌 파리를 보고 칼을 뺄 수 있겠는가(豈可見蠅拔劍耶)”라고 한 말이 있어, ‘見○拔劍’ 꼴도 이미 쓰였음을 알 수 있다.[8]

이항복은 정경세의 상소를 문제 삼아 잡아들이자는 논의에 반대하며 “파리에 성나 칼을 빼는 것은 헛되이 신위(神威)만 허비하는 것(怒蠅拔劍。徒費神威)”이라고 썼다.[7] 이 여덟 글자는 명대 소설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가정본에서 관평(關平)이 아버지 관우에게 방덕과 직접 싸우지 말라고 말리는 대목의 “怒蠅拔劍,徒費神威”와 같다.[9] 오늘날 널리 읽히는 모종강본 《삼국연의》 제74회에는 이 구절이 없다.[10]

파리를 쫓던 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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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칼을 잇는 이야기로는 삼국 위나라 왕사(王思)의 일화가 흔히 함께 소개된다. 《삼국지》 〈양습전(梁習傳)〉에 배송지가 주로 인용한 《위략(魏略)》 〈가리전(苛吏傳)〉에 따르면, 성미가 급한 왕사는 글을 쓰다가 파리가 붓끝에 앉자 몇 번이고 쫓았고, 그래도 다시 날아오자 화가 나서 일어나 파리를 쫓다가 잡지 못하자 붓을 땅에 던져 밟아 부숴 버렸다.[11]

思又性急,嘗執筆作書,蠅集筆端,驅去復來,如是再三。思恚怒,自起逐蠅不能得,還取筆擲地,蹋壞之。

원문에는 칼이 나오지 않는다. 송나라 손적(孫覿)의 글에 ‘拔劍逐蠅(칼을 빼어 파리를 쫓다)’이라는 말이 보이고, 명나라 풍몽룡(馮夢龍)의 《고금담개(古今譚槪)》는 왕사 이야기를 옮기면서 “스스로 일어나 칼을 빼어 파리를 쫓았다(自起拔劍逐蠅)”로 고쳐 적었다.[12] 칼을 빼어 파리를 쫓는다는 이미지는 이렇게 후대에 굳어졌다.

  • 테스트 서버의 경고 로그 한 줄에 전사 장애 대응 회의를 소집하는 것은 견문발검이다.
  • 댓글 하나에 고소부터 하겠다니, 견문발검도 이런 견문발검이 없다.
  • 견문발검하지 말고, 먼저 문제의 크기부터 가늠해 보자.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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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승발검(怒蠅拔劍): 성가시게 구는 파리를 보고 화가 나서 칼을 뺀다는 뜻. 표준국어대사전은 “사소한 일에 화를 내거나 작은 일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대책을 세움”으로 푼다.[13]
  • 우도할계(牛刀割鷄):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음. 작은 일에 어울리지 않게 큰 도구를 씀. 《논어》 〈양화〉의 “割雞焉用牛刀”에서 나왔다.
  • 교각살우(矯角殺牛): 소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임. 작은 흠을 고치려다 큰일을 그르침.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견문발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2%AC%EB%AC%B8%EB%B0%9C%EA%B2%80, 확인날짜=2026-10-10.
  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見蚊拔劍”,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0;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 검색, “見蚊拔劍”,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10.
  3.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검색 “見蚊”, https://dict.idioms.moe.edu.tw/idiomList.jsp?idiom=%E8%A6%8B%E8%9A%8A, 확인날짜=2026-10-10.
  4. ↑ 조선총독부 편,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 조선총독부, 1920,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컬렉션, https://dl.ndl.go.jp/info:ndljp/pid/1761833, 확인날짜=2026-10-10.
  5.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怒蠅拔劍”,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0.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23권, 영조 5년 7월 25일 무진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0507025_003, 확인날짜=2026-10-10.
  7. ↑ 7.0 7.1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 검색, “怒蠅拔劍”,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10.
  8.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영조 45년 8월.
  9. ↑ 나관중(羅貫中),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가정본) 권15.
  10. ↑ 나관중 원작, 모종강(毛宗崗) 평, 《삼국연의(三國演義)》 제74회.
  11. ↑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15 〈위서(魏書) 양습전(梁習傳)〉 배송지 주 인용 《위략(魏略)》 〈가리전(苛吏傳)〉.
  12. ↑ 손적(孫覿), 《홍경거사집(鴻慶居士集)》 권22; 풍몽룡(馮夢龍), 《고금담개(古今譚槪)》 권16.
  13.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노승발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5%B8%EC%8A%B9%EB%B0%9C%EA%B2%80, 확인날짜=202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