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은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성장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예기(禮記)》 〈학기(學記)〉에서 나온 말이다.

‘가르침(敎)과 배움(學)은 서로(相) 자라게 한다(長)’는 뜻이다. 배우는 사람만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도 가르치면서 자기가 모르는 것을 깨닫고 더 공부하게 된다는 말이다. 학교뿐 아니라 선후배가 기술을 전수하는 현장, 스터디 모임처럼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자리에 쓴다. ‘長’은 ‘길다(장)’가 아니라 ‘자라다, 늘다’의 뜻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실려 있지 않고 우리말샘에 올라 있다.[1] 중국어에서도 ‘教學相長’을 그대로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통해 학생이 나아질 뿐 아니라 교사의 수준도 높아진다”로 풀이한다.[2] 일본어에서는 ‘教学相長ず(きょうがくあいちょうず)’라고 한다.[3]

《예기》 〈학기〉

편집 원본 편집

《예기》 〈학기〉는 배움과 가르침의 도리를 논한 편이다. 교학상장은 그 앞부분에 나온다.[4]

雖有嘉肴,弗食,不知其旨也;雖有至道,弗學,不知其善也。是故學,然後知不足,教,然後知困。知不足,然後能自反也;知困,然後能自強也,故曰:「教學相長」也。《兌命》曰:「學學半。」其此之謂乎!

“좋은 안주가 있어도 먹어 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지 못하고, 지극한 도가 있어도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배운 뒤에야 모자람을 알고, 가르쳐 본 뒤에야 막히는 데를 안다. 모자람을 안 뒤에야 스스로 돌이켜 볼 수 있고, 막히는 데를 안 뒤에야 스스로 힘쓸 수 있다. 그래서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를 자라게 한다’고 하는 것이다. 〈열명(兌命)〉에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절반이다’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知困’의 ‘困’은 남을 가르치다가 자기 지식이 막히는 것을 말한다. 배우는 쪽은 모자람을 알아 돌이켜 보고, 가르치는 쪽은 막힘을 알아 더 힘쓰니, 두 일이 서로를 밀어 올린다는 것이다. 〈학기〉 첫머리에도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玉不琢,不成器;人不學,不知道)”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4]

〈학기〉가 인용한 〈열명(兌命)〉은 《서경(書經)》의 〈열명(說命)〉을 가리킨다. ‘兌’와 ‘說’은 여기서 모두 ‘열’로 읽는다. 《서경》 〈열명 하〉에는 “惟斅學半”으로 되어 있어, 앞의 글자가 ‘가르치다’라는 뜻의 ‘斅(효)’이다.[5] 곧 “가르치는 것이 배움의 절반”이라는 뜻이며, 〈학기〉의 ‘學學半’은 이것을 옮긴 것이다. 일본어의 속담 ‘教うるは学ぶの半ば(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절반)’도 이 구절에서 나왔다.[6]

《성어전》은 한나라 《한시외전(韓詩外傳)》 권3에서 비슷한 논리를 편 뒤 “이로써 보면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 자라게 한다(由此觀之,則教學相長也)”고 한 대목, 명나라 왕수인(王守仁)이 귀양지 용장(龍場)의 제자들에게 준 〈교조시용장제생(教條示龍場諸生)〉의 “내가 옳으면 그로 인해 옳음을 밝힐 수 있고, 내가 그르면 그로 인해 그름을 버릴 수 있으니, 대개 교학상장이다”를 용례로 든다.[2] 왕수인은 제자가 스승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것도 교학상장이라고 보았다.

한국 문헌의 용례

편집 원본 편집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문집에서는 자주 쓰였다. 16세기 성혼(成渾)은 송익필(宋翼弼)에게 보낸 편지에서, 송익필이 도굴(道窟)에 집을 짓고 후학들과 어울리면 “교학상장의 유익함”이 있을 것이라고 권했다.[7] 김창협(金昌協)은 성균관 유생들에게 내린 글에서 스승과 학생이 자주 만나 묻고 따져 “정과 뜻이 두루 통하고 교학상장하기를(庶使情志孚洽,敎學相長)” 바랐지만, 유생들이 강의를 들으러 오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8]

《승정원일기》 1734년(영조 10년) 3월 15일 기사에는 경연에서 〈학기〉를 강독하면서 김재로(金在魯)가 “교학상장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서로 유익하게 된다는 말입니다(敎學相長,言敎人與受學,交相爲益矣)”라고 풀이한 대목이 있다.[9]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敎 교 가르치다 가르침
學 학 배우다 배움
相 상 서로 서로
長 장 길다, 자라다 자라게 하다, 나아지게 하다

‘敎’는 ‘教’의 이체자로, 한국에서는 흔히 ‘敎’로 쓰고 중국·대만에서는 ‘教’로 쓴다.

  • 신입 개발자에게 코드 리뷰를 해 주다 보니 나도 미처 몰랐던 설계의 허점을 발견했다. 교학상장이란 이런 것이다.
  • 보안 교육 강사를 맡으면서 최신 공격 기법을 다시 공부하게 되니 교학상장의 효과가 컸다.
  • 선생님은 학생들의 엉뚱한 질문 덕분에 더 많이 배운다며 교학상장을 강조했다.
  •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도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제7서한에서 “사람은 가르치면서 배운다(homines dum docent discunt)”고 했다.[10]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효학반(斅學半):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절반이라는 뜻. 《서경》 〈열명〉에서 나온 말.
  • 청출어람(靑出於藍):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
  •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앎. 그래야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한 《논어》의 말.
  • 절차탁마(切磋琢磨): 학문과 덕행을 갈고닦음.
  1. ↑ 1.0 1.1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교학상장”,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A%B5%90%ED%95%99%EC%83%81%EC%9E%A5,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教學相長”,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537, 확인날짜=2026-09-27.
  3.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教学相長ず”,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5%99%E5%AD%A6%E7%9B%B8%E9%95%B7%E3%81%9A, 확인날짜=2026-09-27.
  4. ↑ 4.0 4.1 《예기(禮記)》 〈학기(學記)〉.
  5. ↑ 《서경(書經)》 〈열명 하(說命下)〉.
  6.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속담을 아는 사전(ことわざを知る辞典)》, “教うるは学ぶの半ば”,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5%99%E3%81%86%E3%82%8B%E3%81%AF%E5%AD%A6%E3%81%B6%E3%81%AE%E5%8D%8A%E3%81%B0, 확인날짜=2026-09-27.
  7. ↑ 성혼(成渾), 〈여송운장(與宋雲長) 익필(翼弼)〉, 《우계집(牛溪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8. ↑ 김창협(金昌協), 〈유태학제생문(諭太學諸生文)〉, 《농암집(農巖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9.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영조 10년 3월 15일 신묘, https://sjw.history.go.kr/id/SJW-F10030150-03100, 확인날짜=2026-09-27.
  10. ↑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도덕 서한(Epistulae Morales ad Lucilium)》 7.8, The Latin Library, https://www.thelatinlibrary.com/sen/seneca.ep1.shtml,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