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모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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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모술수(權謀術數)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온갖 모략과 술책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 비슷한 말로 ‘권모술책(權謀術策)’, ‘권수(權數)’, ‘권술(權術)’이 있다.[1]
권모술수는 대개 남을 속이고 조종하는 음험한 책략을 비판할 때 쓰인다. “권모술수에 능하다”, “권모술수가 판치다”처럼 쓰며, 정치판의 암투나 조직 내 권력 다툼을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한다. 서양의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 곧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태도를 옮겨 말할 때도 이 말을 쓴다.[2]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쓰며, 일본어로는 ‘権謀術数(けんぼうじゅっすう)’라고 한다.
네 글자는 모두 ‘꾀’와 관련된 글자이다. ‘권(權)’은 본래 저울추를 뜻하여 형편을 헤아린다는 데서 ‘임기응변의 꾀’라는 뜻이 나왔고, ‘수(數)’도 셈한다는 뜻에서 일을 헤아리는 꾀를 뜻하게 되었다. 비슷한 뜻의 글자를 넷 겹쳐 만든 말이다.[3] 표준국어대사전도 ‘권모(權謀)’를 “때와 형편에 따라 꾀하는 계략”으로 풀이한다.[4] 나무위키 등에는 ‘권모’를 ‘권세(權勢)와 모략’으로 풀이한 설명이 보이지만, 여기서 ‘권’은 권세가 아니라 형편에 따라 바꾸어 쓰는 꾀, 곧 권도(權道)의 ‘권’이다.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에도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 이 네 글자가 널리 알려진 것은 남송의 주희(朱熹)가 쓴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를 통해서이다.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도 이 글을 이 말의 이른 출전으로 든다.[3]
自是以來,俗儒記誦詞章之習,其功倍於小學而無用;異端虛無寂滅之敎,其高過於大學而無實。其它權謀術數,一切以就功名之說,與夫百家衆技之流,所以惑世誣民、充塞仁義者,又紛然雜出乎其閒。
“이로부터 속된 선비들의 암송과 문장 짓기는 그 공이 소학보다 곱절이나 들지만 쓸모가 없고, 이단의 허무적멸의 가르침은 그 높기가 대학보다 더하지만 실속이 없었다. 그 밖에 권모술수로 오로지 공명을 이루려는 주장과 온갖 잡다한 기예의 무리들이 세상을 미혹하고 백성을 속여 인의(仁義)를 가로막으며 또 어지럽게 그 사이에 섞여 나왔다.”
공자와 맹자 이후 참된 학문이 끊기자 권모술수를 앞세운 공리(功利)의 학설이 판쳤다는 탄식이다. 이후 원·명과 조선의 성리학자들 글에서 권모술수는 도덕·인의와 대비되는 공리의 술책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였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도 “삼대 이전에는 다스림이 마음에 근본을 두었고, 삼대 이후에는 다스림이 법에 말미암았다. 마음에 근본을 둔 것은 도덕과 인의로서 그 쓰임이 끝이 없고, 법에 말미암은 것은 권모술수로서 그 쓰임이 때로 다한다”고 말한 것으로 《명태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6]
명나라 때 간행된 《삼국지통속연의》(가정본) 제2회는 조조(曹操)를 소개하며 “권수(權數)가 있었다”고 쓰고, 그 협주에서 “권수는 권모술수를 이른다(權數,謂權謀術數)”고 풀이했다.[7]
- 퇴계 이황(李滉)은 제자 조기백(趙起伯)의 《대학》 질문에 답하면서, 〈대학장구서〉의 ‘일체(一切)’를 “권모술수를 쓰는 자들은 대개 옳고 그름을 돌아보지 않고 의리와 이익을 가리지 않은 채 반드시 공명을 이루고야 만다는 뜻”이라고 풀었다.[8]
- 《조선왕조실록》에서 원문 기준으로 가장 이른 예는 성종 19년(1488) 윤1월 15일, 사간 김심 등이 형벌의 공정성을 논한 상소이다. 이들은 사정을 따지지 않고 먼저 법률로 굴복시킨 뒤 참작한다는 대신의 의논을 두고 “그 정상을 캐지 않고 참작한다면 권모술수로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데 가깝지 않겠습니까(不核其情而酌之,則不幾於以權謀術數御下者乎)”라고 반박했다.[9]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權 | 권 | 저울추, 권세 | 형편에 따라 바꾸는 꾀 |
| 謀 | 모 | 꾀하다 | 꾀, 계략 |
| 術 | 술 | 재주, 방법 | 술책 |
| 數 | 수 | 셈, 헤아리다 | 헤아려 꾸미는 꾀 |
- 사내 정치와 권모술수가 판치는 조직에서는 좋은 엔지니어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
- 사회공학 공격은 기술보다 사람의 심리를 노리는 일종의 권모술수이다.
- 그는 권모술수에 능했지만 끝내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권모술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6%8C%EB%AA%A8%EC%88%A0%EC%88%98, 확인날짜=2026-09-27.
- ↑ 《브리태니커 국제대백과사전 소항목사전(ブリタニカ国際大百科事典 小項目事典)》, “権謀術数”,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A8%A9%E8%AC%80%E8%A1%93%E6%95%B0,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3.2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権謀術数” 해설,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A8%A9%E8%AC%80%E8%A1%93%E6%95%B0, 확인날짜=2026-09-27.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권모”,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6%8C%EB%AA%A8, 확인날짜=2026-09-27.
- ↑ 주희, 《대학장구(大學章句)》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
- ↑ 《대명태조고황제실록(大明太祖高皇帝實錄)》 권66.
- ↑ 나관중,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가정본) 제2회.
- ↑ 이황, 〈답조기백대학문목(答趙起伯大學問目)〉, 《퇴계집(退溪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원문 검색,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212권, 성종 19년 윤1월 15일 경진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901115_004, 확인날짜=2026-09-27.
-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権謀術数”,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A8%A9%E8%AC%80%E8%A1%93%E6%95%B0,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