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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口蜜腹劍)은 입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는 뜻으로, 말로는 친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해칠 마음을 품고 있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앞에서는 달콤한 말로 추켜세우면서 뒤에서는 모함하거나 해를 끼치는 사람, 또는 그런 처신을 비판할 때 쓴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점에서 표리부동(表裏不同)과 통하지만, 구밀복검은 특히 ‘달콤한 말’을 무기로 삼는다는 데 초점이 있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도 비슷한 말인 소리장도(笑裡藏刀)는 얼굴빛이 온화한 데에, 구밀복검은 말이 달콤한 데에 무게가 있다고 구분한다.[2]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쓴다. 일본어에서는 네 글자로 줄이지 않고 ‘口に蜜あり腹に剣あり(입에 꿀이 있고 배에 칼이 있다)’라고 풀어 쓴다.[3]

당나라 현종(玄宗) 때 19년 동안 재상 자리에 있었던 이임보(李林甫)를 두고 당시 사람들이 한 말에서 나왔다.

《자치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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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 권215는 천보(天寶) 원년(742)의 일로 이렇게 적었다.[4]

李林甫為相,凡才望功業出己右及為上所厚、勢位將逼己者,必百計去之;尤忌文學之士,或陽與之善,啖以甘言而陰陷之。世謂李林甫「口有蜜,腹有劍。」

“이임보는 재상이 되자, 재능과 명망과 공적이 자기보다 낫거나 임금의 총애를 받아 지위가 자기를 위협할 만한 사람이면 반드시 온갖 꾀를 써서 몰아냈다. 특히 글 잘하는 선비를 꺼려, 겉으로는 잘 지내는 척하며 달콤한 말로 꾀어 놓고 몰래 함정에 빠뜨렸다. 세상 사람들은 이임보를 두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고 했다.”

《자치통감》은 이임보가 죽은 천보 11재(752)의 기사에서도 그를 “좌우에 아첨하고 임금의 뜻에 영합하여 총애를 굳히고, 언로를 막고 임금의 총명을 가려 간사함을 이루었으며, 어진 이를 시기하고 능한 이를 질투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배척하고 억눌러 지위를 지켰다(妬賢嫉能,排抑勝己,以保其位)”고 총평하고, 19년 동안 재상으로 있으면서 천하의 난리를 길러 냈다고 적었다.[5] 뒤의 안사의 난(755)으로 이어지는 당나라 쇠퇴의 한 원인으로 이임보의 전횡이 거론되는 까닭이다.

그 수법을 보여 주는 일화도 《자치통감》에 실려 있다. 천보 5재(746) 이임보는 경쟁자인 재상 이적지(李適之)에게 “화산(華山)에 금광이 있어 캐면 나라를 부유하게 할 수 있는데 주상께서는 아직 모르신다”고 귀띔했다. 이적지가 이를 아뢰자 현종이 이임보에게 물었고, 이임보는 “신은 오래전부터 알았으나 화산은 폐하의 본명(本命)이자 왕기(王氣)가 서린 곳이라 파서는 안 되기에 감히 아뢰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했다. 현종은 이임보가 자신을 아낀다고 여기고 이적지를 멀리했다.[6]

《개원천보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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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이보다 앞선 오대(五代) 왕인유(王仁裕)의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 〈육요도(肉腰刀)〉 조를 말의 근원(語本)으로 든다.[2][7]

李林甫妬賢嫉能,不協羣議,毎奏御之際,多所陷人。衆謂林甫爲「肉腰刀」。又云林甫嘗以甘言誘人之過,譖於上前。時人皆言:「林甫甘言如蜜。」朝中相謂曰:「李公雖面有笑容,而肚中鑄劍也。」人日憎怨,異口同音。

“이임보는 어진 이를 시기하고 유능한 이를 질투하며 여러 사람의 의논과 어울리지 않았고, 임금께 아뢸 때마다 사람을 많이 모함했다. 사람들은 그를 ‘살로 된 허리칼(肉腰刀)’이라 불렀다. 또 이임보는 달콤한 말로 남의 허물을 끌어낸 뒤 임금 앞에서 헐뜯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모두 ‘이임보의 달콤한 말은 꿀 같다’고 했고, 조정에서는 서로 ‘이공(李公)은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지만 배 속에서는 칼을 벼리고 있다’고 수군거렸다. 사람들의 미움이 날로 깊어져 한목소리로 그를 원망했다.”

네 글자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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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蜜腹劍’이라는 네 글자 형태는 송나라 이후의 글에 보인다. 《성어전》은 남송 모자재(牟子才)의 상소에 “이임보는 입에 꿀, 배에 칼을 품고서 임금의 총명을 가리고 속였다(李林甫口蜜腹劍,蔽欺聰明)”는 구절이 있다고 소개하며(《역대명신주의(歷代名臣奏議)》 권310 인용), 명나라 팽대익(彭大翼)의 《산당사고(山堂肆考)》 권118은 앞의 두 이야기를 묶어 “그래서 口蜜腹劍이라 한다”고 풀었다.[2][8] 명말 청초의 아동용 교재 《유학경림(幼學瓊林)》에는 “이의부는 음험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남을 해쳐 사람들이 ‘웃음 속에 칼을 숨겼다(笑裡藏刀)’고 했고, 이임보는 간사하게 남에게 아첨하여 세상이 ‘口蜜腹劍’이라 했다”는 대구가 실려 널리 읽혔다.[9]

《성어전》은 같은 뜻의 다른 형태로 복검구밀(腹劍口蜜), 밀구검복(蜜口劍腹), 복검설당(腹劍舌糖)을 함께 든다.[2]

이임보와 이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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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과 짝을 이루는 말이 ‘웃음 속의 칼’이다. 당나라 고종 때의 재상 이의부(李義府)는 겉모습이 온화하고 공손하여 남과 이야기할 때 늘 웃음을 띠었지만 속은 음험하여, 사람들이 그를 ‘웃음 속에 칼이 있다(笑中有刀)’고 하고 부드러우면서 남을 해친다고 ‘이묘(李貓, 이씨 고양이)’라 불렀다.[10] 백거이(白居易)도 신악부(新樂府) 〈천가도(天可度)〉에서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이의부 같은 무리가 싱글벙글 웃지만 웃음 속의 칼로 몰래 사람을 죽이는 것을(君不見李義府之輩笑欣欣,笑中有刀潛殺人)”이라고 읊었다.[11] 표준국어대사전은 ‘소중도(笑中刀)’를 구밀복검의 참고 어휘로 든다.[12]

두 사람의 별명은 후대에 자주 함께 쓰여서 서로 섞이기도 했다. 조선의 이이(李珥)는 윤원형(尹元衡)을 탄핵한 상소에서 “어진 이를 시기하고 능한 이를 질투함은 이임보와 같고(妬賢嫉能似李林甫) …… 입에 꿀, 배에 칼을 품음은 이의부와 같다(口蜜腹劍似李義府)”라고 썼다.[13] 역사서가 구밀복검을 붙인 사람은 이임보이고, 이의부의 별명은 ‘웃음 속의 칼’이다.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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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蜜腹劍’은 《조선왕조실록》 원문 기준으로 8건이 있으며, 단종 즉위년(1452)의 기사가 가장 이르다. 안평대군 이용(李瑢)에게 붙은 이현로(李賢老)를 처벌하라는 대간의 청이 있자 관원들이 서로 축하할 만큼 그가 미움을 받았는데, “그러나 이현로가 입에 꿀, 배에 칼을 품고 남을 시기해 해치기를 잘하므로, 중상을 당할까 두려워 감히 말하지 못했다(然口蜜腹劍,多忮害,畏中傷,不敢言)”고 사관은 적었다.[14]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口 구 입 입, 말
蜜 밀 꿀 달콤한 말
腹 복 배 속마음
劍 검 칼 해치려는 뜻
  • ‘蜜(꿀 밀)’을 ‘密(빽빽할 밀)’로 잘못 쓰기 쉽다. 《성어전》도 이 점을 따로 짚는다.[2]
  • 협력사라며 접근해 내부 정보를 캐 간 뒤 경쟁사에 넘긴 그는 구밀복검의 전형이었다.
  • 친절한 말투로 계정 확인을 요구하는 피싱 메일은 구밀복검의 수법과 다르지 않다. 말이 달콤할수록 발신 주소부터 확인해야 한다.
  • 앞에서는 칭찬만 늘어놓고 뒤에서 험담하는 구밀복검형 인간은 결국 신뢰를 잃는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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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장도(笑裏藏刀), 소중도(笑中刀): 웃음 속에 칼을 감춤. 이의부의 고사.
  • 표리부동(表裏不同): 겉과 속이 다름.
  • 면종복배(面從腹背): 겉으로는 따르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배반함.
  • 양두구육(羊頭狗肉): 양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팖. 겉만 그럴듯함.
  • 불구사심(佛口蛇心): 부처의 입에 뱀의 마음. 《성어전》이 가까운 말로 든다.[2]
  • 반대 의미: 표리여일(表裏如一). 겉과 속이 같음.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구밀복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5%AC%EB%B0%80%EB%B3%B5%EA%B2%80, 확인날짜=2026-09-26.
  2. ↑ 2.0 2.1 2.2 2.3 2.4 2.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口蜜腹劍”,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68, 확인날짜=2026-09-26.
  3.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口に蜜あり腹に剣あり”,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F%A3%E3%81%AB%E8%9C%9C%E3%81%82%E3%82%8A%E8%85%B9%E3%81%AB%E5%89%A3%E3%81%82%E3%82%8A, 확인날짜=2026-09-26.
  4. ↑ 사마광, 《자치통감(資治通鑑)》 권215 〈당기(唐紀) 31〉, 천보 원년.
  5. ↑ 사마광, 《자치통감》, 천보 11재. 남송 진덕수(眞德秀)는 《대학연의(大學衍義)》 권19에서 이 대목을 인용하며 옛 당나라 역사서의 평이라고 밝혔다.
  6. ↑ 사마광, 《자치통감》 권215, 천보 5재.
  7. ↑ 왕인유(王仁裕),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 권4 〈육요도(肉腰刀)〉.
  8. ↑ 팽대익(彭大翼), 《산당사고(山堂肆考)》 권118.
  9. ↑ 《유학경림(幼學瓊林)》 권3.
  10. ↑ 팽대익, 《산당사고》 권118. 이의부 이야기는 《구당서(舊唐書)》 〈이의부전〉에도 실려 있다.
  11. ↑ 백거이(白居易), 〈천가도(天可度)〉, 《전당시(全唐詩)》 권427.
  1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구밀복검”(참고 어휘 ‘소중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5%AC%EB%B0%80%EB%B3%B5%EA%B2%80, 확인날짜=2026-09-26.
  13.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이, 《율곡전서(栗谷全書)》 권3 〈논윤원형소(論尹元衡疏)〉,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01A_0040_010_0020, 확인날짜=2026-09-26.
  14.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단종실록》 3권, 단종 즉위년 윤9월 27일 병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fa_10009127_001,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