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정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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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정하석(落穽下石)은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도리어 괴롭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하정투석(下穽投石)’이라고도 한다.[1][2]
곤경에 빠진 사람을 외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틈을 타 더 짓밟는 행동을 비판할 때 쓴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이가 작은 이해관계 앞에서 등을 돌리는 세태를 꼬집는 말로 많이 쓰인다.
한국에서는 ‘함정 정(穽)’ 자를 쓴 ‘落穽下石’이 표준 형태이고, 중국어에서는 ‘우물 정(井)’ 자를 쓴 ‘낙정하석(落井下石)’이 일반적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落井下石’을 표제어로 삼는다.[3] 원문에 ‘함정(陷阱·陷穽)’이 나오므로 한국식 표기가 출전의 뜻에 더 가깝다.
당나라 한유(韓愈)가 벗 유종원(柳宗元)의 죽음(819)을 애도하며 지은 〈유자후 묘지명(柳子厚墓誌銘)〉에서 나왔다.[3][4]
유종원과 유우석(劉禹錫)은 왕숙문(王叔文)의 개혁에 가담했다가 좌천되었고, 원화(元和) 연간에 다시 먼 고을의 자사로 내려가게 되었다. 유종원은 유주(柳州), 유우석은 파주(播州)였다. 유종원은 “파주는 사람이 살 곳이 못 되는데, 몽득(유우석)에게는 늙은 어머니가 계시다. 차마 몽득의 곤궁함을 두고 볼 수 없다”며, 다시 죄를 얻더라도 자신의 유주와 유우석의 파주를 바꾸어 달라는 상소를 올리려 했다. 마침 유우석의 사정을 임금에게 아뢴 사람이 있어 유우석은 연주(連州)로 옮겨졌다. 한유는 이 일을 적은 뒤 이렇게 이어 썼다.
嗚呼!士窮乃見節義。今夫平居里巷相慕悅,酒食游戲相徵逐,詡詡強笑語以相取下,握手出肺肝相示,指天日涕泣,誓生死不相背負,真若可信;一旦臨小利害,僅如毛髮比,反眼若不相識,落陷阱,不一引手救,反擠之又下石焉者,皆是也。此宜禽獸夷狄所不忍為,而其人自視以為得計,聞子厚之風,亦可以少愧矣!
“아, 선비는 곤궁해져야 절의가 드러난다. 지금 사람들은 평소 동네에서 서로 그리워하고 좋아하며, 술자리와 놀이로 어울려 다니고, 억지로 웃고 떠들며 서로 몸을 낮추고, 손을 잡고 간과 폐를 꺼내 보이듯 속을 털어놓고, 해와 하늘을 가리키며 눈물로 죽어도 저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니 참으로 믿을 만해 보인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머리카락만 한 작은 이해관계에 부딪히면 눈을 부라리며 모르는 사람처럼 굴고, 상대가 함정에 빠지면 손 한 번 내밀어 구해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밀어 넣고 돌까지 떨어뜨리는 자가 모두 이렇다. 이는 짐승이나 오랑캐도 차마 하지 않을 일인데, 그들은 스스로 잘한 계책이라 여긴다. 자후(유종원)의 풍모를 듣는다면 조금은 부끄러워할 것이다.”
‘落陷阱’의 ‘阱’은 판본에 따라 ‘穽’으로도 적힌다(명나라 장지교(蔣之翹) 집주본 《유하동전집(柳河東全集)》 부록 등). 두 글자는 모두 ‘함정’을 뜻하는 같은 글자이다.[4] 《성어전》은 이 “落陷阱,不一引手救,反擠之又下石焉者”에서 ‘落井下石’이라는 성어가 나왔다고 설명한다.[3]
조선 문헌에서는 ‘落穽下石’으로 적은 예가 많다.
-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은 〈육선상인에게 주는 서(贈六禪上人序)〉에서, 도를 지키는 데 굽힘이 없던 한유조차 승려와 사귄 까닭을 두고 “어찌 함정에 빠진 이에게 돌을 떨어뜨리는(落穽下石) 세상의 사귐이 뒤집히기 쉬워 믿을 것이 못 됨을 싫어하여 도리어 저쪽에서 얻는 바가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5]
- 신흠(申欽)은 《상촌고(象村稿)》에서 “벗을 저잣거리 사람과 같이 여기면 그 흐름이 낙정하석에 이르러 서로 해치고 죽인다(以朋友爲同於市井。則其流至於落穽下石。相戕相賊焉)”고 썼다.[6]
-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정조 16년(1792) 채제공(蔡濟恭)의 상소에 “그동안 뜻밖의 헤아릴 수 없는 말들이 낙정하석으로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向來情外罔測之說,落穽下石,雖無所不至)”는 구절이 있다.[7]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落 | 락(낙) | 떨어지다 | (함정에) 빠지다 |
| 穽 | 정 | 함정 | 함정 |
| 下 | 하 | 아래, 내리다 | 아래로 떨어뜨리다 |
| 石 | 석 | 돌 | 돌 |
- 해킹 피해를 입은 경쟁사의 고객 명단을 사들여 영업에 쓰는 것은 낙정하석과 다름없다.
- 사업이 기울자 가장 가깝던 동업자가 앞장서 채권을 회수해 갔으니 낙정하석이 따로 없었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낙정하석”,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2%99%EC%A0%95%ED%95%98%EC%84%9D, 확인날짜=2026-09-26.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하정투석”,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5%98%EC%A0%95%ED%88%AC%EC%84%9D, 확인날짜=2026-09-26.
- ↑ 3.0 3.1 3.2 3.3 3.4 3.5 3.6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落井下石”,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35, 확인날짜=2026-09-26.
- ↑ 4.0 4.1 한유(韓愈), 〈유자후 묘지명(柳子厚墓誌銘)〉, 《창려선생문집(昌黎先生文集)》.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김안국, 《모재집(慕齋集)》 권11 〈증육선상인서(贈六禪上人序)〉,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08A_0130_020_0080, 확인날짜=2026-09-26.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신흠, 《상촌고(象村稿)》 권57 〈구정록(求正錄)〉,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86A_0620_010_0010, 확인날짜=2026-09-2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36권, 정조 16년 12월 4일 무진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1612004_002,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