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락장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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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락장송(落落長松)은 가지가 길게 축축 늘어진 키가 큰 소나무를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낙락장송은 크고 오래된 소나무를 가리키는 말로, 한국에서는 흔히 변치 않는 절개와 꿋꿋한 기상을 상징한다. 사육신 성삼문(成三問)의 시조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가 널리 알려지면서 지조를 지키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소나무의 모습을 그린 한시 표현이 굳은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가지가 길게 축축 늘어진’ 소나무로 풀이하지만, 한문에서 ‘落落’은 본래 ‘높이 우뚝하게 빼어나다’, ‘드문드문 성기다’는 뜻으로 쓰였다. 《일본국어대사전》은 ‘落落’의 ‘높이 빼어나 솟은 모양’이라는 뜻에 동진(東晉)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를 전거로 들고, 일본의 첫 용례로 구카이(空海)의 《삼교지귀(三教指帰)》(797년경) “우뚝한 소나무 그늘에 홀로 엎드려(孤伏落落之松蔭)”를 든다.[2] 손작의 부에는 “우거진 가는 풀을 깔고 앉고, 우뚝한 큰 소나무 그늘에 쉰다(藉萋萋之纖草,蔭落落之長松)”는 구절이 있다.[3] 곧 ‘落落長松’은 원래 ‘우뚝 솟은 큰 소나무’에 가까운 말이었다.
네 글자 ‘落落長松’은 당나라 시문에 보인다. 왕유(王維)의 연작시 〈전원락(田園樂)〉 가운데 한 수에 “우거진 봄풀은 가을에도 푸르고, 우뚝한 큰 소나무 아래는 여름에도 서늘하다(萋萋春草秋綠,落落長松夏寒)”는 구절이 있다.[4] 왕발(王勃)의 글에도 절 주변 풍경을 “빽빽한 큰 잣나무, 우뚝한 큰 소나무(森森巨柏,落落長松)”라고 그린 대목이 있다.[5] 당나라의 한 제서(制書)에서는 신하의 절개를 두고 “우뚝한 큰 소나무처럼 절개가 서리와 싸락눈에도 바뀌지 않는다(落落長松,節概不移於霜霰)”고 하여, 이미 지조의 비유로도 쓰였다.[6]
고려 말·조선 초의 박흥생(朴興生, 1374~1446)은 〈절간송풍헌가(絶磵松風軒歌)〉에서 “차디찬 끊긴 시냇물, 우뚝한 큰 소나무에 이는 바람(冷冷絶磵水。落落長松風)”이라고 읊었다.[7] 이후 조선 문인들의 시에 자주 쓰여,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 기준으로 30건 남짓 검색된다.
가장 유명한 것은 성삼문의 시조 〈봉래산가(蓬萊山歌)〉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성삼문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되기에 앞서 지은 것으로, 《청구영언》을 비롯한 여러 가집에 전한다.[8]
이 몸이 죽어가셔 무어시 될고 ᄒᆞ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야이셔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ᄒᆞᆯ 졔 독야청청(獨也靑靑)ᄒᆞ리라
흰 눈이 천지에 가득할 때, 곧 온 세상이 한쪽으로 기울 때에도 홀로 푸르겠다는 뜻으로, 죽어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겠다는 다짐을 낙락장송에 빗댔다.[8]
-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落落長松’이 1건 있다. 정조 18년(1794) 채제공(蔡濟恭)은 관동 제일의 명승인 고성 삼일포(三日浦)를 메워 논을 만들려던 무리가 먼저 포구 가 명사(鳴沙)의 낙락장송을 하나도 남김없이 베어 버렸다며, 주모자와 이를 막지 못한 지방관을 엄히 처벌하자고 아뢰었다. 정조도 삼일포는 관동 명승지 가운데 으뜸이라며 이를 받아들였다.[9]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落 | 락(낙) | 떨어지다 | (겹쳐 써서) 우뚝하다, 성기다 |
| 落 | 락 | 떨어지다 | 위와 같음 |
| 長 | 장 | 길다, 자라다 | 크고 높은 |
| 松 | 송 | 소나무 | 소나무 |
- 마을 어귀의 낙락장송은 수백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 왔다.
- 온갖 회유에도 원칙을 굽히지 않은 그를 사람들은 낙락장송에 빗댔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낙락장송”,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2%99%EB%9D%BD%EC%9E%A5%EC%86%A1, 확인날짜=2026-09-27.
-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落落”,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90%BD%E8%90%BD, 확인날짜=2026-09-27.
- ↑ 손작(孫綽),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 《문선(文選)》 권11.
- ↑ 왕유(王維), 〈전원락(田園樂)〉, 《전당시(全唐詩)》 권128.
- ↑ 왕발(王勃), 《왕자안집(王子安集)》 권13.
- ↑ 〈수학사극문안장군금자광록대부제(授學士郤文晏將軍金紫光祿大夫制)〉, 《전당문(全唐文)》 권838.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박흥생, 《국당유고(菊堂遺稿)》 권1 〈절간송풍헌가 증익륜(絶磵松風軒歌 贈益倫)〉,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45A_0020_060_0130, 확인날짜=2026-09-27.
- ↑ 8.0 8.1 최진원, “봉래산가(蓬萊山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3832,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40권, 정조 18년 7월 17일 임인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1807017_003,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