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류장화
더 많은 작업
노류장화(路柳牆花)는 아무나 쉽게 꺾을 수 있는 길가의 버들과 담 밑의 꽃이라는 뜻으로, 옛날 기생이나 창녀를 비유적으로 이르던 한자성어이다. ‘路柳墻花’로도 적는다.[1]
길가에 늘어선 버들가지와 남의 집 담장 밖으로 핀 꽃은 지나가는 누구라도 꺾을 수 있다. 이 모습에 빗대어, 정해진 짝 없이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했던 기녀의 처지를 가리킨 말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기녀를 낮추어 보던 시각이 담긴 표현이므로 오늘날에는 문학 작품이나 역사 서술 속에서 주로 보이며, 사람을 직접 가리켜 쓰면 모욕이 된다.
‘牆’과 ‘墻’은 같은 글자의 다른 꼴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路柳牆花’를 표제 한자로 삼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원문에는 ‘路柳墻花’로 적혀 있다. 중국 원나라 잡극에서는 순서를 바꾼 ‘장화노류(牆花路柳)’가 먼저 보인다.
지금 한국에서 쓰는 순서는 명나라 초 구우(瞿佑)의 소설집 《전등신화(剪燈新話)》 권3 〈애경전(愛卿傳)〉에 나온다. 가흥(嘉興)의 이름난 기생 나애애(羅愛愛, 애경)는 조씨 집안에 시집가 시어머니를 지성으로 모시다가 난리 통에 정절을 지키려 목숨을 끊는다. 혼령이 되어 남편 앞에 나타난 그녀는 자신의 지난날을 이렇게 말한다.[4]
妾本倡流,素非良族。山雞野騖,家莫能馴;路柳牆花,人皆可折。惟知倚門而獻笑,豈解舉案以齊眉。
“저는 본래 기생의 무리로 양갓집 출신이 아닙니다. 산꿩과 들오리는 집에서 길들일 수 없고, 길가의 버들과 담장의 꽃은 누구나 꺾을 수 있습니다. 문에 기대어 웃음을 팔 줄만 알았지, 밥상을 눈썹까지 받들어 올리는 아내의 도리를 어찌 알았겠습니까.” 같은 대목에는 “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집에서 잔다”는 말도 이어진다.[4] 《전등신화》는 조선에 전해져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와 자주 비교되는 책이다.[5]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路柳墻花’가 4건 있다.[6] 가장 이른 것은 1478년(성종 9) 11월 22일, 종친이 기첩(妓妾)에게서 낳은 자식의 신분 문제를 두고 성종이 내린 어서(御書)이다. 성종은 “기생은 본래 아내 없는 군사에게 주려고 둔 것이니, 비유하자면 길가의 버들과 담장의 꽃 같아서 사람마다 꺾을 수 있다(比如路柳墻花,人得而折之). 그 자식이 누구의 소생인지 정하기 어렵다”고 했다.[7]
나머지 3건은 모두 연산군의 전교이다. 1504년(연산군 10) 5월 5일 연산군은 기생과 악공을 점검하게 하며 “관기는 길가의 버들과 담장의 꽃 같아서 사람마다 꺾을 수 있으니(人皆可折), 집에 두고 첩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8] 그해 8월 17일에는 “대저 창기를 혹은 노류장화라 하고, 혹은 동가식서가숙한다고 한다(夫娼妓或云路柳墻花,或云東家食而西家宿)”고 했고,[9] 1505년 12월 7일에는 흥청(興淸)에게 자주색 치마를 못 입게 하는 까닭을 따지며 “옛말에 노류장화라 하고 또 동가숙서가식이라 했다(古云:‘路柳墻花。’又云:‘東家宿而西家食。’)”고 했다.[10] ‘사람마다 꺾을 수 있다’는 말과 ‘동가식서가숙’을 함께 끌어온 점이 〈애경전〉의 구절과 그대로 겹친다.
《승정원일기》에는 1769년(영조 45) 4월 16일과 5월 14일 영조가 기생을 가리켜 ‘노류장화’라고 한 기록이 있다.[11] 김시습의 《매월당집》에도 순서를 바꾼 “장화노류와 역참의 매화(墻花路柳驛亭梅)”라는 시구가 있다.[12]
우리말샘에는 “노류장화는 사람마다 꺾으려니와 산닭 길들이기는 사람마다 어렵다”라는 속담이 실려 있다. 기생은 누구나 상대할 수 있지만 제멋대로 자란 사람을 길들이기는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13] ‘산닭’과 ‘노류장화’를 맞세운 짜임이 〈애경전〉의 “산꿩과 들오리는 집에서 길들일 수 없고, 길가의 버들과 담장의 꽃은 누구나 꺾을 수 있다”와 닮았다.
- 소설 속 기생 춘심은 자신을 노류장화로 여기는 양반들의 시선에 끝내 굴하지 않았다.
- 조선 시대 기녀를 노류장화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이 남긴 시조와 한시를 문학으로 다시 읽으려는 연구가 늘고 있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노류장화”,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5%B8%EB%A5%98%EC%9E%A5%ED%99%94, 확인날짜=2026-10-03.
- ↑ 마치원(馬致遠), 《여동빈삼취악양루(呂洞賓三醉岳陽樓)》.
- ↑ 교길(喬吉), 《두목지시주양주몽(杜牧之詩酒揚州夢)》 제1절.
- ↑ 4.0 4.1 구우(瞿佑), 《전등신화(剪燈新話)》 권3 〈애경전(愛卿傳)〉.
- ↑ 이정원, 〈전등신화와 금오신화의 여주인공 연구〉, 《우리어문연구》 71, 우리어문학회, 2021, 593~635쪽,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758422,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路柳墻花”,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98권, 성종 9년 11월 22일 기묘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0911022_005,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군 10년 5월 5일 갑오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1005005_003,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5권, 연산군 10년 8월 17일 갑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1008017_001,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60권, 연산군 11년 12월 7일 정사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1112007_001,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영조 45년 4월 16일 무진, https://sjw.history.go.kr/id/SJW-F45040160-03100, 확인날짜=2026-10-03.
- ↑ 김시습(金時習), 《매월당집(梅月堂集)》 권15.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노류장화는 사람마다 꺾으려니와 산닭 길들이기는 사람마다 어렵다”,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dicType=2&query=%EB%85%B8%EB%A5%98%EC%9E%A5%ED%99%94, 확인날짜=2026-10-03.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화류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9%94%EB%A5%98%EA%B3%84,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