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가식서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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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은 동쪽 집에서 밥 먹고 서쪽 집에서 잠잔다는 뜻으로,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며 지냄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나중에는 자기의 잇속을 차리기 위하여 지조 없이 여기저기 빌붙어 사는 행태를 이르게 되었다.[1]
한국어에서는 크게 세 가지 뜻으로 쓴다. 첫째는 글자 그대로 집 없이 이 집 저 집을 떠돌며 얻어먹고 얻어 자는 처지이고, 둘째는 이익을 좇아 이쪽저쪽에 빌붙는 지조 없는 태도이며, 셋째는 두 가지 이익을 한꺼번에 차지하려는 욕심이다. 셋째 뜻이 이 말이 처음 나온 중국 고사의 뜻에 가장 가깝다.
중국어에서는 네 글자로 줄인 ‘동식서숙(東食西宿)’을 성어로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이를 “동쪽 집에서 밥 먹고 서쪽 집에서 밤을 지낸다는 것으로, 두 가지 이익을 모두 가지려 하는 끝없는 탐욕을 비유한다”고 풀이하고, 순서를 바꾼 ‘서식동면(西食東眠)’도 같은 말로 올려 두었다.[2]
후한의 응소(應劭)가 지은 《풍속통(風俗通)》에 실려 있던 이야기로, 지금 전하는 《풍속통의》 본문에는 없고 당나라 때 엮은 유서 《예문유취(藝文類聚)》 권40에 인용되어 남아 있다. 《성어전》도 이 대목을 典源으로 든다.[2]
風俗通曰.兩袒.俗說齊人有女.二人求之.東家子醜而富.西家子好而貧.父母疑不能決.問其女定所欲適.難指斥言者.偏袒令我知之.女便兩袒.怪問其故.云欲東家食.西家宿.此為兩袒者也.
“《풍속통》에 이르기를, ‘양단(兩袒)’이라는 말은 세속에서 이렇게 전한다. 제나라 사람에게 딸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청혼했다. 동쪽 집 아들은 못생겼지만 부자였고, 서쪽 집 아들은 잘생겼지만 가난했다. 부모가 망설이며 정하지 못하다가 딸에게 어디로 시집가고 싶은지 물으며 ‘드러내 놓고 말하기 어려우면 한쪽 어깨를 드러내 우리에게 알려 다오’라고 했다. 딸이 두 어깨를 모두 드러내자 이상하게 여겨 까닭을 물으니 ‘밥은 동쪽 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자고 싶어요’라고 했다. 이것이 두 어깨를 드러낸다는 말의 유래이다.”
곧 부자인 집에서 먹고 잘생긴 사람과 함께 자겠다는 것으로, 두 가지 이익을 다 누리려는 욕심을 비웃는 이야기이다. 《태평어람(太平御覽)》 권382가 인용한 《풍속통》에는 부모가 “동쪽 집이 좋으면 왼쪽 어깨를, 서쪽 집이 좋으면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라”고 했다는 말이 더 구체적으로 적혀 있고, 딸의 대답은 “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집에서 쉬기를 바란다(願東家食而西家息)”로 되어 있다.[4] 송나라의 유서 《유설(類說)》 권36도 이 이야기를 ‘東家食西家宿’이라는 표제로 실었다.[5] 남송 축목(祝穆)의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는 ‘식동식서(食東息西)’라는 표제를 붙였다.[6]
청나라 조익(趙翼)의 《해여총고(陔餘叢考)》 권19와 《패문운부(佩文韻府)》 등은 이 이야기의 출전을 《전국책(戰國策)》으로 적었으나,[7] 지금 전하는 《전국책》에서는 이 이야기가 확인되지 않고 당송 유서들은 모두 《풍속통》을 출전으로 든다.
명나라 초 구우(瞿佑)의 소설집 《전등신화(剪燈新話)》 권3 〈애경전(愛卿傳)〉에서는 기생 출신 여주인공 애경이 혼령이 되어 남편에게 지난날을 털어놓으며 “길가의 버들과 담장의 꽃이라 누구나 꺾을 수 있었다(路柳牆花,人皆可折)”, “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집에서 잤다(東家食而西家宿)”고 말한다. 여기서는 몸 둘 곳이 정해지지 않은 기생의 처지를 가리킨다.[8] 아래 연산군의 전교가 노류장화와 이 말을 나란히 쓴 것도 이 대목과 짜임이 같다.
중국 문헌에서도 이 말은 차츰 ‘이쪽저쪽을 오가며 잇속을 차리는 태도’를 꼬집는 데 쓰였다. 명말청초의 전겸익(錢謙益)은 〈강문초 육십 서(康文初六十序)〉에서 권세가를 좇는 사람들을 두고 “아침에는 진나라, 저녁에는 초나라를 섬기고, 동쪽에서 먹고 서쪽에서 잔다(朝秦而暮楚,東食而西宿)”고 썼다.[2] 청나라 포송령(蒲松齡)의 《요재지이(聊齋志異)》 〈황영(黃英)〉에는 “동쪽에서 먹고 서쪽에서 자는 것은 청렴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東食西宿,廉者當不如是)”는 구절이 있다.[2]
한국에서는 여기에 ‘떠돌이’의 뜻이 더해졌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며 지냄”을 본뜻으로, “지조 없이 여기저기 빌붙어 사는 행태”를 나중의 뜻으로 싣고 있다.[1]
- 《연산군일기》 연산군 10년(1504) 8월 17일 기사에서 연산군은 궁중의 일을 누설했다는 의심을 받은 기생을 문초하라고 하면서 “대저 창기(娼妓)를 혹은 길가의 버들과 담장의 꽃(路柳墻花)이라 하고, 혹은 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집에서 잔다(東家食而西家宿)고 한다”고 했다.[9] 여기서는 정해진 사람 없이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기생의 처지를 가리킨다.
- 18세기의 역관 시인 이언진(李彦瑱, 1740~1766)은 한 시에서 “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집에서 자니, 내가 그를 사랑해 무엇 하리(東家食西家宿。我愛他做甚麽)”라고 백화투로 읊었다.[10]
이 말이 ‘지조 없음’을 꼬집는 뜻으로 쓰일 때 흔히 함께 소개되는 이야기가 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선 직후, 개국 공신들의 잔치에서 한 늙은 재상이 기생 설중매(雪中梅)에게 “너는 동가식서가숙하는 기생이니 오늘 밤은 나와 함께하자”고 희롱하자, 설중매가 “동가식서가숙하는 천한 몸이 어제는 왕씨를 섬기고 오늘은 이씨를 섬기는 대감을 모시게 되니 참으로 잘 어울립니다”라고 받아쳐 좌중의 얼굴을 붉게 했다는 이야기이다.[11]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조선 시대 문헌에서 원출처는 확인되지 않는다.
- 선거 때마다 당적을 바꾸는 정치인을 두고 사람들은 동가식서가숙이라며 혀를 찼다.
- 계약 조건만 좇아 몇 달마다 다른 회사의 보안 관제 업무로 옮겨 다니다 보니, 어느 조직의 사정도 깊이 알지 못하는 동가식서가숙 신세가 되었다.
- 사업에 실패한 뒤 그는 친구 집을 전전하며 동가식서가숙으로 한 해를 보냈다.
- 동식서숙(東食西宿): 동가식서가숙을 줄인 중국어 성어. 두 이익을 다 차지하려는 탐욕.[2]
- 서식동면(西食東眠): 동식서숙과 같은 말.[2]
- 조진모초(朝秦暮楚): 아침에는 진나라, 저녁에는 초나라를 섬긴다는 뜻으로, 지조 없이 이리저리 붙음.
-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으로, 제 비위에 맞으면 취하고 싫으면 버림.
- 표박(漂泊), 유리걸식(流離乞食): 정처 없이 떠돌며 얻어먹음. 떠돌이의 뜻과 통한다.
- 노류장화(路柳墻花): 길가의 버들과 담 밑의 꽃이라는 뜻으로, 누구나 꺾을 수 있는 기생을 이르는 말. 연산군의 전교에서 동가식서가숙과 함께 쓰였다.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동가식서가숙”,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F%99%EA%B0%80%EC%8B%9D%EC%84%9C%EA%B0%80%EC%88%99, 확인날짜=2026-09-30.
- ↑ 2.0 2.1 2.2 2.3 2.4 2.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東食西宿”,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16, 확인날짜=2026-09-30.
- ↑ 《예문유취(藝文類聚)》 권40 〈예부(禮部) 하·혼(婚)〉, 《풍속통(風俗通)》 인용.
- ↑ 《태평어람(太平御覽)》 권382 〈인사부(人事部)〉, 《풍속통》 인용.
- ↑ 증조(曾慥), 《유설(類說)》 권36.
- ↑ 축목(祝穆),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후집 권14.
- ↑ 조익(趙翼), 《해여총고(陔餘叢考)》 권19.
- ↑ 구우(瞿佑), 《전등신화(剪燈新話)》 권3 〈애경전(愛卿傳)〉.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5권, 연산군 10년 8월 17일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1008017_001, 확인날짜=2026-09-30.
- ↑ 이언진(李彦瑱), 〈동호거실(衕衚居室)〉, 《송목관신여고(松穆館燼餘稿)》,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570A_0030_070_001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
- ↑ 참고: 김영희, “기생 설중매(雪中梅)의 묘한 풍자”, 제주일보, https://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52979, 확인날짜=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