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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걸식(流離乞食)은 정해진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남에게 빌어먹는 것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표준국어대사전은 같은 뜻의 말로 ‘유리개걸(流離丐乞)’, ‘유리행걸’을 함께 올려 두었다.[1][2]

흉년·전쟁·재난으로 살던 곳을 잃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구걸하며 떠도는 처지를 가리킨다. 조선 시대 문헌에서는 주로 굶주린 백성의 참상을 아뢰는 상소와 구휼 논의에 나오며, 지금은 집과 생계를 잃고 떠도는 사람의 형편이나, 비유적으로 기댈 곳 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처지를 말할 때 쓴다.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유리(流離)’와 ‘걸식(乞食)’ 두 낱말을 이어 붙인 말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에는 표제어로 실려 있지 않고, 중국어에서는 비슷한 처지를 흔히 ‘流離失所(떠돌며 몸 둘 곳을 잃음)’라고 한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流 류(유) 흐르다 떠돌다
離 리(이) 떠나다, 헤어지다 흩어지다, 고향을 떠나다
乞 걸 빌다, 구걸하다 구걸하다
食 식 먹다, 밥 먹을 것

두 낱말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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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 떠도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일정한 집과 직업이 없이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님”으로 풀이한다.[4] 《성어전》은 ‘流離’가 떠돌며 흩어진다는 뜻으로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 나온다고 적는다.[3]

‘걸식’은 본래 불교에서 승려가 수행의 하나로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비는 탁발(托鉢)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은 ‘乞食(こつじき)’의 첫째 뜻을 이 불교 용어로 두고, 둘째 뜻으로 거지 노릇을 하는 것을 든다. 또 일본어에서는 중세 무렵부터 ‘물건을 빌어먹는 사람’이라는 뜻이 주가 되고, 근세에 들어서는 탁발의 뜻으로는 잘 쓰이지 않게 되었다고 설명한다.[5] 유리걸식의 ‘걸식’은 이 가운데 뒤의 뜻, 곧 먹을 것을 구걸한다는 뜻이다.

조선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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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자로 붙여 쓴 예는 조선 문헌에서 두드러진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2건이 있다.[6] 이른 것은 1482년 전 여주 판관 홍호(洪浩)의 상소로, 전해에 벼슬을 잃고 시골에 내려가 백성의 형편을 보았더니 “떠돌며 빌어먹다가 구렁에 굴러 죽는 자가 있다(有流離乞食,轉死溝壑者焉)”고 하면서, 봄부터 보리가 익을 때까지 백성이 흩어져 “열 집에 아홉 집이 빌 것”이라고 걱정했다.[7] 1667년에는 승지 민유중(閔維重)이 “영동의 굶주린 백성들이 떠돌며 빌어먹으면서 경기·호서·영남으로 흘러가고 있다(嶺東飢民,流離乞食,轉向京畿、湖西、嶺南等道)”며 머무는 곳에서 구휼하게 하자고 아뢰었다.[8]

문집에서는 허균(許筠)이 스승 이달(李達)의 전기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에서 이 말을 썼다. 이달은 생업을 돌보지 않아 “평생 몸 붙일 곳 없이 사방을 떠돌며 빌어먹으니 사람들이 많이 천하게 여겼다(平生無着身地,流離乞食於四方,人多賤之)”고 하고, 이어서 “곤궁하게 늙은 것은 참으로 시 때문이었다”고 적었다.[9]

중국 문헌에도 네 글자가 이어진 예가 드물게 있다. 청나라 탕빈(湯斌)은 큰물이 진 고을의 형편을 아뢰는 글에서 이재민들이 늙은이를 부축하고 아이를 이끈 채 길에서 “떠돌며 빌어먹으려 해도 문이 없고 몸 둘 땅이 없다(流離乞食無門,棲身無地)”고 했다.[10] 다만 중국어에서는 하나의 성어로 굳지 않았다.

  • 전쟁이 나자 피란민들은 유리걸식하며 남쪽으로 내려갔다.
  • 회사가 문을 닫은 뒤 그는 몇 해 동안 이 현장 저 현장을 떠도는 유리걸식의 신세가 되었다.
  • 랜섬웨어로 서버를 모두 잃은 팀은 한동안 다른 부서의 장비를 빌려 쓰며 유리걸식하듯 서비스를 이어 갔다.
  • 허균이 〈손곡산인전〉에서 유리걸식했다고 적은 이달은 최경창(崔慶昌)·백광훈(白光勳)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린 시인으로, 허균과 허난설헌에게 시를 가르쳤다.[11] 허균은 같은 글에서 이달이 지은 글이 거의 다 없어져 자신이 모아 네 권으로 엮었다고 밝혔다.[12]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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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리개걸(流離丐乞), 유리행걸(遊離行乞): 같은 뜻이다.[1]
  • 유리표박(流離漂泊): 일정한 집과 직업 없이 이곳저곳 떠돌아다님.[13]
  •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지냄.
  • 남부여대(男負女戴): 남자는 지고 여자는 이고 떠난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모습.
  • 중국어의 비슷한 성어: 유리실소(流離失所), 전패유리(顛沛流離).[3]
  • 반대 의미: 안거낙업(安居樂業), 안분지족(安分知足)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유리걸식”,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C%A0%EB%A6%AC%EA%B1%B8%EC%8B%9D, 확인날짜=2026-09-28.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유리개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C%A0%EB%A6%AC%EA%B0%9C%EA%B1%B8, 확인날짜=2026-09-28.
  3. ↑ 3.0 3.1 3.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流離失所”,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698, 확인날짜=2026-09-28.
  4.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유리”,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C%A0%EB%A6%AC, 확인날짜=2026-09-28.
  5.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乞食”,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9%9E%E9%A3%9F, 확인날짜=2026-09-28.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流離乞食”,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39권, 성종 13년 3월 23일 신묘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303023_003, 확인날짜=2026-09-28.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현종실록》 14권, 현종 8년 6월 14일 정해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ra_10806014_003, 확인날짜=2026-09-28.
  9. ↑ 허균(許筠),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자료ID ITKC_MO_0292A_0090_010_0020,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92A_0090_010_0020, 확인날짜=2026-09-28.
  10. ↑ 탕빈(湯斌), 《탕자유서(湯子遺書)》 권2.
  11.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3945, 확인날짜=2026-09-28.
  12. ↑ 허균(許筠),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자료ID ITKC_MO_0292A_0090_010_0020,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92A_0090_010_0020, 확인날짜=2026-09-28.
  13.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유리표박”,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C%A0%EB%A6%AC%ED%91%9C%EB%B0%95,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