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분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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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분지족(安分知足)은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안분(安分)’은 자기 분수에 편안히 머무는 것, ‘지족(知足)’은 넉넉함을 아는 것이다. 지위나 재물을 더 얻으려고 애태우지 않고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태도를 가리킨다. 옛 문헌에서는 벼슬에서 물러나 조용히 지내는 선비의 미덕을 기릴 때 자주 쓰였고, 지금도 가훈이나 좌우명으로 흔히 쓰인다. 한편으로는 “분수를 알라”는 뜻이 되어 남의 욕심이나 도전을 누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일본의 《디지털 대사천》은 순서를 바꾼 ‘知足安分(ちそくあんぶん)’을 표제어로 싣고 ‘安分知足’을 같은 말로 싣는다.[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에는 ‘安分知足’이 실려 있지 않고, 뜻이 가까운 ‘안분수기(安分守己)’와 ‘지족상락(知足常樂)’이 실려 있다.[3][4]
네 글자 ‘安分知足’은 송나라 때 문헌에 여러 번 보인다. 남송의 홍매(洪邁)는 《용재수필(容齋隨筆)》 《삼필(三筆)》 권12의 〈인당지족(人當知足, 사람은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에서, 일흔이 넘어 벼슬이 두 형만 못하다며 안타까워하는 친지들에게 백거이의 〈초수습유(初授拾遺)〉 시를 읊어 주었다고 적었다.[7]
予誦白樂天《初授拾遺詩》以語之曰:「奉詔登左掖,束帶參朝議。何言初命卑,且脫風塵吏。杜甫、陳子昂,才名括天地。當時非不遇,尚無過斯位。」其安分知足之意,終身不渝。
“나는 백낙천의 〈처음 습유를 제수받고〉 시를 읊어 말해 주었다. ‘조서를 받들어 좌액에 올라 띠를 매고 조정 논의에 참여하네. 첫 벼슬이 낮다고 어찌 말하랴, 이제 먼지 속 아전 노릇은 벗어났는데. 두보와 진자앙은 재주와 이름이 천지를 덮었으나, 당시 때를 못 만난 것도 아닌데 이 자리를 넘지 못했네.’ 그 안분지족의 뜻은 평생 바뀌지 않았다.” 홍매는 이어서 송나라의 이름난 인물 가운데 명망이 높았으나 큰 벼슬에 오르지 못한 이들을 죽 들어 보였다.
나무위키 등에는 이 구절을 “안분지족에 뜻을 두고 평생토록 변심하지 아니해야 한다”는 당부로 옮긴 경우가 있으나, 원문의 앞뒤를 보면 백거이의 시에 담긴 안분지족의 뜻이 평생 변하지 않았다는 서술이다. 같은 곳에서 일본 승려 구카이(空海)의 《삼교지귀(三教指帰)》를 출전으로 드는 것도, 인용된 구절(乗知足意)에 ‘知足’만 있을 뿐 ‘安分知足’은 없다.
이 밖에 북송 말·남송 초의 이강(李綱)은 한 인물의 비문에서 그가 “나라 일에 힘을 다하고, 분수에 편안하고 만족할 줄 알아 물러나 한가로이 지냈다(盡瘁事國,安分知足,退閒林坰)”고 기렸고,[8] 금나라 왕약허(王若虛)는 《호남시화(滹南詩話)》에서 소식(蘇軾)의 〈박박주(薄薄酒)〉 두 편을 “모두 안분지족의 말(皆安分知足之語)”이라고 평했다.[9] 명나라 여득승(呂得勝)의 《여소아어(女小兒語)》에는 “분수에 편안하고 만족할 줄 알아 원망을 품지 말라(安分知足,休生抱怨)”는 구절이 있다.[10]
한국에서 널리 읽힌 《명심보감(明心寶鑑)》에는 〈안분편(安分篇)〉이 있다. 《경행록》을 인용한 “만족할 줄 알면 즐겁고, 탐욕이 많으면 근심스럽다(知足可樂,多貪則憂)”,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하고 천해도 즐겁고,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하고 귀해도 근심한다”, “분수에 편안하면 몸에 욕됨이 없다(安分身無辱)” 같은 말을 모은 편으로, 안분지족의 생각을 잘 보여 준다.[11] 다만 이 편에 네 글자 ‘安分知足’이 그대로 나오지는 않는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安分知足’이 1건 나온다. 1483년(성종 14년) 1월, 공조 판서 손순효(孫舜孝)는 한 달 사이에 품계가 두 번이나 오르자 명을 거두어 달라는 글을 올리며 “소신이 분수를 지키고 만족할 줄 알아 남은 생을 온전히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俾小臣,安分知足,得全餘生)”라고 청했다. 성종은 “벼슬과 상은 임금이 하는 일이지 신하가 알 바가 아니다. 경은 말하지 말라”고 답했다.[12]
문집에서는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에 19건이 보이며, 대개 벼슬에 욕심이 없던 사람을 기리는 행장·묘지명에 쓰였다.[13] 박성(朴惺)은 외조부 김연(金緣)의 묘지명에서 그가 재상감의 그릇을 지녔으면서도 “안분지족하여 남에게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았다(安分知足,不求見知於人)”고 적었다.[14] 1784년(정조 8년)의 상소에는 “옛 어진 사대부는 공을 이루고 물러나기도 하고, 벼슬을 가볍게 여겨 물러나기도 하고, 안분지족하여 물러나기도 했다(或安分知足而退)”는 구절이 보인다.[15]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安 | 안 | 편안하다 | 편안히 여기다, 머무르다 |
| 分 | 분 | 나누다, 몫 | 분수, 자기 몫 |
| 知 | 지 | 알다 | 알다 |
| 足 | 족 | 발, 넉넉하다 | 넉넉함, 만족 |
- 연봉보다 일과 삶의 균형을 택한 그는 안분지족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 성장이 멈춘 서비스를 두고 안분지족만 외치다가는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
- 할아버지는 늘 안분지족을 가훈으로 삼으라고 하셨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안분지족”,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5%88%EB%B6%84%EC%A7%80%EC%A1%B1,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知足安分”·“安分知足”,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9F%A5%E8%B6%B3%E5%AE%89%E5%88%86,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安分守己”,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376, 확인날짜=2026-09-27.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知足常樂”,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7782, 확인날짜=2026-09-27.
- ↑ 《노자(老子)》 제44장.
- ↑ 《보급판 자통(普及版 字通)》, “安分”,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AE%89%E5%88%86, 확인날짜=2026-09-27.
- ↑ 홍매(洪邁), 《용재삼필(容齋三筆)》 권12 〈인당지족(人當知足)〉.
- ↑ 이강(李綱), 《양계집(梁谿集)》 권166.
- ↑ 왕약허(王若虛), 《호남시화(滹南詩話)》.
- ↑ 여득승(呂得勝), 《여소아어(女小兒語)》.
- ↑ 《명심보감(明心寶鑑)》 〈안분편(安分篇)〉.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50권, 성종 14년 1월 2일 을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401002_002, 확인날짜=2026-09-27.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고전원문 검색 “安分知足”(19건),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 ↑ 박성(朴惺), 〈외조고관찰사부군묘지명(外祖考觀察使府君墓誌銘)〉, 《대암집(大菴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정조 8년 1월 11일 정유, https://sjw.history.go.kr/id/SJW-G08010110-02000, 확인날짜=2026-09-27.
- ↑ 조운찬, “[여적]<기생충>과 빈부격차”, 경향신문, 2019-06-02, https://www.khan.co.kr/article/201906022049005, 확인날짜=2026-09-27.
- ↑ “‘이태원 클라쓰’ 권나라가 전 안분지족, 뜻은?”, 제민일보, 2020-03-08, https://www.je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46237,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