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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빈낙도(安貧樂道)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겨 지킨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1]

가난을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가난 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옳은 길을 지키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태도를 말한다. 벼슬이나 재물을 좇지 않고 학문과 수양에 힘쓴 선비의 삶을 기리는 말로 많이 쓰였고, 한국 고전 시가에서는 강호에 묻혀 사는 은사(隱士)의 삶을 노래하는 주제로 자주 거론된다.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가난한 처지를 편안히 여기면서 도의를 지키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음”이라고 풀이한다.[2]

안빈낙도의 정신은 흔히 《논어》의 안회(顔回)와 공자 이야기로 설명하지만, 네 글자 ‘安貧樂道’가 처음 나오는 곳은 《논어》가 아니다. 두 가지를 나누어 본다.

《논어》의 관련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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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는 ‘安貧樂道’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그 생각의 뿌리가 되는 대목이 여럿 있다.

〈옹야(雍也)〉에서 공자는 제자 안회를 이렇게 칭찬했다.

子曰:「賢哉回也!一簞食,一瓢飮,在陋巷,人不堪其憂,回也不改其樂。賢哉回也!」

[3] “어질구나,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골목에 살면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구나. 어질구나, 안회여!” 여기서 ‘단사표음(簞食瓢飮)’이라는 말이 나왔다.

〈술이(述而)〉에서 공자는 자신에 대해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 있다. 의롭지 않으면서 부유하고 귀한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飯疏食,飮水,曲肱而枕之,樂亦在其中矣。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라고 했다.[4]

〈학이(學而)〉에서 자공(子貢)이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답했다. 오늘날 널리 읽히는 판본에서 이 대답은 “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이다. 그런데 한나라 때부터 전하는 《논어》 판본 가운데 고론(古論)에는 ‘貧而樂道’로 ‘道’ 자가 더 있었다. 청나라 유보남(劉寶楠)의 《논어정의(論語正義)》는 황간(皇侃)의 판본과 고려본·아시카가(足利)본에 모두 ‘樂道’로 되어 있다고 적고, 하안(何晏)의 《논어집해》에 인용된 공안국(孔安國)의 주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길 수 있다(能貧而樂道)”와 《사기》의 인용문을 근거로 고론에는 본래 ‘道’가 있었고, 정현(鄭玄)이 따른 노론(魯論)에는 없었다고 보았다.[5] 실제로 《사기》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는 이 문답이 “不如貧而樂道,富而好禮”로 실려 있다.[6]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긴다(貧而樂道)’는 안빈낙도와 거의 같은 말이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도 “우(禹)와 직(稷)은 태평한 세상을 만나 세 번이나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공자가 어질다고 했고, 안자(顔子)는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누추한 골목에서 한 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로 살면서도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는데 공자가 어질다고 했다(顏子當亂世,居於陋巷,一簞食,一瓢飲,人不堪其憂,顏子不改其樂,孔子賢之)”는 대목이 있다.[7]

네 글자 ‘安貧樂道’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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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전》은 이 말의 출전을 도가 경전 《문자(文子)》 〈상인(上仁)〉 편으로 본다.[2] 문자가 인의(仁義)와 예(禮)가 어찌하여 도덕보다 못하냐고 묻자 노자가 답하는 대목에 이런 구절이 있다.

德過其位者尊,祿過其德者凶。……聖人安貧樂道,不以欲傷生,不以利累己。

[8] “덕이 지위보다 넘치는 사람은 존귀하고, 녹봉이 덕보다 넘치는 사람은 흉하다. …… 성인은 가난을 편안히 여기고 도를 즐기며, 욕심 때문에 생명을 해치지 않고 이익 때문에 자신을 얽매지 않는다.” 뒤이은 구절은 판본에 따라 글자가 달라, 사고전서본은 “그러므로 의를 어기며 함부로 취하지 않는다(故不違義而妄取)”, 사부총간본(《통현진경(通玄真經)》)은 “故不違義而取安”으로 되어 있다.[8] 《문자》는 《통현진경》이라고도 부른다.[2]

역사서에서는 후한의 학자 위표(韋彪)에 대해 “효렴으로 천거되어 낭중이 되었으나 병으로 그만두고 돌아가 제자를 가르쳤다. 가난을 편안히 여기고 도를 즐기며 벼슬에 나아가는 데 담담하니, 삼보(三輔)의 선비들이 모두 우러러 사모했다(安貧樂道,恬於進趣,三輔諸儒莫不慕仰之)”라고 적은 《후한서》의 대목이 이른 예이다.[9] 후한 때 세운 〈위위형방비(衛尉衡方碑)〉에도 형방의 선조가 “젊어서 유학을 익혀 가난을 편안히 여기고 도를 즐겼다(少以儒術,安貧樂道)”는 구절이 있어, 이 말이 한나라 때 이미 인물을 기리는 상투어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10] 이후 《진서(晉書)》 〈유림전〉의 유조(劉兆), 《위서(魏書)》 〈효감전〉 등 역대 정사에 은거한 학자나 효자를 기리는 말로 이어졌다.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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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의 민사평(閔思平)은 시 〈정수옹(呈壽翁)〉에서 “춥고 굶주림과 살지고 가벼운 옷은 저절로 길이 다르니, 가난을 편안히 여기고 도를 즐기는 것이 어떠한가(寒餓肥輕自異途。安貧樂道顧何如)”라고 읊었다.[11]
  • 《조선왕조실록》 원문에 한 번 나온다. 《선조수정실록》의 조헌(趙憲) 졸기에 따르면, 토정 이지함(李之菡)은 늘 “지금 초야에서 인재를 조금 보았는데, 오직 조여식(조헌)만이 가난을 편안히 여기고 도를 즐기며 명리를 벗어던졌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지성에서 나오니 옛사람 가운데서도 짝을 찾기 드물다(惟趙汝式安貧樂道,擺脫名利,愛君憂國,出於至誠,求之古人,實罕其儔)”라고 칭찬했다.[12]
  •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는 ‘安貧樂道’가 130건 넘게 검색된다. 김종직(金宗直)의 제자 양준(楊浚)을 두고 “깊고 침착하며 큰 도량이 있었고, 가난을 편안히 여기고 도를 즐기며 담담했다(深沉有大度。安貧樂道。淡如也)”라고 한 문인록의 기록처럼, 학자의 인품을 기리는 말로 많이 쓰였다.[1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安 안 편안하다 편안히 여기다
貧 빈 가난하다 가난한 처지
樂 낙(락) 즐기다, 즐겁다 즐거워하다
道 도 길, 도리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른 도리

‘樂’은 ‘즐기다’의 뜻일 때 ‘락’으로 읽는다. 이 말은 ‘안빈(安貧)’과 ‘낙도(樂道)’가 합쳐진 말이어서, 뒷말의 첫소리에 두음 법칙을 적용해 ‘안빈낙도’로 적는다.

  • 그는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마다하고 작은 연구실에서 안빈낙도하며 오픈 소스 암호 라이브러리를 다듬었다.
  • 옛 선비들은 안빈낙도를 이상으로 삼았지만, 실제 삶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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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분지족(安分知足):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14]
  • 단사표음(簞食瓢飮): 대나무 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 청빈하고 소박한 생활을 이르는 말로, 《논어》 〈옹야〉의 안회 이야기에서 나왔다.[15]
  • 감빈낙도(甘貧樂道), 안빈낙천(安貧樂賤): 《성어전》이 가까운 말로 든다.[2]
  • 안빈수도(安貧守道), 낙도안빈(樂道安貧), 호도안빈(好道安貧): 같은 뜻의 변이형.[2]
  • 반대 의미: 반룡부봉(攀龍附鳳): 용을 끌어잡고 봉황에 붙음. 권세 있는 사람에게 빌붙어 출세함을 이르며, 《성어전》이 반의어로 든다.[2]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안빈낙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5%88%EB%B9%88%EB%82%99%EB%8F%84,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2.2 2.3 2.4 2.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安貧樂道”,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126, 확인날짜=2026-09-27.
  3. ↑ 《논어(論語)》 〈옹야(雍也)〉.
  4. ↑ 《논어(論語)》 〈술이(述而)〉.
  5. ↑ 이예성·이강재, 「『논어정의』에 나타난 노론(魯論)」, 《인문논총》 제75권 제2호,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8, 43~80쪽, https://doi.org/10.17326/jhsnu.75.2.201805.43, 확인날짜=2026-09-27.
  6. ↑ 사마천, 《사기》 권67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7. ↑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
  8. ↑ 8.0 8.1 《문자(文子)》 〈상인(上仁)〉.
  9. ↑ 범엽, 《후한서(後漢書)》 권26 〈위표전(韋彪傳)〉.
  10. ↑ 홍괄(洪适), 《예석(隸釋)》 권8 〈위위형방비(衛尉衡方碑)〉.
  11. ↑ 민사평, 〈정수옹(呈壽翁)〉, 《급암시집(及菴詩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8월 1일 1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b_12508001_012, 확인날짜=2026-09-27.
  13. ↑ 〈부문인록(附門人錄)〉, 김종직, 《점필재집(佔畢齋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14.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안분지족”,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5%88%EB%B6%84%EC%A7%80%EC%A1%B1, 확인날짜=2026-09-27.
  15.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단사표음”,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B%A8%EC%82%AC%ED%91%9C%EC%9D%8C,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