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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불석권(手不釋卷)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아니하고 늘 글을 읽음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 조비(曹丕)가 아버지 조조(曹操)의 학구열을 적은 글과, 오(吳)나라 손권(孫權)이 장수 여몽(呂蒙)에게 공부를 권한 말에서 나왔다.

바쁜 가운데서도 책을 가까이하며 부지런히 공부하는 태도를 칭찬할 때 쓴다. 독서를 권장하는 표어나 도서관·학교의 구호로 자주 쓰이고,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을 소개할 때도 흔히 쓴다. ‘釋(석)’은 ‘풀다, 놓다’라는 뜻이다.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손에 늘 책을 들고 있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배우기를 좋아함을 형용한다”고 풀이하고, ‘권불철수(卷不輟手)’, ‘수불철권(手不輟卷)’ 등을 같은 말로 든다.[2]

조비의 《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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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전》은 위나라 문제(文帝) 조비의 《전론(典論)》 〈자서(自敘)〉를 출전으로 든다.[2] 이 글은 《삼국지》 권2 〈문제기(文帝紀)〉에 배송지(裴松之)가 붙인 주석에 인용되어 전한다.

上雅好詩書文籍,雖在軍旅,手不釋卷,每每定省從容,常言人少好學則思專,長則善忘,長大而能勤學者,唯吾與袁伯業耳。

[3]

“주상(조조)께서는 평소 시서와 문적을 좋아하시어 군중에 계실 때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다. 문안을 드리며 한가로이 모실 때마다 늘 ‘사람은 어려서 배우기를 좋아하면 생각이 한결같지만 나이 들면 잘 잊는다. 커서도 부지런히 배울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원백업(袁伯業, 원유)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조비는 이 말에 힘입어 자신도 어려서 《시경》과 《논어》를 외고, 자라서는 오경과 사부, 《사기》와 《한서》, 제자백가의 글을 두루 읽었다고 적었다.

같은 말이 오나라 쪽 이야기에도 나온다. 《삼국지》 권54 〈여몽전(呂蒙傳)〉의 배송지 주에 인용된 《강표전(江表傳)》에 따르면, 손권은 여몽과 장흠(蔣欽)에게 학문을 하라고 권했다. 여몽이 군중에 일이 많아 책을 읽을 틈이 없다고 하자 손권은 이렇게 말했다.

權曰:「孤豈欲卿治經為博士邪?但當令涉獵見往事耳。卿言多務孰若孤,孤少時歷《詩》《書》《禮記》《左傳》《國語》,惟不讀《易》。至統事以來,省三史、諸家兵書,自以為大有所益。……孔子言『終日不食,終夜不寢以思,無益,不如學也』。光武當兵馬之務,手不釋卷。孟德亦自謂老而好學。卿何獨不自勉勗邪?」

[4]

“내가 어찌 경들더러 경전을 파고들어 박사가 되라는 것이겠소? 지난 일을 두루 읽어 보라는 것일 뿐이오. 경은 일이 많다고 하지만 나만큼 많겠소? 나는 젊어서 《시경》, 《서경》, 《예기》, 《좌전》, 《국어》를 읽었고 《주역》만 읽지 못했소. 나라 일을 맡은 뒤로는 삼사(三史)와 여러 병법서를 살펴 크게 도움을 얻었소. …… 공자께서도 ‘종일 먹지 않고 밤새 자지 않고 생각해 보았으나 유익함이 없었으니 배우는 것만 못하다’고 하셨소. 광무제는 전쟁의 일을 맡고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조맹덕(조조)도 스스로 늙어서도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하오. 경만 어찌 스스로 힘쓰지 않는단 말이오?” 손권이 인용한 공자의 말은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나온다.

여몽은 이때부터 뜻을 세워 공부해 옛 선비들도 따르지 못할 만큼 학식이 늘었다. 뒤에 노숙(魯肅)이 여몽과 이야기를 나누고 놀라 “이제는 예전 오나라 땅의 아몽(吳下阿蒙)이 아니다”라고 하자, 여몽은 “선비는 사흘을 떨어져 있다 만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야 한다(士別三日,即更刮目相待)”고 답했다.[4] 괄목상대(刮目相對)와 오하아몽(吳下阿蒙)이 이 이야기에서 나왔다.

나무위키 등에는 광무제가 손권이 태어나기 160년 전에 죽은 인물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후한 광무제 유수(劉秀)는 57년에 죽었고 손권은 182년에 태어났으므로 그 차이는 125년 정도이다.

같은 《삼국지》 권54의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吳書)》에도 노숙이 “군진에 있을 때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雖在軍陳,手不釋卷)”는 기록이 있다.[5] 이 밖에 《진서》 〈손성전(孫盛傳)〉의 “어려서부터 늙도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自少至老,手不釋卷)”, 《남사》 〈심경지전(沈慶之傳)〉 등 역대 사서에서 학문을 좋아한 인물을 기릴 때 두루 쓰였다.[2]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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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39건이 있다. 가장 이른 것은 태조 2년(1393) 9월 17일 병조 전서 윤소종(尹紹宗)의 졸기로, 그가 “경사를 널리 읽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성리학에 특히 밝았다(博覽經史,手不釋卷,尤精於性理之學)”고 적었다.[6] 이후 실록의 졸기와 인물평에서 학문을 좋아한 사람을 기리는 말로 자주 쓰였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手 수 손 손
不 불 아니다 ~하지 않다
釋 석 풀다, 놓다 손에서 놓다
卷 권 책, 두루마리 책
  • 그는 출퇴근 지하철에서도 보안 관련 기술서를 수불석권하며 자격증 공부를 이어 갔다.
  • 할아버지는 여든이 넘어서도 수불석권하셨다.
  • 도서관 입구에는 ‘수불석권’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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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불철권(手不輟卷), 권불철수(卷不輟手): 같은 뜻. 《성어전》이 같은 말로 든다.
  • 위편삼절(韋編三絕): 공자가 《주역》을 즐겨 읽어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뜻으로, 책을 열심히 읽음.
  • 주경야독(晝耕夜讀):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글을 읽음.
  • 형설지공(螢雪之功):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 이룬 공.
  • 괄목상대(刮目相對): 학식이나 재주가 놀랄 만큼 부쩍 늚. 같은 여몽 이야기에서 나온 말.
  • 반대 의미: 일폭십한(一曝十寒): 하루 볕을 쬐고 열흘 식힌다는 뜻으로, 꾸준히 하지 못함. 《성어전》이 반의어로 든다.[2]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수불석권”,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8%98%EB%B6%88%EC%84%9D%EA%B6%8C,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2.2 2.3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手不釋卷”,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407, 확인날짜=2026-09-27.
  3. ↑ 진수, 《삼국지》 권2 〈위서·문제기(文帝紀)〉 배송지 주에 인용된 조비, 《전론》 〈자서(自敘)〉.
  4. ↑ 4.0 4.1 진수, 《삼국지》 권54 〈오서·여몽전(呂蒙傳)〉 배송지 주에 인용된 《강표전(江表傳)》.
  5. ↑ 진수, 《삼국지》 권54 〈오서·노숙전(魯肅傳)〉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吳書)》.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4권, 태조 2년 9월 17일 기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aa_10209017_002,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