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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晝耕夜讀)은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글을 읽는다는 뜻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이 공부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생업을 놓을 수 없는 처지에서 일과 공부를 함께 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옛날에는 가난한 선비가 농사로 부모를 봉양하면서 틈틈이 글을 읽는 모습을 말했고, 오늘날에는 낮에 직장에 다니며 밤에 야간 대학이나 학원에 다니는 경우, 일하면서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경우처럼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 전반에 쓴다. 학비를 스스로 벌어 고생하며 배우는 것을 뜻하는 ‘고학(苦學)’과 통한다.[2]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낮에 밭 갈고 밤에 책 읽는 생활을 글자 그대로 묘사한 말이 굳은 것이다. 비슷한 표현은 6세기 중국 역사서에 이미 보이지만, 오늘날의 네 글자 ‘晝耕夜讀’은 송나라 이후 문헌과 조선 문집에서 널리 쓰였다.

《위서》 최광전의 ‘晝耕夜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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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되는 가장 이른 비슷한 표현은 북제 위수(魏收)가 지은 《위서(魏書)》 권67 〈최광전(崔光傳)〉에 나온다. 북위의 문신 최광(崔光)은 열일곱 살에 아버지를 따라 평성(代)으로 옮겨 왔는데, 다음과 같이 공부했다.[3]

家貧好學,晝耕夜誦,傭書以養父母。

“집이 가난했으나 배우기를 좋아하여,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외웠으며, 남의 책을 베껴 주는 품팔이로 부모를 봉양했다.” 최광은 뒤에 중서박사·저작랑이 되어 국사 편찬에 참여했고, 효문제는 그의 재주를 “황하가 동쪽으로 흐르듯 넓고 크니 오늘날의 문종(文宗)”이라고 칭찬했다.[3] 당나라 이연수(李延壽)의 《북사(北史)》 권44 〈최광전〉에도 같은 구절이 있다.[4] 중국의 성어 사전들은 지금도 이 구절에서 딴 ‘晝耕夜誦’을 표제어로 올리고 《위서》 최광전을 출처로 든다.[5]

뒤의 유서들은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글자를 조금씩 바꾸었다. 청나라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은 《북사》 최광전을 인용하며 “晝耕夜讀”으로 적었고, 원나라 무렵의 《씨족대전(氏族大全)》은 “晝耕夜學”으로 적었다.

한유의 〈차재동생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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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한유(韓愈)는 수주(壽州) 안풍현에 숨어 살던 효자 동소남(董邵南)을 기린 시 〈차재동생행(嗟哉董生行)〉에서 “아, 동생은 아침에 나가 밭 갈고 저녁에 돌아와 옛사람의 책을 읽으니, 온종일 쉴 틈이 없다(嗟哉董生朝出耕,夜歸讀古人書。盡日不得息)”고 읊었다.[6] 조선 문인들도 주경야독을 말하며 이 동생(董生)을 끌어오곤 했다. 정조 23년(1799) 《승정원일기》에는 “동소남은 효자인데도 아침에 밭 갈고 밤에 글을 읽었다(董邵南,孝子也,而朝耕而夜讀)”며 자손들에게 재주와 힘을 헤아려 선비와 농부의 일을 함께 닦게 했다는 말이 실려 있다.[7]

네 글자 ‘晝耕夜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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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晝耕夜讀’이라는 네 글자는 남송 무렵의 글에 보인다. 남송의 문장 선집 《오백가파방대전문수(五百家播芳大全文粹)》 권99에 실린 웅자복(熊子復)의 제문은 일찍 아버지를 여읜 두 형제가 “몸소 고생하며 일하고,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글을 읽었다(躬苦服勞,晝耕夜讀)”고 회고한다.[8] 원나라 대량(戴良)의 《구령산방집(九靈山房集)》, 명나라 예겸(倪謙)의 《예문희집(倪文僖集)》 등에도 이 형태가 쓰였다.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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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집에서 특히 자주 쓰였다.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 ‘晝耕夜讀’은 40여 건 확인되며, 대부분 17세기 이후의 글이다.[9]

  • 박세당(朴世堂)은 가난에 시달리는 생질에게 “옛사람은 낮에 밭 갈고 밤에 글을 읽으면서도 오히려 밭이랑에서 떨쳐 일어나 이름을 드날려 어버이를 빛냈다(古人晝耕夜讀,猶能奮起畎畝,立揚顯親)”며 분발을 당부했다.[10]
  • 이만부(李萬敷)는 벗에게 “주경야독은 옛사람의 일이니, 이것을 앞으로의 사업으로 삼으라(晝耕夜讀,乃古人事,須以此爲來頭事業)”고 했다.[11]
  • 이덕무(李德懋)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27에서 선비의 본분을 묻는 이에게 “대략을 말하면 집에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며,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글 읽는 것(入孝出恭,晝耕夜讀), 이 네 가지뿐이다”라고 답했다.[12]
  •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이 말이 보이지 않지만, 《승정원일기》 철종 7년(1856) 5월 기사에는 한 죄인이 가난한 시골에서 자라 뒤늦게 글을 배우며 “주경야독하여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힘썼다(晝耕夜讀,果爲銘心勤篤)”고 진술한 대목이 있다.[1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晝 주 낮 낮에는
耕 경 밭을 갈다 농사짓다, 생업에 힘쓰다
夜 야 밤 밤에는
讀 독 읽다 글을 읽다, 공부하다

다른 언어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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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어: 《위서》에서 온 ‘晝耕夜誦(zhòu gēng yè sòng)’이 성어 사전에 올라 있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에는 ‘晝耕夜讀’과 ‘晝耕夜誦’ 모두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
  • 일본어: 일본 국어사전(코토뱅크)에는 ‘昼耕夜読’도 ‘昼耕夜誦’도 표제어로 없다. 대신 ‘청경우독(晴耕雨読, せいこううどく)’이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이는 “갠 날에는 밭을 갈고 비 오는 날에는 집에서 책을 읽는다”는 뜻으로, 유유자적한 생활을 가리킨다.[14] 글자는 비슷하지만 고생하며 공부한다는 주경야독과는 뜻이 다르다.
  • 그는 낮에는 데이터센터에서 교대 근무를 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 끝에 정보처리기술사에 합격했다.
  • 주경야독으로 야간 대학을 마친 선배의 이야기는 신입 사원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 할아버지는 주경야독하던 젊은 시절을 자주 이야기하셨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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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설지공(螢雪之功):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은 고사에서, 어렵게 공부하여 이룬 성과.
  • 고학(苦學): 학비를 스스로 벌어서 고생하며 배움.
  • 위편삼절(韋編三絶), 수불석권(手不釋卷): 책을 부지런히 읽음.
  • 대경이서(帶經而鋤): 경전을 지니고 김을 맴. 한나라 예관(兒寬)이 품을 팔면서도 경전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쉴 때마다 읽었다는 고사.[15]
  • 청경우독(晴耕雨讀): 갠 날 밭 갈고 비 오는 날 글 읽음. 유유자적한 생활.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주경야독”,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3%BC%EA%B2%BD%EC%95%BC%EB%8F%85, 확인날짜=2026-09-27.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고학”,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3%A0%ED%95%99, 확인날짜=2026-09-27.
  3. ↑ 3.0 3.1 위수(魏收), 《위서(魏書)》 권67 〈최광전(崔光傳)〉.
  4. ↑ 이연수(李延壽), 《북사(北史)》 권44 〈최광전(崔光傳)〉.
  5. ↑ 참고: “晝耕夜誦”, 國學大師 成語詞典, https://www.guoxuedashi.net/chengyu/48062z.html, 확인날짜=2026-09-27.
  6. ↑ 한유(韓愈), 〈차재동생행(嗟哉董生行)〉,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
  7.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정조 23년(1799) 4월.
  8. ↑ 웅자복(熊子復), 〈제십숙부조청문(祭十叔父朝請文)〉, 《오백가파방대전문수(五百家播芳大全文粹)》 권99.
  9.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고전원문 검색, “晝耕夜讀”,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10.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박세당, 《서계집(西溪集)》 권20 〈여김생윤보 홍석(與金甥胤甫 弘錫)〉,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398A_0200_010_0090, 확인날짜=2026-09-27.
  11.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만부, 《식산집(息山集)》 권9 〈답김만초(答金萬初)〉,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60A_0090_010_0150, 확인날짜=2026-09-27.
  12. ↑ 이덕무(李德懋),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27.
  13.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철종 7년(1856) 5월.
  14.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晴耕雨読”,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9%B4%E8%80%95%E9%9B%A8%E8%AA%AD, 확인날짜=2026-09-27.
  15. ↑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58 〈예관전(兒寬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