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롱망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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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롱망촉(得隴望蜀)은 농(隴)을 얻고 나서 촉(蜀)까지 바란다는 뜻으로, 만족할 줄 모르고 욕심을 계속 부리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1]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농 지방을 평정할 무렵 장수 잠팽(岑彭)에게 보낸 칙서에서 나왔다.
하나를 이루면 곧 그다음을 바라는 사람의 욕심을 이르는 말이다. 대개 끝없는 욕심을 나무라는 뜻으로 쓰지만, 스스로를 낮추어 “득롱망촉 같은 부탁이지만”이라고 추가 요청을 꺼낼 때도 쓴다. 줄여서 ‘망촉(望蜀)’이라고도 하고, ‘평롱망촉(平隴望蜀)’이라고도 한다.[1]
‘농(隴)’은 지금의 간쑤성(甘肅省) 동남부 일대로, 농산(隴山)이 있어 붙은 이름이며 ‘농서(隴西)’라고도 했다. ‘촉(蜀)’은 지금의 쓰촨성(四川省)이다. 광무제 때 농에는 외효(隗囂)가, 촉에는 공손술(公孫述)이 웅거하고 있었다.[2]
중국어에서도 ‘得陇望蜀(dé lǒng wàng shǔ)’라고 한다.[2] 일본어에서는 ‘농을 얻어 촉을 바란다(隴を得て蜀を望む)’라고 풀어 말하고, ‘망촉의 바람(望蜀の願い)’이라는 말도 쓴다.[3]
건무(建武) 8년(32), 광무제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천수(天水)를 깨뜨린 뒤 잠팽과 오한(吳漢)에게 서성(西城)에 들어간 외효를 포위하게 했다. 공손술의 장수 이육(李育)이 외효를 구하러 와서 상규(上邽)를 지키자 광무제는 개연(蓋延)·경엄(耿弇)에게 그곳을 에워싸게 하고 낙양으로 돌아가면서, 잠팽에게 다음과 같은 칙서를 내렸다.[4]
兩城若下,便可將兵南擊蜀虜。人苦不知足,既平隴,復望蜀。每一發兵,頭鬚為白。
“두 성(서성과 상규)이 떨어지거든 곧바로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촉의 오랑캐(공손술)를 쳐라.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괴로우니, 농을 평정하고 나니 다시 촉을 바라게 되는구나. 군사를 한 번 일으킬 때마다 머리털과 수염이 하얗게 센다.”[4][5]
광무제의 말은 천하 통일을 서두르는 결의이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에 지친 자신을 돌아보는 탄식이기도 했다. 《성어전》은 이 말이 뒤에 ‘끝없는 욕심’을 나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2] 외효는 이듬해인 건무 9년(33) 정월 병들고 굶주린 끝에 분을 못 이겨 죽었고, 광무제는 뒤에 공손술까지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했다.[2]
《성어전》은 이 고사의 전거로 《동관한기(東觀漢記)》 권23 〈외효전(隗囂傳)〉을 드는데, 그 글에서는 첫머리가 ‘두 성’이 아니라 “서성이 떨어지거든(西城若下)”으로, 끝이 “머리털과 살쩍이 센다(頭鬢為白)”로 되어 있다.[2][6]
나무위키 등에는 광무제가 외효의 아들이 항복해 온 뒤 좌우를 돌아보며 이 말을 했다고 소개한 경우가 있으나, 《후한서》 잠팽전에 따르면 이 말은 건무 8년 서성을 포위하던 중에 잠팽에게 보낸 칙서의 한 구절이며, 외효가 죽기도 전의 일이다.[4]
같은 비유는 삼국 시대에 다시 쓰였다. 건안(建安) 20년(215) 조조(曹操)가 장로(張魯)를 쳐서 한중(漢中)을 얻자, 주부 사마의(司馬懿)가 “유비가 속임수와 힘으로 유장을 사로잡았으나 촉 사람들이 아직 따르지 않으니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곧바로 익주로 진격하자고 권했다. 조조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 따르지 않았다.[7]
人苦無足,既得隴右,復欲得蜀!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괴로운 법이다. 이미 농우(隴右)를 얻었는데 또 촉까지 얻으려 하는가!”[7] 《자치통감(資治通鑑)》 권67은 같은 대목을 “이미 농을 얻었는데 다시 촉을 바라는가(既得隴,復望蜀邪)”로 적고, 유엽(劉曄)도 진격을 권했지만 조조가 듣지 않았다고 이어서 쓴다.[8] 광무제는 촉을 바라면서 이 말을 했지만, 조조는 촉을 바라지 않겠다며 같은 말을 한 셈이다.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은 이 성어의 유래를 조조의 이 말로 풀이한다.[3] 《삼국지연의》 제67회에서는 조조의 말이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괴롭다더니, 이미 농을 얻고 또 촉을 바라느냐(人苦不知足,既得隴,復望蜀耶)”로 바뀌어, 광무제의 칙서 문구와 합쳐졌다.[9]
‘得隴望蜀’ 네 글자는 당나라 때 편찬된 《진서》 〈식화지(食貨志)〉에 이미 보인다. 광무제의 치세를 두고 “농을 얻고 촉을 바라게 되자(得隴望蜀) 백성이 편안해졌다”고 한 대목으로, 여기서는 욕심을 나무라는 뜻 없이 광무제가 농과 촉을 차례로 평정한 일을 가리킨다.[10] 이백(李白)은 〈고풍(古風)〉 제23수에서 “사람들은 만족을 모르는 것이 괴로워, 농을 얻고서 또 촉을 바라네(物苦不知足,得隴又望蜀)”라고 읊어 욕심의 뜻으로 썼다.[2] 《홍루몽(紅樓夢)》 제48회에서는 대관원에 들어와 살게 된 향릉(香菱)이 곧바로 시 짓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설보채(薛寶釵)가 웃으며 “너는 ‘득롱망촉’이라니까(我說你得隴望蜀呢)”라고 놀린다.[2][11] 청나라 이어(李漁)의 글에는 ‘거롱망촉(據隴望蜀)’이라는 형태도 보인다.[2]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得隴望蜀’은 2건 검색된다.[12] 그 하나는 1423년(세종 5) 일본 국왕이 보낸 사신 규주(圭籌)·범령(梵齡)이 가져온 국서로, 앞서 대장경을 받은 데 이어 대장경판까지 달라고 청하면서 “이 일이 비록 농을 얻고 촉을 바라는 것 같지만, 이웃 나라와 우호를 닦으려 하니 어찌 속마음을 숨기겠습니까(此事雖似得隴望蜀,要修隣好,寧可秘情)”라고 했다. 대신들은 한 번 들어주면 요구가 끝이 없을 것이라 하여 반대했고, 세종은 들어주기 어렵다고 답했다.[13] 다른 하나는 1693년(숙종 19) 연최적(延最績)의 상소로, 수사(水使)로 있을 때 뇌물을 싣고 와 권세가에 바치고 더 높은 자리를 노리는 무관의 행태를 “득롱망촉”이라고 꼬집었다.[14]
문집에서는 성현(成俔)의 시 〈밤비(夜雨)〉에 가뭄 끝에 내린 비가 더 넉넉히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득롱망촉의 뜻이 끝이 없다(得隴望蜀意無極)”고 읊은 구절이 있다.[15]
일본어에서는 《일본국어대사전》이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의 소설 《이별의 서리(別れ霜)》(1892)에 나오는 “농을 얻어 촉을 바라는 것은 인정의 늘 그러함인가”를 첫 용례로 든다.[3]
- 망 분리 예산을 겨우 따냈더니 곧바로 제로 트러스트 전환 예산까지 요청하자, 재무팀은 득롱망촉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 첫 매장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세 곳을 더 내겠다는 것은 득롱망촉이다.
- 득롱망촉 같은 부탁인 줄 알지만, 자료를 한 번만 더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득롱망촉”,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93%9D%EB%A1%B1%EB%A7%9D%EC%B4%89, 확인날짜=2026-09-28.
- ↑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 2.08 2.09 2.10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得隴望蜀”,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85, 확인날짜=2026-09-28.
- ↑ 3.0 3.1 3.2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속담을 아는 사전(ことわざを知る辞典)》, “隴を得て蜀を望む”,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9A%B4%E3%82%92%E5%BE%97%E3%81%A6%E8%9C%80%E3%82%92%E6%9C%9B%E3%82%80, 확인날짜=2026-09-28.
- ↑ 4.0 4.1 4.2 범엽(范曄), 《후한서(後漢書)》 권17 〈풍잠가열전(馮岑賈列傳)〉 잠팽전(岑彭傳).
- ↑ 이방(李昉) 등, 《태평어람(太平御覽)》 권374 〈인사부(人事部)〉 인용 《후한서》.
- ↑ 《동관한기(東觀漢記)》 권23 〈외효(隗囂)〉.
- ↑ 7.0 7.1 방현령(房玄齡) 등, 《진서(晉書)》 권1 〈선제기(宣帝紀)〉.
- ↑ 사마광(司馬光), 《자치통감(資治通鑑)》 권67 〈한기(漢紀) 59〉 헌제 건안 20년.
- ↑ 나관중(羅貫中),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67회.
- ↑ 방현령(房玄齡) 등, 《진서(晉書)》 권26 〈식화지(食貨志)〉.
- ↑ 조설근(曹雪芹), 《홍루몽(紅樓夢)》 제48회.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得隴望蜀”,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22권, 세종 5년 12월 25일 임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0512025_001,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 8월 6일 정축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1908006_001, 확인날짜=2026-09-28.
- ↑ 성현(成俔), 〈야우(夜雨)〉, 《허백당집(虛白堂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72A_0230_010_0110,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