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탐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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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탐대실(小貪大失)은 작은 것을 탐하다가 오히려 큰 것을 잃는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1]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매달리다가 그보다 훨씬 큰 이익이나 일의 근본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경계할 때 쓴다. 비용을 조금 아끼려다 큰 손실을 부르거나, 작은 실리를 챙기려다 신뢰를 잃는 경우에 흔히 쓰인다.
중국어에서는 같은 뜻으로 ‘탐소실대(貪小失大)’나 ‘인소실대(因小失大)’를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도 ‘貪小失大’를 표제어로 올린다.[2] ‘작은 것을 탐하여(貪小) 큰 것을 잃는다(失大)’처럼 목적어를 동사 뒤에 두는 것이 한문의 일반 어순이다. ‘小貪大失’이라는 네 글자는 중국 한문 전적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조선 문헌에서 보이므로, 한국에서 굳은 형태로 보인다.
‘소탐대실’이라는 말 자체에 딸린 고사는 없다. 다만 같은 뜻의 중국 성어 ‘貪小失大’의 근원으로 드는 이야기와, 이 성어를 설명할 때 흔히 함께 소개되는 촉(蜀)나라 석우(石牛) 이야기가 있다. 두 이야기는 출전이 서로 다르다.
《성어전》은 ‘貪小失大’의 말뿌리(語本)를 《여씨춘추(呂氏春秋)》 권15 〈신대람(慎大覽)〉의 권훈(權勳) 편으로 본다.[2] 연나라 창국군(昌國君) 악의(樂毅)가 다섯 나라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를 치자, 제나라는 촉자(觸子)를 장수로 삼아 제수(濟水) 가에서 맞서게 했다. 제나라 왕이 싸움을 재촉하며 “싸우지 않으면 네 일족을 없애고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겠다”고 모욕하자, 촉자는 차라리 제나라 군이 지기를 바랐다. 그는 싸움이 붙자마자 징을 쳐서 군사를 물렸고, 자신은 수레 한 대로 달아나 행방을 감추었다. 이어 달자(達子)가 남은 군사를 모았으나 상으로 줄 것이 없었다.
達子又帥其餘卒,以軍於秦周,無以賞,使人請金於齊王。齊王怒曰:「若殘豎子之類,惡能給若金?」與燕人戰,大敗,達子死,齊王走莒。燕人逐北入國,相與爭金於美唐甚多。此貪於小利以失大利者也。
“달자가 남은 군사를 이끌고 진주(秦周)에 진을 쳤으나 상으로 줄 것이 없어 사람을 보내 제나라 왕에게 금을 청했다. 제나라 왕은 ‘패잔병 같은 녀석들에게 어찌 금을 주겠느냐’며 화를 냈다. 연나라와 싸워 크게 지니 달자는 죽고 제나라 왕은 거(莒)로 달아났다. 연나라 군사는 달아나는 이들을 쫓아 도성에 들어가서, 미당(美唐)의 금고에서 서로 다투어 금을 가져간 것이 매우 많았다. 이것이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큰 이익을 잃은 경우이다.” 후한의 고유(高誘)는 주석에서 “작은 이익은 금이고, 큰 이익은 나라이다(小利金也,大利國也)”라고 풀었다.[3]
전국 시대에 진(秦)나라 혜왕(惠王)이 금똥을 누는 돌소를 미끼로 촉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여러 옛 기록에 조금씩 다르게 전한다.
- 양웅(揚雄)의 이름으로 전하는 《촉왕본기(蜀王本紀)》를 《태평어람(太平御覽)》 권900이 인용한 대목에는 “진 혜왕이 촉을 치려고 돌소 다섯 마리를 새기고 그 뒤에 금을 놓아두었다. 촉 사람들이 이를 보고 소가 금똥을 눈다고 여겼고 촉왕도 그렇게 믿었다. 이에 군사 천 명을 내어 다섯 장사(五丁力士)에게 소를 끌게 하니 길이 생겨 세 마리를 성도(成都)까지 옮겼다. 진나라가 길을 얻은 것은 돌소 덕분이었다. 뒤에 승상 장의(張儀) 등을 보내 석우도(石牛道)를 따라 촉을 쳤다”고 되어 있다.[4]
- 삼국 시대 촉한(蜀漢) 사람 내민(來敏)의 《본촉론(本蜀論)》을 인용한 북위 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 권27 〈면수(沔水)〉에도 “진 혜왕이 촉을 치려 했으나 길을 몰라 돌소 다섯 마리를 만들고 꼬리 밑에 금을 두어 금똥을 눈다고 했다. 촉왕은 힘을 믿고 다섯 장사에게 끌어오게 하여 길을 냈다. 진나라는 장의와 사마착(司馬錯)을 시켜 그 길을 찾아 촉을 멸했으니, 그래서 석우도라 한다(秦使張儀、司馬錯尋路滅蜀,因曰石牛道)”는 비슷한 내용이 있다.[5]
- 동진 상거(常璩)의 《화양국지(華陽國志)》 권3 〈촉지(蜀志)〉는 줄거리가 조금 다르다. 혜왕이 “돌소 다섯 마리를 만들어 아침마다 그 뒤에 금을 쏟아 놓고 ‘소가 금을 눈다’고 했다(乃作石牛五頭,朝瀉金其後,曰「牛便金」)”. 촉왕이 돌소를 청하자 다섯 장사를 보내 맞아 오게 했으나, 소가 금을 누지 않자 성을 내며 돌려보내고 진나라 사람을 “동쪽의 송아지 치는 아이들”이라고 비웃었다. 진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송아지나 치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촉을 얻을 것”이라고 웃어넘겼고, 뒤에 장의·사마착 등이 석우도를 따라 촉을 쳤다.[6]
이 이야기를 ‘작은 이익을 탐하다 큰 이익을 잃는다’는 교훈과 직접 묶은 것은 북제(北齊) 유주(劉晝)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유자(劉子)》의 〈탐애(貪愛)〉 편이다. 이 편은 “작은 이익은 큰 이익의 좀벌레이고, 작은 인색함은 큰 화의 나루터이다. 작은 이익을 탐하면 큰 이익은 반드시 잃는다”로 시작하여 촉후(蜀侯)의 이야기를 들고, 이렇게 끝맺는다.
蜀侯貪之,乃塹山填谷,使五丁力士以迎石牛,秦人帥師隨後而至,滅國亡身,為天下所笑,以貪小利失其大利也。
“촉후는 이를 탐내어 산을 깎고 골짜기를 메워 다섯 장사를 시켜 돌소를 맞아 오게 했다. 진나라 사람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뒤따라 들어와 나라가 망하고 몸도 죽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큰 이익을 잃은 것이다.” 《성어전》도 ‘貪小失大’ 항목에서 이 대목을 참고 자료로 싣는다.[2] 《유자》는 《유자신론(劉子新論)》이라고도 하며, 지은이를 두고는 유주 외에 남조 양나라의 유협(劉勰)이라는 설 등 여러 견해가 있다.[8] 청나라 적호(翟灝)의 《통속편(通俗編)》 권23도 ‘貪小利失大利’ 항목에서 《여씨춘추》와 함께 이 대목을 ‘〈신론(新論)〉 탐애편’으로 인용했다.[9]
정리하면 석우 이야기의 원출처는 《촉왕본기》·《화양국지》·《수경주》 같은 촉 지역의 역사·지리 기록이고, 이를 탐욕의 교훈으로 쓴 것은 《유자》이다. ‘소탐대실’이라는 네 글자는 이 가운데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다. 흔히 이 이야기를 “전국 시대 북제 유주의 《신론》”에 실린 고사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국 시대는 돌소 이야기의 배경이고, 유주는 6세기 북제 사람이다. 또 나무위키 등에는 책 이름이 《신론》이 아니라 《유자》라는 설명이 보이지만, 《유자》는 예로부터 《유자신론》·《신론》이라고도 불렸으므로 어느 쪽도 틀린 이름은 아니다.
‘小貪大失’의 네 글자는 조선 문헌에서 확인된다.
- 인조 8년(1630) 12월, 날씨가 몹시 추워 승지를 보내 전옥서를 살피게 하니 여러 관아가 빌려준 빚을 받아 내느라 가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인조는 관아들이 도성 백성에게 돈을 꾸어 주고 달마다 이자를 받는 일을 두고 “이것이야말로 이른바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 것이다(此眞所謂小貪大失者也)”라며 금지하게 했다.[10] ‘이른바(所謂)’라고 한 데서 이미 널리 쓰이던 말임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도 같은 하교가 실려 있다.
- 이회보(李回寶)는 효종 6년(1655) 을미년 2월에 올린 상소 〈구언응지(求言應旨)〉에서 포(布)를 거두는 문제를 논하며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을까 두렵다(小貪大失。竊恐)”라고 했다.[11]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小 | 소 | 작다 | 작은 것(작은 이익) |
| 貪 | 탐 | 탐하다 | 욕심내다 |
| 大 | 대 | 크다 | 큰 것(큰 이익) |
| 失 | 실 | 잃다 | 잃다 |
한국어에서는 흔히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음”으로 풀지만, 글자 그대로 읽으면 ‘작게 탐하고 크게 잃는다’에 가깝다. 목적어를 뒤에 둔 중국어의 ‘貪小失大’가 뜻을 더 곧바로 드러낸다.
- 라이선스 비용 몇 푼을 아끼려고 지원이 끝난 운영체제를 계속 쓰다가 랜섬웨어에 당했으니 소탐대실도 이런 소탐대실이 없다.
- 수수료 몇 퍼센트를 더 받으려다 오랜 거래처를 잃는 소탐대실을 저질렀다.
- 당장의 점수에 매달려 기초를 소홀히 하면 소탐대실하기 쉽다.
- 탐소실대(貪小失大), 인소실대(因小失大): 중국어에서 쓰는 형태.[2]
- 고소실대(顧小失大): 작은 것만 돌아보다 큰 것을 잃음. 《성어전》은 한나라 초연수(焦延壽)의 《초씨역림(焦氏易林)》 용례를 든다.[2]
- 득불상실(得不償失): 얻은 것이 잃은 것을 메우지 못함. 《성어전》은 ‘득불상실’은 얻은 것이 잃은 것에 미치지 못함에, ‘탐소실대’는 작은 이익을 탐한 결과 큰 손실을 보는 데에 무게가 있다고 구분한다.[2]
- 교각살우(矯角殺牛):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임. 작은 흠을 고치려다 일을 그르친다는 점에서 통한다.
-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뜻이 가까운 우리 속담.
- 반대 의미: 망양득우(亡羊得牛): 양을 잃고 소를 얻음. 작은 것을 잃고 큰 것을 얻는다는 뜻으로, 《성어전》이 반의어로 든다.[2]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소탐대실”,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6%8C%ED%83%90%EB%8C%80%EC%8B%A4,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2.2 2.3 2.4 2.5 2.6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貪小失大”,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29,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여씨춘추(呂氏春秋)》 권15 〈신대람(慎大覽)〉 권훈(權勳).
- ↑ 《태평어람(太平御覽)》 권900, 《촉왕본기(蜀王本紀)》 인용.
- ↑ 역도원(酈道元), 《수경주(水經注)》 권27 〈면수(沔水)〉, 내민(來敏) 《본촉론(本蜀論)》 인용.
- ↑ 상거(常璩), 《화양국지(華陽國志)》 권3 〈촉지(蜀志)〉.
- ↑ 《유자(劉子)》 〈탐애(貪愛)〉.
- ↑ Ulrich Theobald, “Liuzi 劉子”, ChinaKnowledge.de, http://www.chinaknowledge.de/Literature/Diverse/liuzi.html, 확인날짜=2026-09-27.
- ↑ 적호(翟灝), 《통속편(通俗編)》 권2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23권, 인조 8년 12월 26일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pa_10812026_002, 확인날짜=2026-09-27.
- ↑ 이회보, 〈구언응지(求言應旨) 을미이월초삼일(乙未二月初三日)〉, 《석병집(石屛集)》 권4,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