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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은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경지에 오른 사람은 도구나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도 자기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뛰어난 사람의 실력을 칭찬할 때, 또는 장비 탓을 하는 사람을 나무랄 때 쓴다. “서툰 목수가 연장 탓한다”는 우리 속담을 거꾸로 말한 셈이다. 반대로 서예가들 사이에서는 좋은 붓과 종이가 중요하다는 반론도 오래전부터 있었다(아래 ‘반론’).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고 우리말샘에 명사로 올라 있다.[1] 일본어에서는 ‘能書筆を択ばず(のうしょふでをえらばず)’라고 하며, 같은 뜻으로 ‘弘法筆を選ばず(명필 고보 대사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를 더 흔히 쓴다.[2] 중국어에서는 ‘善書不擇筆’, ‘善書者不擇筆’ 형태로 많이 쓴다.

다섯 글자이므로 사자성어가 아니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能 능 능하다 잘하다, 능숙하다
書 서 글, 글씨 글씨(를 쓰다)
不 불 아니다 아니하다
擇 택 가리다 가리다, 고르다
筆 필 붓 붓

우세남이 말한 구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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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의 뿌리는 당나라 초의 명필 우세남(虞世南)·저수량(褚遂良)·구양순(歐陽詢)에 얽힌 이야기이다. 당나라 유속(劉餗)의 《수당가화(隋唐嘉話)》에 따르면, 저수량이 스승 격인 우세남에게 자기 글씨를 견주어 물었다.[3]

褚遂良問虞監曰:“某書何如永師?”曰:“聞彼一字,直錢五萬,官豈得若此?”曰:“何如歐陽詢?”曰:“聞詢不擇紙筆,皆能如志,官豈得若此。”褚恚曰:“既然,某何更留意於此?”虞曰:“若使手和筆調,遇合作者,亦深可貴尚。”褚喜而退。

“저수량이 우 비서감에게 ‘제 글씨는 지영(智永) 선사와 견주어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듣자니 그분은 글자 하나에 오만 전이라는데, 그대가 어찌 그만하겠는가?’ 하였다. ‘구양순과 견주면 어떻습니까?’ 하니, ‘듣자니 구양순은 종이와 붓을 가리지 않고도 모두 뜻대로 쓴다는데, 그대가 어찌 그만하겠는가?’ 하였다. 저수량이 성을 내며 ‘그렇다면 제가 무엇 하러 여기에 더 마음을 쓰겠습니까?’ 하니, 우세남이 ‘손이 부드럽고 붓이 고르며 마음에 맞는 작품을 만난다면 그 또한 매우 귀하게 여길 만하다’ 하였다. 저수량은 기뻐하며 물러갔다.”

북송 초의 《태평광기(太平廣記)》 권208은 이 이야기를 《국사이찬(國史異纂)》에서 인용해 실었는데, 저수량이 ‘성을 내며(恚)’라는 대목이 없고 “吾聞彼一字直五萬”처럼 글자가 조금 다르다.[4] 원문의 핵심 구절은 ‘不擇紙筆(종이와 붓을 가리지 않는다)’이고, 이것이 구양순의 경지를 기리는 말이었다.

《신당서(新唐書)》 〈배행검전(裴行儉傳)〉에는 초서와 예서로 이름난 배행검이 늘 “저수량은 좋은 붓과 좋은 먹이 아니면 쓰지 않았는데, 붓과 먹을 가리지 않고도 곱고 빠르게 쓰는 사람은 나와 우세남뿐이다(褚遂良非精筆佳墨,未嘗輒書,不擇筆墨而妍捷者,余與虞世南耳)”라고 했다는 말이 실려 있다.[5] 당나라 서예가들 사이에서 ‘도구를 가리지 않음’이 높은 경지의 표지였음을 보여 준다.

속담으로 굳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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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에 들어 이 이야기는 속담이 되었다. 북송의 진사도(陳師道)는 “글씨를 잘 쓰는 이는 종이와 붓을 가리지 않으니, 묘함은 마음과 손에 있지 물건에 있지 않다(善書不擇紙筆,妙在心手,不在物也)”고 하였다.[6] 남송의 진유(陳槱)는 《부훤야록(負暄野錄)》에서 “속론에 ‘글씨 잘 쓰는 이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善書不擇筆)’고 하는데 대개 근본이 있다”며 바로 위의 우세남·저수량 문답을 그 근거로 들었다.[7]

‘善書’ 대신 ‘能書’를 쓴 다섯 글자 형태는 명나라 문헌에서 보인다. 양신(楊慎)은 《단연총록(丹鉛總錄)》 권17에서 이백이 맨발의 빨래하는 여인을 거듭 시로 읊은 것을 두고 장함(張含, 자는 愈光)이 “태백은 글씨 잘 쓰는 이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할 만하다(太白可謂能書不擇筆矣)”라고 농담한 일을 적었다.[8] 명말 항목(項穆)의 《서법아언(書法雅言)》은 “속어에 ‘能書不擇筆’이라 한다”고 하여, 이 무렵 이미 속담으로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9]

조선에서는 주로 ‘善書者不擇筆’ 형태로 쓰였다. 《세조실록》 총서에는 세조(당시 진양대군)가 어느 날 약한 활로 화살을 빠르게 쏘자 아우 광평대군이 “활은 좋지 않은데 화살은 어찌 이리 빠릅니까” 하고 감탄했고, 세조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10]

善書者不擇筆,善吹者不擇笛,善敎者不擇人,君子行仁,不擇地,志士行義,不擇時。

“글씨를 잘 쓰는 자는 붓을 가리지 않고, 피리를 잘 부는 자는 피리를 가리지 않으며, 잘 가르치는 자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군자는 인을 행함에 땅을 가리지 않고, 지사는 의를 행함에 때를 가리지 않는다.”

‘能書不擇筆’ 다섯 글자는 《조선왕조실록》 원문과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는다.[11] 오늘날 한국에서 쓰는 ‘능서불택필’은 명대 이후의 형태가 근대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서예가들 사이에서 늘 반론을 불렀다. 명나라 왕긍당(王肯堂)은 《필진(筆塵)》에서 “‘能書不擇筆’은 헛소리다. 예부터 오직 구양순만이 붓을 가리지 않았다고 일컬어질 뿐”이라고 하였고,[12] 항목은 “종이·붓·먹·벼루 넷 가운데 하나도 없앨 수 없으며 그중에서도 종이와 붓이 으뜸이니, 속어의 ‘能書不擇筆’은 결코 그럴 리가 없다(斷無是理也)”고 잘라 말했다.[9] 청나라 전영(錢泳)도 《이원총화(履園叢話)》에서 “속담에 ‘能書不擇筆’이라 하나 실로 망언이다”라고 했다.[13] 반면 조환광(趙宧光)의 《한산추담(寒山帚談)》은 “옛사람이 ‘能書不擇筆’이라 한 데는 뜻이 있다.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고르고 버리는 것을 말하지 쓰는 법을 말한 것이 아니다”라며, 어떤 붓을 만나든 그에 맞게 쓰는 능력으로 풀었다.[14]

조선에서도 같은 논의가 있었다. 이광사(李匡師)는 〈서결(書訣)〉에서 저수량은 좋은 붓과 먹이 아니면 쓰지 않았고 우세남은 구양순이 종이와 붓을 가리지 않는다 하여 저수량이 미치지 못한다고 했지만 “이것으로 우열을 정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15] 김정희(金正喜)는 더 분명하게 “‘善書者不擇筆’은 통론(通論)이 아니다.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과 〈화도사비〉 같은 글씨는 좋은 붓이 아니면 쓸 수 없다”라고 하였다.[16] 공교롭게도 이 말의 주인공인 구양순의 글씨를 들어 반론한 것이다.

  • 능서불택필이라더니, 그는 사양이 낮은 노트북 한 대로도 거뜬히 서비스를 띄웠다.
  • 장비 탓만 하는 신입에게 선배는 능서불택필이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 능서불택필도 기본기가 있어야 하는 말이다. 좋은 도구는 실력을 더 빛나게 한다.
  • 일본 속담 ‘弘法筆を選ばず’의 고보 대사(弘法大師)는 헤이안 시대 승려 구카이(空海)로, 사가 천황·다치바나노 하야나리와 함께 ‘삼필(三筆)’로 불린 명필이다.[17] 메이지 시대 일본 속담 사전도 ‘能書筆を擇ばず’를 “기능이 뛰어난 사람은 쓰는 도구를 가리지 않고 솜씨를 드러낸다”로 풀이했다.[18][2]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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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툰 목수가 연장 탓한다: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 공연히 도구나 조건만 탓함을 이르는 속담. 능서불택필과 짝을 이루는 말.
  • 문방사우(文房四友): 종이·붓·먹·벼루. 이 말을 둘러싼 반론의 대상.
  • 일필휘지(一筆揮之): 글씨를 단숨에 힘차게 써 내림.
  • 공욕선기사 필선리기기(工欲善其事,必先利其器): 장인이 일을 잘하려면 먼저 연장을 날카롭게 해야 한다. 《논어》 〈위령공〉의 말로, 반대 방향의 격언.
  1. ↑ 1.0 1.1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능서불택필”, https://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1324628, 확인날짜=2026-10-11.
  2. ↑ 2.0 2.1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能書筆を択ばず”,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3%BD%E6%9B%B8%E7%AD%86%E3%82%92%E6%8A%9E%E3%81%B0%E3%81%9A, 확인날짜=2026-10-11.
  3. ↑ 유속(劉餗), 《수당가화(隋唐嘉話)》.
  4. ↑ 이방(李昉) 등, 《태평광기(太平廣記)》 권208 〈서(書) 3〉 ‘저수량(褚遂良)’, 《국사이찬(國史異纂)》 인용.
  5. ↑ 구양수(歐陽修)·송기(宋祁) 등, 《신당서(新唐書)》 권108 〈배행검전(裴行儉傳)〉.
  6. ↑ 진사도(陳師道), 《후산담총(後山談叢)》, 《후산집(後山集)》 권18 수록.
  7. ↑ 진유(陳槱), 《부훤야록(負暄野錄)》 권하.
  8. ↑ 양신(楊慎), 《단연총록(丹鉛總錄)》 권17.
  9. ↑ 9.0 9.1 항목(項穆), 《서법아언(書法雅言)》.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 1권 총서 1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ga_000015, 확인날짜=2026-10-11.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能書不擇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 검색, “能書不擇筆”,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11.
  12. ↑ 적호(翟灝), 《통속편(通俗編)》 권7 ‘선서불택필(善書不擇筆)’, 왕긍당(王肯堂) 《필진(筆塵)》 인용.
  13. ↑ 전영(錢泳), 《이원총화(履園叢話)》.
  14. ↑ 조환광(趙宧光), 《한산추담(寒山帚談)》 권하.
  15. ↑ 이광사(李匡師), 〈서결(書訣)〉, 《원교집(圓嶠集)》,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11.
  16. ↑ 김정희(金正喜), 〈잡지(雜識)〉, 《완당전집(阮堂全集)》,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11.
  17.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三筆”,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9%E7%AD%86, 확인날짜=2026-10-11.
  18. ↑ 熊代彦太郎 편, 《이언사전(俚諺辞典)》, 1906,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컬렉션, https://dl.ndl.go.jp/, 확인날짜=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