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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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탄지고(塗炭之苦)는 진구렁에 빠지고 숯불에 타는 듯한 괴로움이라는 뜻으로, 몹시 곤궁하고 고통스러운 처지를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도탄(塗炭)’은 진흙(塗)과 숯불(炭)이다. 진흙탕에 빠지고 불에 타는 것처럼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가리키며, 주로 나쁜 정치나 전쟁, 흉년 때문에 백성이 겪는 고통을 말할 때 쓴다.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처럼 ‘도탄’만으로도 같은 뜻이 된다.[2] 중국어에서는 ‘생령도탄(生靈塗炭)’이 더 흔하다.
‘도탄’이라는 비유는 《서경(書經)》 〈중훼지고(仲虺之誥)〉에 나온다. 은나라 탕왕(湯王)이 하나라 걸왕(桀王)을 남소(南巢)로 내쫓은 뒤 “후세가 나를 구실로 삼을까 두렵다”며 부끄러워하자, 신하 중훼(仲虺)가 이렇게 아뢰었다.[3]
嗚呼!惟天生民有欲,無主乃亂;惟天生聰明時乂,有夏昬德,民墜涂炭,天乃錫王勇智,表正萬邦,纘禹舊服。
“아, 하늘이 백성을 낼 때 욕심을 함께 주었으니 임금이 없으면 어지러워집니다. 그래서 하늘이 총명한 이를 내어 다스리게 했습니다. 하나라 임금이 덕에 어두워 백성이 진흙과 숯불에 떨어지니, 하늘이 임금께 용기와 지혜를 주어 온 나라의 본보기가 되게 하고 우임금의 옛 일을 잇게 했습니다.” 탕왕이 걸왕을 친 것이 하늘의 뜻을 따른 정당한 일이었다는 말이다. ‘涂’는 ‘塗’와 통하는 글자로, 판본에 따라 ‘民墜塗炭’으로도 쓴다. 이 편은 동진 때 매색(梅賾)이 바쳤다는 《고문상서》에 실린 편이다.
진흙과 숯은 더러운 것의 비유로도 쓰였다.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백이(伯夷)는 나쁜 사람의 조정에 서는 것을 “조회 옷과 관을 갖추고 진흙과 숯 위에 앉는 것(如以朝衣朝冠坐於涂炭)”처럼 여겼다고 했다.[4] 일본의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도 ‘塗炭’의 뜻을 ‘진흙과 불에 시달리는 고통’과 ‘매우 더러운 것’ 두 가지로 나누고, 앞의 것은 〈중훼지고〉를, 뒤의 것은 《맹자》를 참고 문헌으로 든다.[5]
‘塗炭之苦’라는 네 글자는 남북조 시대부터 보인다. 남조 송나라의 계양왕(桂陽王) 유휴범(劉休範)은 474년 거병하면서 조정 대신 원찬(袁粲)·저연(褚淵)·유병(劉秉)에게 보낸 글에서 “오랑캐가 침략하여 강회가 위협받고, 임금은 어리고 종실은 쇠약한데 … 변경은 도탄의 고통에 얽혀 있고 출정한 병사는 고된 노역에 시달린다(疆埸嬰塗炭之苦,征夫有勤役之勞)”고 했다. 이 글은 《송서(宋書)》 권79 〈문오왕전(文五王傳)〉에 실려 있다.[6] 당나라 유분(劉蕡)이 828년 현량방정과 대책에서 “백성에게 도탄의 고통이 있어도 폐하께서는 아실 길이 없다(百姓有塗炭之苦,陛下無由而知)”고 한 대목도 《구당서》·《신당서》의 그의 전기에 실려 널리 읽혔다.[7]
나무위키 등에는 ‘도탄지고’를 줄여 ‘도탄’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경》·《맹자》의 ‘도탄’이 먼저 있었고 ‘도탄지고’는 그 뒤 남북조 시대에 생긴 형태이다.
고려 말 정도전(鄭道傳)은 정몽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불교가 성하여 풍속이 무너지고 집안이 망하는 폐해를 두고 “짐승으로 돌아가고 도탄에 빠지는 괴로움(其禽獸之歸。塗炭之苦)”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8] 권근(權近)도 〈향약제생집성방서(鄕藥濟生集成方序)〉에서 조선 건국을 “생민을 도탄의 고통에서 건져 낸(以拯生民塗炭之苦)” 일로 표현했다.[9]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5건이 있다. 가장 이른 것은 1566년(명종 21) 5월 사간원 대사간 강사필(姜士弼) 등의 상소로, 세 가지 폐단을 고치면 “창생이 도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蒼生可脫塗炭之苦矣)”고 했다.[10] 같은 글이 이이(李珥)의 문집 《율곡전서》에 〈간원진시사소(諫院陳時事疏)〉로 실려 있어, 이이가 지은 상소로 보인다.[11] 이이는 1582년에도 시폐를 논한 상소에서 “이 백성이 무슨 죄로 성명한 임금을 만나고도 끝내 도탄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가(斯民何罪,値聖明之君,而終不得脫塗炭之苦乎)”라고 했다.[12]
- 오랜 전쟁으로 백성들은 도탄지고에 시달렸다.
- 랜섬웨어로 지역 병원 전산망이 멈추자 환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는 도탄지고를 겪었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도탄지고”,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F%84%ED%83%84%EC%A7%80%EA%B3%A0, 확인날짜=2026-10-03.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도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F%84%ED%83%84, 확인날짜=2026-10-03.
- ↑ 《서경(書經)》 〈상서(商書)·중훼지고(仲虺之誥)〉.
-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
- ↑ 5.0 5.1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塗炭”,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A1%97%E7%82%AD, 확인날짜=2026-10-03.
- ↑ 심약(沈約), 《송서(宋書)》 권79 〈문오왕전(文五王傳)·계양왕 휴범(桂陽王休範)〉.
- ↑ 유후(劉昫) 등, 《구당서(舊唐書)》 권190 하 〈문원전 하(文苑傳下)·유분(劉蕡)〉; 구양수(歐陽脩) 등, 《신당서(新唐書)》 권178 〈유분전(劉蕡傳)〉.
- ↑ 정도전(鄭道傳), 〈상정달가서(上鄭達可書)〉, 《삼봉집(三峯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24A_0060_030_0010, 확인날짜=2026-10-03.
- ↑ 권근(權近), 〈향약제생집성방서(鄕藥濟生集成方序)〉, 《양촌집(陽村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36A_0200_010_0090,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32권, 명종 21년 5월 12일 임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ma_12105012_002, 확인날짜=2026-10-03.
- ↑ 이이(李珥), 〈간원진시사소(諫院陳時事疏) 병인(丙寅)〉, 《율곡전서(栗谷全書)》,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01A_0040_010_0040,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 16권, 선조 15년 9월 1일 병진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b_11509001_001, 확인날짜=2026-10-03.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生靈塗炭”,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396, 확인날짜=2026-10-03.
-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塗炭の苦しみ”,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A1%97%E7%82%AD%E3%81%AE%E8%8B%A6%E3%81%97%E3%81%BF,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