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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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성대(太平聖代)는 어진 임금이 잘 다스려 태평한 세상이나 시대를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같은 뜻으로 태평성세(太平聖世)라고도 한다.[2]
전쟁이나 큰 혼란 없이 백성이 편안하게 사는 시대를 이르며, “지금이 태평성대인 줄 안다”처럼 걱정 없이 지내는 모습을 비꼬는 말로도 쓴다. ‘성대(聖代)’가 성스러운 임금의 시대를 뜻하므로, 원래는 훌륭한 임금의 다스림을 기리는 말이다. 유교에서는 요(堯)·순(舜)의 시대를 태평성대의 본보기로 여겼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같은 뜻으로 ‘태평성세(太平盛世)’를 쓴다. 《성어전(成語典)》은 이를 “천하가 안정되고 나라가 번성한 시대”로 풀고 청나라 소설 《아녀영웅전(兒女英雄傳)》 제30회를 용례로 든다.[3] 한국어의 태평성세는 ‘성할 성(盛)’이 아니라 ‘성인 성(聖)’을 쓴다는 점이 다르다. 일본어에서는 ‘성대(聖代)’를 “뛰어난 천자가 다스리는 세상”이라는 뜻으로 따로 쓰며, 《회풍조(懷風藻)》(751)에 첫 용례가 있다.[4]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태평(太平)’과 ‘성대(聖代)’를 합친 말이다. 네 글자 형태는 중국 문헌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조선 문헌에서 많이 쓰였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4건이 있는데, 가장 이른 것은 세종 때 기록이다.
1439년(세종 21) 12월, 병석에 누운 의정 허조(許稠)는 문병 온 도승지 김돈(金墩)에게 집안일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이렇게 당부했다.
我國北有野人,東有島夷,若一時俱亂,則此危殆之國也。當今諸臣爭謂太平聖代,孰有憂亂於未危者乎?願上軫慮,益備邊圉。
“우리나라는 북쪽에 야인이 있고 동쪽에 섬 오랑캐가 있으니, 한꺼번에 난을 일으키면 위태로운 나라가 됩니다. 지금 신하들은 다투어 태평성대라고 말하니, 위태로워지기 전에 난리를 걱정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임금께서 깊이 염려하시어 변방 방비를 더욱 튼튼히 하시기 바랍니다.” 세종은 이 말을 전해 듣고 “참으로 좋은 말이다”라고 했다.
1518년(중종 13) 4월 조강에서는 정언 양팽손(梁彭孫)이 “지금은 태평성대이고 공론이 행해지는 때(方今太平聖代,公論興行之時)”라고 말하자, 중종이 “지금 백성의 삶이 고달프고 재변이 끊이지 않으니, 태평성대라는 말은 해서는 안 될 말이다(太平聖代之言,所不當言也)”라고 받았다.[6] 두 기록 모두 태평성대를 자처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맥락에서 나온다.
문학에서는 권호문(權好文)의 연시조 〈독락팔곡(獨樂八曲)〉이 “태평성대 전야일민(太平聖代 田野逸民)”, 곧 ‘태평성대의 시골에 묻혀 사는 백성’이라는 구절로 시작한다.[7]
- 장애 한 번 없이 돌아가던 시절을 태평성대로 여기다가, 백업 서버가 한 번도 복구 시험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 세종 때를 흔히 조선의 태평성대로 꼽는다.
- 물가도 안정되고 일자리도 넉넉하니 태평성대가 따로 없다.
- 1632년에 태어난 윤추(尹推)는 이안눌(李安訥)의 《동악집(東嶽集)》을 읽다가 계해년(1623) 이전 4~5년 사이에 지은 시에 세상을 걱정하는 말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어찌 정말로 그때를 태평성대로 여겼단 말인가(豈眞以其時爲太平聖代耶)”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다.[8]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태평성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83%9C%ED%8F%89%EC%84%B1%EB%8C%80, 확인날짜=2026-09-30.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태평성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83%9C%ED%8F%89%EC%84%B1%EC%84%B8, 확인날짜=2026-09-30.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太平盛世”,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1237, 확인날짜=2026-09-30.
-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聖代”,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1%96%E4%BB%A3, 확인날짜=2026-09-3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87권, 세종 21년 12월 25일 기해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2112025_001, 확인날짜=2026-09-3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32권, 중종 13년 4월 18일 병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1304018_001, 확인날짜=2026-09-30.
- ↑ 권호문(權好文), 〈독락팔곡(獨樂八曲) 병서〉, 《송암집(松巖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89A_0170_000_0010, 확인날짜=2026-09-30.
- ↑ 윤추(尹推), 〈우열동악집 계해전사오년소작시권 무일상시개세지어 문인지무심가흠 기진이기시위태평성대야(偶閱東嶽集。癸亥前四五年所作詩卷。無一傷時慨世之語。文人之無心可欠。豈眞以其時爲太平聖代耶。)〉, 《농은유고(農隱遺稿)》,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06A_0010_010_0700, 확인날짜=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