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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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明鏡止水)는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는 뜻으로, 잡념과 가식, 헛된 욕심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비유하는 한자성어이다.[1]
먼지 없는 거울과 흔들림 없는 물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여기서 사사로운 감정이나 욕심에 흔들리지 않고 사물을 바르게 비추어 보는 고요한 마음을 가리키게 되었다.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 “명경지수의 심경”처럼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불교 용어로서 ‘잡념과 가식과 헛된 욕심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이라는 뜻도 따로 싣는다.[1]
일본어에서도 ‘明鏡止水(めいきょうしすい)’를 같은 뜻으로 흔히 쓴다.[2] 반면 대만 교육부 《성어전》에는 ‘明鏡止水’가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고, 비슷한 뜻으로 ‘심여지수(心如止水, 마음이 멈춘 물과 같다)’를 싣는다.[3]
‘고요한 물(止水)’과 ‘맑은 거울(鑑明)’의 비유는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에 나온다. 노나라에 형벌로 발이 잘린 왕태(王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를 따르는 사람이 공자의 제자만큼 많았다. 상계(常季)가 그 까닭을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人莫鑑於流水而鑑於止水。唯止,能止衆止。
“사람은 흐르는 물에 얼굴을 비추어 보지 않고 멈춘 물에 비추어 본다. 오직 멈춘 것만이 멈추려는 뭇사람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왕태의 마음이 고요한 물처럼 맑고 고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뜻이다.
같은 편에는 거울의 비유도 있다. 역시 발이 잘린 신도가(申徒嘉)는 정(鄭)나라의 재상 자산(子產)과 함께 백혼무인(伯昏無人)에게 배웠는데, 자산은 재상 신분을 내세워 “내가 먼저 나가면 자네는 남고,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남겠다”며 신도가와 함께 다니기를 꺼렸다. 신도가는 자산을 이렇게 나무랐다.
先生之門,固有執政焉如此哉?子而悅子之執政而後人者也?聞之曰:『鑑明則塵垢不止,止則不明也。久與賢人處則無過。』今子之所取大者,先生也,而猶出言若是,不亦過乎!
“선생의 문하에 이런 재상이 있었던가? 자네는 재상 자리를 뽐내며 남을 깔보는 사람이로군. 듣건대 ‘거울이 맑으면 먼지가 앉지 않고, 먼지가 앉으면 맑지 못하다. 어진 이와 오래 함께 지내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했네. 지금 자네가 크게 배우려는 것은 선생의 도인데, 아직도 이런 말을 하니 잘못이 아닌가.” 이어진 신도가의 말에 자산은 끝내 부끄러워하며 낯빛을 고쳤다(蹵然改容更貌).[4]
나무위키 등에는 이 대목을 자산이 위세를 부리는 신도가를 나무란 이야기로 소개한 경우가 있으나, 원문을 보면 재상 신분을 내세운 사람은 자산이고 그를 꾸짖은 사람은 신도가이다.[4]
전한의 《회남자(淮南子)》 〈숙진훈(俶眞訓)〉은 두 비유를 한데 묶었다.
人莫鑑於流沫,而鑑於止水者,以其靜也;莫窺形於生鐵,而窺於明鏡者,以睹其易也。
“사람이 흐르는 물거품에 비추지 않고 멈춘 물에 비추는 것은 그것이 고요하기 때문이고, 무쇠에 모습을 비추지 않고 맑은 거울에 비추는 것은 잘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국어대사전》은 명경지수가 이 구절에서 나온 말이라고 본다.[2]
네 글자 ‘明鏡止水’는 송나라 성리학자들의 글에 자주 보인다. 성인의 마음을 두고 정자(程子)가 “성인의 마음은 명경지수와 같다(聖人之心如明鏡止水)”고 했다는 말이 명나라 문헌에 인용되어 있고,[6] 주희(朱熹)도 하숙경(何叔京)에게 보낸 답장에서 “이른바 성인의 마음은 명경지수와 같아 천리가 온전하다는 것이 곧 (마음이) 보존된 곳(所謂聖人之心如明鏡止水,天理純全者,即是存處)”이라고 썼다.[7]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도 《주자어류》에 “성인의 마음은 명경지수와 같다”는 말이 있다고 적는다.[2] 사물이 오면 비추고 가면 남기지 않는 거울과 물처럼, 성인의 마음은 사사로운 뜻 없이 사물에 응한다는 뜻이다. 《장자》에서는 도가의 수양을 말한 비유였지만, 송대 이후에는 유학에서 마음공부의 이상을 가리키는 말로도 널리 쓰였다.
이황(李滉)은 제자 김부륜(金富倫, 자 惇敍)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부가 무르익으면 “마음이 사물에 대해 오기 전에는 맞이하지 않고, 올 때는 모두 비추며, 응한 뒤에는 머물러 두지 않아, 본체가 맑아 명경지수와 같다. 날마다 만 가지 일을 대해도 마음속에는 일찍이 한 물건도 없다(本體湛然。如明鏡止水。雖日接萬事。而心中未嘗有一物)”고 썼다.[8]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10여 건이 나온다. 가장 이른 것은 명종 10년(1555)으로, 명종이 야대(夜對)에서 참소에 현혹되지 않는 방법을 묻자 시독관 목첨(睦詹)이 “임금의 분별이 명경지수처럼 분명하면 곱고 추한 것이 비칠 때 형상을 감출 수 없다”고 답했다.[9]
일본에서는 《일본국어대사전》이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郎)의 《불랑제 장군의 비극》(1935~36)을 첫 용례로 든다.[2] 일본 정치사에서는 1934년 수뢰 의혹으로 문부대신을 사임한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郎, 뒤의 총리. 의혹은 뒤에 무고로 밝혀짐)와, 1989년 선거 참패 뒤 사임한 총리 우노 소스케(宇野宗佑)가 모두 “명경지수의 심경”이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2]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明 | 명 | 밝다 | 맑다 |
| 鏡 | 경 | 거울 | 거울 |
| 止 | 지 | 그치다 | 멈추어 고요하다 |
| 水 | 수 | 물 | 물 |
- 장애 대응 회의에서는 책임 공방을 접고 명경지수의 마음으로 로그부터 차분히 살펴야 한다.
- 그는 판결을 앞두고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으로 사건 기록을 다시 읽었다.
- 심여지수(心如止水): 마음이 멈춘 물과 같이 바깥 사물에 흔들리지 않음. 백거이의 〈제이시랑문(祭李侍郎文)〉에 나온다.[3]
- 허심탄회(虛心坦懷): 마음에 거리낌 없이 솔직한 태도.
- 무념무상(無念無想): 모든 생각을 떠나 마음이 빈 상태.
- 청심과욕(淸心寡欲):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줄임.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명경지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A%85%EA%B2%BD%EC%A7%80%EC%88%98,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2.2 2.3 2.4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明鏡止水”,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8%8E%E9%8F%A1%E6%AD%A2%E6%B0%B4,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心如止水”,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707, 확인날짜=2026-09-27.
- ↑ 4.0 4.1 4.2 4.3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
- ↑ 《회남자(淮南子)》 〈숙진훈(俶眞訓)〉.
- ↑ 황종희(黃宗羲) 편, 《명문해(明文海)》 권164.
- ↑ 주희(朱熹), 〈답하숙경(答何叔京)〉. 《경제문형(經濟文衡)》 전집 권15에 인용.
- ↑ 이황(李滉), 〈답김돈서(答金惇敍)〉 계축, 《퇴계집(退溪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18권, 명종 10년 2월 15일 경진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ma_11002015_001,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