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불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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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불립(無信不立)은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으로, 개인이나 나라나 신의가 없으면 존립할 수 없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논어》 〈안연(顏淵)〉에서 공자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백성의 믿음을 꼽은 말에서 나왔다.[1]
정치·외교·기업 경영처럼 여러 사람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자리에서, 무엇보다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자주 인용된다. 정부나 정치인이 약속을 뒤집어 불신을 샀을 때 이를 꾸짖는 말로도 많이 쓴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는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
원문은 “民無信不立(백성이 믿지 않으면 서지 못한다)”이고, 한국에서는 앞의 ‘民’을 뺀 네 글자로 굳어 쓴다. 중국어에서는 원문대로 ‘民無信不立’이라고 하거나, 개인의 처신에 빗대어 ‘人無信不立’이라고 한다. 일본어에서는 ‘民信無くば立たず(たみしんなくばたたず)’라고 한다.[2]
《논어》 〈안연〉에서 제자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3]
子貢問政。子曰:「足食,足兵,民信之矣。」子貢曰:「必不得已而去,於斯三者何先?」曰:「去兵。」子貢曰:「必不得已而去,於斯二者何先?」曰:「去食。自古皆有死,民無信不立。」
“자공이 정치를 묻자 공자가 말했다. ‘먹을 것을 넉넉히 하고, 군비를 넉넉히 하면, 백성이 믿을 것이다.’ 자공이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면 이 셋 가운데 무엇을 먼저 버립니까?’ ‘군비를 버린다.’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면 이 둘 가운데 무엇을 먼저 버립니까?’ ‘먹을 것을 버린다. 예부터 누구에게나 죽음은 있지만, 백성이 믿지 않으면 설 수 없다.’”[3]
‘民無信不立’은 누가 무엇을 믿는지, 무엇이 ‘서지 못하는지’를 두고 풀이가 갈렸다. 흔히 ‘백성이 위정자를 믿지 않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로 풀지만, 주희(朱熹)의 《논어집주》는 다음과 같이 풀었다.[4]
民無食必死,然死者人之所必不免。無信則雖生而無以自立,不若死之為安。故寧死而不失信於民,使民亦寧死而不失信於我也。
“백성은 먹을 것이 없으면 반드시 죽지만, 죽음은 사람이 끝내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비록 살아 있어도 스스로 설 수 없으니 차라리 죽는 것이 편안하다. 그러므로 위정자는 죽을지언정 백성에게 신의를 잃지 않고, 백성 또한 죽을지언정 나에게 신의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4] 주희는 믿음을 위정자와 백성이 서로 지키는 것으로 보았고, 이어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해 “공자의 제자 가운데 이렇게 끝까지 캐물을 수 있는 이는 자공뿐이고, 이렇게 답할 수 있는 이는 성인뿐”이라고 덧붙였다. 청나라 모기령(毛奇齡)은 《사서잉언(四書賸言)》에서 주희의 ‘스스로 설 수 없다’는 풀이가 무슨 뜻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5]
《삼국지연의》 제11회에서 유비는 공융(孔融)과 함께 서주의 도겸(陶謙)을 구하러 가기로 하고, 공손찬에게 군사를 빌려 뒤따르겠다고 약속한다. 공융이 “부디 신의를 잃지 마시라”고 당부하자 유비는 이렇게 답한다.[6]
公以備為何如人也?聖人云:『自古皆有死,人無信不立。』劉備借得軍,或借不得軍,必然親至。
“공께서는 저를 어떤 사람으로 보십니까? 성인께서 ‘예부터 누구에게나 죽음이 있지만, 사람은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유비는 군사를 빌리든 못 빌리든 반드시 몸소 가겠습니다.” 여기서는 원문의 ‘民’이 ‘人’으로 바뀌어, 나라의 정치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신의를 말하는 뜻으로 쓰였다. 오늘날 개인의 약속을 강조할 때 쓰는 무신불립은 이 쓰임에 가깝다.
- 장애 사실을 숨긴 서비스는 무신불립이라, 기술보다 신뢰 회복이 먼저였다.
- 보안 사고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무신불립의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 공약을 번번이 뒤집는 정치에 국민은 무신불립을 떠올린다.
- ↑ 참고: “[NIE] 고사성어”, 전북일보, 2010년 9월 1일, https://www.jjan.kr/article/20100901367617, 확인날짜=2026-10-10.
- ↑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 “民信無くば立たず”,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B0%91%E4%BF%A1%E7%84%A1%E3%81%8F%E3%81%B0%E7%AB%8B%E3%81%9F%E3%81%9A, 확인날짜=2026-10-10.
- ↑ 3.0 3.1 《논어(論語)》 〈안연(顏淵)〉.
- ↑ 4.0 4.1 주희(朱熹), 《논어집주(論語集注)》 〈안연〉.
- ↑ 모기령(毛奇齡), 《사서잉언(四書賸言)》 보권2.
- ↑ 나관중(羅貫中), 모종강(毛宗崗) 평,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11회.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無信不立’ 23건), 확인날짜=2026-10-1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05권, 성종 10년 6월 9일 갑오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006009_002, 확인날짜=2026-10-10.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人而無信,不知其可”,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2620, 확인날짜=202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