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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부작(述而不作)은 있는 그대로 기술할 뿐 새로 지어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학자의 겸손한 자세와 객관적 태도를 강조하여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논어》 〈술이(述而)〉 첫머리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옛것을 풀어 전할 뿐(述) 새로 지어내지 않는다(不作)’는 말이다. 공자가 자신의 학문 태도를 밝힌 말로, 앞선 성현의 가르침을 충실히 전하는 데 힘쓰고 자기 생각을 함부로 덧붙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역사 서술, 고전 번역·주석, 기록 문학처럼 원자료를 왜곡하지 않고 전달해야 하는 일에서 원칙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반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옛것만 되풀이한다는 비판의 뜻으로 쓰기도 한다.

같은 한자로 중국어에서도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앞사람의 옛 견문을 엮어 서술하고 새로운 설을 창작하지 않음”으로 풀이한다.[2] 일본어에서는 ‘述べて作らず(のべてつくらず)’라고 읽는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述 술 펴다, 짓다 옛것을 이어 풀어 전하다
而 이 말 잇다 ~하되, ~할 뿐
不 부 아니다 ~하지 않다
作 작 짓다 새로 지어내다, 창작하다

《논어》 〈술이〉의 첫 장이다. 〈술이〉라는 편 이름도 이 장의 첫 두 글자를 딴 것이다.[4]

子曰:「述而不作,信而好古,竊比於我老彭。」

“공자가 말했다. ‘풀어 전할 뿐 지어내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하니, 가만히 우리 노팽(老彭)에게 견주어 본다.’”[4]

주희(朱熹)는 《논어집주》에서 “술(述)은 옛것을 전할 뿐이고, 작(作)은 처음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은 성인이 아니면 할 수 없고, 술은 현자라면 미칠 수 있다(述,傳舊而已。作,則創始也。故作非聖人不能,而述則賢者可及)”고 풀었다. 노팽에 대해서는 “상(商)나라의 어진 대부로 《대대례(大戴禮)》에 보이며, 옛것을 믿고 전술한 사람”이라고 했다.[5] 이어 공자가 《시경》과 《서경》을 산정하고, 예악을 정하고, 《주역》에 찬(贊)을 붙이고, 《춘추》를 닦은 것이 모두 옛 성왕의 것을 전한 일이지만, 여러 성인의 업적을 모아 집대성했으므로 하는 일은 ‘술’이어도 그 공은 ‘작’보다 크다고 덧붙였다.[5] 공자의 이 말은 겸손의 말이면서, 동시에 옛 문화를 계승한다는 자부를 담은 말로도 읽힌다.

역사 서술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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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작’의 구분은 뒤에 역사 서술의 태도를 말하는 기준이 되었다. 사마천(司馬遷)은 〈태사공자서〉에서 상대부 호수(壺遂)가 《사기》를 《춘추》에 견주자 이렇게 답했다.[6]

余所謂述故事,整齊其世傳,非所謂作也,而君比之於春秋,謬矣。

“내가 하는 일은 옛일을 서술하고 대대로 전하는 것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이지 이른바 ‘작’이 아닌데, 그대가 이를 《춘추》에 견주는 것은 잘못이다.” 후한의 왕충(王充)도 《논형(論衡)》 〈대작(對作)〉에서 “오경이 일어난 것은 작이라 할 수 있고, 태사공의 《서》, 유자정(劉子政)의 《서》, 반숙피(班叔皮)의 《전》은 술이라 할 수 있다(五經之興,可謂作矣。太史公書、劉子政序、班叔皮傳,可謂述矣)”며 작·술·논(論)을 구분했다.[7]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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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이 말은 학문과 저술의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정조는 22년(1798) 경연에서 “공자께서 일찍이 ‘술이부작’이라 하셨는데, 나의 평생 공부는 한 질의 주자서(朱子書)에 있다”며, 스무 살 때부터 《주서회선(朱書會選)》을 엮고 《주자어류》에 구두를 다는 등 주희의 글을 정리해 온 일을 회고했다.[8]

이 말은 조선 후기 노론과 소론이 갈라선 ‘회니시비(懷尼是非)’에도 얽혀 있다. 송시열(宋時烈)이 윤증(尹拯)의 아버지 윤선거(尹宣擧)의 묘갈명을 지으면서, 평소 자신이 칭찬하던 말로 평가하지 않고 박세채(朴世采)가 지은 행장의 말을 빌려 매듭지은 뒤 명(銘)에 “술이부작”이라는 말을 붙였다. 윤증 쪽은 이를 ‘전할 뿐 내 말로 짓지 않았다’며 성의 없이 거리를 둔 것으로 받아들였다. 숙종 42년(1716) 윤증의 문인 최석문(崔錫文) 등은 상소에서 “명에 다시 술이부작을 이어 붙였으니, 마음속에 불평을 품지 않았다면 그 말이 어찌 이처럼 소략하고 성의 없겠는가”라고 따졌다.[9] 숙종은 같은 해 묘갈명 등을 살펴본 뒤 윤증의 잘못으로 판정하는 병신처분(丙申處分)을 내렸다.[10]

  • 장애 보고서는 술이부작의 태도로 써야 한다. 확인된 사실만 시간순으로 적고 추측은 따로 표시한다.
  • 이 번역서는 원문의 뜻을 충실히 옮기는 술이부작의 원칙을 지켰다.
  • 다큐멘터리 감독은 술이부작을 강조하며 인터뷰 내용을 편집으로 비틀지 않았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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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이호고(信而好古): 옛것을 믿고 좋아함. 같은 장의 다음 구절.
  •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앎.
  •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만듦.
  • 반대 의미: 표신입이(標新立異): 새롭고 기발한 주장을 내세워 남과 다름을 드러냄.[11]
  1.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술이부작”,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C%88%A0%EC%9D%B4%EB%B6%80%EC%9E%91, 확인날짜=2026-10-10.
  2.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述而不作”,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956, 확인날짜=2026-10-10.
  3. ↑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述べて作らず”,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BF%B0%E3%81%B9%E3%81%A6%E4%BD%9C%E3%82%89%E3%81%9A, 확인날짜=2026-10-10.
  4. ↑ 4.0 4.1 《논어(論語)》 〈술이(述而)〉.
  5. ↑ 5.0 5.1 주희(朱熹), 《논어집주(論語集注)》 〈술이〉.
  6. ↑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권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7. ↑ 왕충(王充), 《논형(論衡)》 권29 〈대작(對作)〉.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48권, 정조 22년 4월 19일 계축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2204019_001, 확인날짜=2026-10-10.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57권, 숙종 42년 3월 3일 갑오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4203003_003, 확인날짜=2026-10-10.
  10.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병신처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6408, 확인날짜=2026-10-10.
  11.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標新立異”,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653, 확인날짜=202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