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작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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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작라(門前雀羅)는 문 앞에 참새 그물을 칠 수 있을 만큼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권력이나 재물을 잃은 뒤 발길이 끊겨 집 앞이 쓸쓸해진 모습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문전작라는 사람들이 권세를 좇아 모였다가 권세가 사라지면 등을 돌리는 세태를 꼬집을 때 주로 쓴다. 지금은 뜻이 넓어져 가게, 행사장, 관광지처럼 사람이 찾지 않아 한산한 곳을 묘사할 때도 쓴다. 사람이 몰려 붐빈다는 문전성시(門前成市)와 뜻이 반대이다.
중국어에서는 같은 이야기에서 나온 ‘문가라작(門可羅雀, 문에 참새 그물을 칠 만하다)’을 주로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門可羅雀’를 표제어로 올리고, ‘나작문정(羅雀門庭)’, ‘문가장라(門可張羅)’를 같은 뜻의 말로 든다.[2] 일본어에서는 ‘門前雀羅を張る(もんぜんじゃくらをはる, 문 앞에 참새 그물을 치다)’라는 관용 표현으로 쓴다.[3]
《사기(史記)》 권120 〈급정열전(汲鄭列傳)〉 끝에 붙은 사마천의 논평에서 나온 말이다.[4]
太史公曰:夫以汲、鄭之賢,有勢則賓客十倍,無勢則否,況眾人乎!下邽翟公有言,始翟公為廷尉,賓客闐門;及廢,門外可設雀羅。翟公復為廷尉,賓客欲往,翟公乃大署其門曰:「一死一生,乃知交情。一貧一富,乃知交態。一貴一賤,交情乃見。」汲、鄭亦云,悲夫!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는 한 무제 때 높은 벼슬에 올라 손님이 끊이지 않았지만, 관직을 잃자 찾아오는 사람이 사라졌다. 사마천은 여기에 하규(下邽) 사람 적공(翟公)의 일을 덧붙였다. 적공이 형옥을 맡은 정위(廷尉)로 있을 때는 손님이 문을 메웠으나, 물러나자 “문밖에 참새 그물을 칠 만했다(門外可設雀羅)”. 뒤에 다시 정위가 되자 손님들이 찾아오려 했고, 적공은 대문에 큰 글씨로 “한 번 죽고 한 번 살아 보아야 사귐의 정을 알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유해 보아야 사귐의 태도를 알며,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해 보아야 사귐의 정이 드러난다”라고 써 붙였다.
《성어전》은 이 대목을 ‘門可羅雀’의 근원으로 보고, 처음에는 벼슬하던 사람이 세력을 잃은 뒤 손님이 드물어진 모습을 가리키다가 뒤에 일반적으로 찾는 사람이 적은 한산한 모습을 두루 이르게 되었다고 풀이한다.[2]
‘門前雀羅’라는 네 글자 형태는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우의시(寓意詩)〉 다섯 수 가운데 둘째 수에 나온다. 벼슬이 높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먼 곳으로 쫓겨나자 손님이 흩어진 모습을 읊은 구절이다.[5]
親戚不得別,吞聲泣路旁。賓客亦已散,門前雀羅張。
“친척들은 작별도 못 하고 길가에서 소리 죽여 울고, 손님들도 이미 흩어져 문 앞에는 참새 그물이 쳐졌네.”
《조선왕조실록》 명종 7년(1552) 9월 3일 기사에는 조사수(趙士秀)를 이조 참판으로 삼으면서 사관이 붙인 평이 있다. 사관은 그가 청렴하고 곧아서 조정에 선 지 20년 동안 가난한 선비의 집처럼 쓸쓸했고, 인사를 맡은 이조에 있으면서도 “참새 그물을 칠 만했다(雀羅可張)”라고 적었다.[6] 원래는 세력을 잃은 쓸쓸함을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청탁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만큼 깨끗했다는 칭찬으로 썼다.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門 | 문 | 문 | 집의 대문 |
| 前 | 전 | 앞 | 대문 앞 |
| 雀 | 작 | 참새 | 참새 |
| 羅 | 라 | 그물, 벌이다 | 새를 잡는 그물 |
‘雀羅’는 참새를 잡는 그물이다. 사람의 발길이 끊겨 새가 내려앉을 정도가 되었다는 과장된 표현이다.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다이쇼 시대에 ‘門前雀羅’가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門前市を成す(문전성시)’와 혼동되어 ‘북적인다’는 뜻으로 잘못 쓰인 일이 있었다. 이 사전은 스스키다 규킨(薄田泣菫)의 수필 《차화(茶話)》(1918)에 호황을 뜻하는 말로 쓰인 예가 소개되어 있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주유의 말(侏儒の言葉)》에서 통하기만 한다면 그렇게 써도 된다며 이런 변화를 두둔했다고 설명한다.[3]
- 서비스 종료가 공지되자 늘 붐비던 사용자 게시판이 한 달 만에 문전작라가 되었다.
- 폐기 예정이라고 공지한 구버전 API의 호출 로그를 보니 이미 문전작라였다.
- 자리에서 물러나 문전작라의 처지가 되고 나서야 누가 진짜 벗인지 알게 되었다.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문전작라”,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B%AC%B8%EC%A0%84%EC%9E%91%EB%9D%BC, 확인날짜=2026-09-26.
-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門可羅雀”,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5, 확인날짜=2026-09-26.
- ↑ 3.0 3.1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門前雀羅”,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96%80%E5%89%8D%E9%9B%80%E7%BE%85, 확인날짜=2026-09-26.
- ↑ 사마천, 《사기》 권120 〈급정열전(汲鄭列傳)〉.
- ↑ 백거이, 〈우의시(寓意詩)〉 제2수,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 권2.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13권, 명종 7년 9월 3일 임오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ma_10709003_003,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