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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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성시(門前成市)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집 문 앞이 시장을 이루다시피 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한서(漢書)》 〈정숭전(鄭崇傳)〉의 이야기에서 나온 말로 알려져 있다.[1]
원래는 권세 있는 사람의 집에 청탁하거나 줄을 대려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을 가리켰다. 오늘날에는 이런 부정적인 어감이 옅어져, 맛집·전시회·행사장·상점처럼 손님이 몰려 붐비는 모습을 두루 이를 때 쓴다. 반대말은 문 앞에 참새 그물을 칠 만큼 한산하다는 문전작라(門前雀羅)이다.
중국어에서는 ‘문정약시(門庭若市)’를 주로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門庭若市’를 표제어로 올리고 ‘문전여시(門前如市)’, ‘문정여시(門庭如市)’를 같은 뜻의 말로 들지만, ‘門前成市’는 싣지 않았다.[2] 일본어에서는 ‘門前市を成す(もんぜんいちをなす)’라는 관용 표현으로 쓴다.[3]
《한서》 권77 〈정숭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4] 정숭(鄭崇)은 전한 애제(哀帝) 때 상서복야(尙書僕射)로 있으면서 여러 차례 바른말을 올렸다. 애제가 외척인 부태후(傅太后)의 사촌 부상(傅商)을 제후로 봉하려 하자 반대했고, 애제가 총애하는 동현(董賢)에 대한 대우가 지나치다고 간했다가 태후와 황제의 눈 밖에 났다. 평소 정숭을 미워하던 상서령 조창(趙昌)은 이 틈을 타 정숭이 종친들과 내통하며 나쁜 일을 꾸미는 듯하니 조사하라고 아뢰었다. 애제가 정숭을 불러 꾸짖자 정숭은 이렇게 답했다.
上責崇曰:「君門如市人,何以欲禁切主上?」崇對曰:「臣門如市,臣心如水。願得考覆。」上怒,下崇獄,窮治,死獄中。
“그대의 집 문 앞은 시장처럼 사람이 붐빈다는데, 무슨 까닭으로 임금을 가로막고 몰아세우려 하는가?” “신의 문은 시장과 같을지라도 신의 마음은 물과 같습니다. 조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애제는 노하여 정숭을 옥에 가두고 끝까지 캐물었고, 정숭은 옥중에서 죽었다. 사예교위 손보(孫寶)가 조창이 정숭을 모함했다며 조창을 조사하라고 글을 올렸지만, 오히려 손보가 벼슬에서 쫓겨났다.[4]
곧 원문의 말은 ‘君門如市’, ‘臣門如市’이며, 권세가의 집에 사람이 몰린다는 것은 원래 청탁과 결탁을 의심하는 말이었다. 정숭의 대답 “臣門如市,臣心如水”는 뒤에 청렴을 다짐하는 말로 자주 인용되었다. 명나라 형부 시랑 요장(廖莊)은 손님이 늘 방에 가득하여 주위에서 교제를 줄이라고 권하자 “신의 문은 시장 같아도 신의 마음은 물 같으니, 나는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을 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5]
‘門前成市’라는 네 글자는 한문 전적에서는 드물다. 한문 전적 전문 검색에서 찾을 수 있는 예는 네 건뿐인데, 청나라 포송령(蒲松齡)의 《요재지이(聊齋志異)》 〈유량채(劉亮采)〉에서 협객 기질의 주인공 집에 손님이 몰려 “술과 떡을 파는 사람들까지 와서 문 앞이 시장을 이루었다(貨酒賣餅者,門前成市焉)”는 구절이 있고,[7] 나머지는 일본 한문이다. 그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은 일본 헤이안 시대의 문인 다치바나노 나오모토(橘直幹)가 954년 민부대보(民部大輔) 겸임을 청하며 올린 신문(申文)에 나오는 “당 위는 꽃과 같고 문 앞은 시장을 이룬다(堂上如華,門前成市)”라는 구절이다. 이 글은 《본조문수(本朝文粹)》에 실려 있다.[8]
한국 문헌에서는 조선 시대 문집 원문(한국고전종합DB)과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門前成市’가 검색되지 않는다. 다만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문과 역주에서는 ‘문전성시’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예를 들어 장유의 《계곡집》 역주는 적공 고사를 설명하며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더니”라고 썼는데, 이는 번역자의 말이다.[9] 조선의 한문에서는 ‘門庭如市’, ‘門如市’ 같은 형태를 썼다.
- 《세종실록》 세종 32년(1450) 윤1월 29일 기사의 사관은 이현로(李賢老)가 병조 정랑으로 인사를 맡아 뇌물을 많이 받아 “문과 뜰이 시장 같았다(門庭如市)”고 적었다.[10]
- 단종 1년(1453) 하위지(河緯地)는 수양대군의 천거로 자신의 품계를 올려 준 것을 사양하는 상소에서, 벼슬과 작위는 나라의 공기(公器)인데 가볍게 주면 “사사로운 문이 시장 같다는 탄식(私門如市之嘆)”이 생긴다고 했다.[11]
두 예 모두 권세가의 문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 것으로, 《한서》의 원래 어감과 같다.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門 | 문 | 문 | 집의 대문 |
| 前 | 전 | 앞 | 앞 |
| 成 | 성 | 이루다 | 이루다 |
| 市 | 시 | 시장, 저자 | 시장처럼 붐비는 곳 |
- 새 버전 출시 첫날 고객 지원 게시판이 문의 글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 개업 첫 주 내내 가게 앞은 줄을 선 손님들로 문전성시였다.
- 인사철이 되자 그의 집은 청탁하러 온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 정숭이 애제에게 지나치다고 간한 총신 동현은 《한서》 〈영행전(佞幸傳)〉에 실린 인물이다. 애제가 낮잠을 자다 먼저 깼을 때 동현이 자기 소매를 깔고 자고 있자, 그를 깨우지 않으려고 소매를 자르고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이 전에 나오며(乃斷袖而起), 여기서 ‘단수(斷袖)’라는 말이 나왔다.[12]
- 문전성시와 문전작라가 한 사람에게 차례로 일어난 이야기로 《사기》 〈급정열전〉의 적공(翟公) 고사가 자주 함께 소개된다. 적공이 정위로 있을 때는 손님이 문을 메웠다가 물러나자 문밖에 참새 그물을 칠 만했고, 다시 정위가 되자 손님들이 몰려오려 해서 대문에 사귐의 참모습을 꼬집는 글을 써 붙였다고 한다.[13] 자세한 내용은 문전작라 문서에 있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문전성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C%B8%EC%A0%84%EC%84%B1%EC%8B%9C, 확인날짜=2026-09-26.
- ↑ 2.0 2.1 2.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門庭若市”,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27, 확인날짜=2026-09-26.
-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속담을 아는 사전(ことわざを知る辞典)》, “門前市を成す”,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96%80%E5%89%8D%E5%B8%82%E3%82%92%E6%88%90%E3%81%99, 확인날짜=2026-09-26.
- ↑ 4.0 4.1 반고, 《한서》 권77 〈개제갈유정손무장하전(蓋諸葛劉鄭孫毋將何傳)〉 중 〈정숭전〉.
- ↑ 《흠정고금도서집성(欽定古今圖書集成)》 〈명륜휘편·관상전(明倫彙編·官常典)〉 권328.
- ↑ 《전국책(戰國策)》 〈제책 1(齊策一)〉.
- ↑ 포송령, 《요재지이(聊齋志異)》 권6 〈유량채(劉亮采)〉.
- ↑ 《일본대백과전서(日本大百科全書)》, “橘直幹”,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A9%98%E7%9B%B4%E5%B9%B9-1089490, 확인날짜=2026-09-26.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장유, 《계곡선생집》 권34 역주,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333A_0350_010_0180, 확인날짜=2026-09-2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27권, 세종 32년 윤1월 29일 갑술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3201129_002, 확인날짜=2026-09-2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단종실록》 6권, 단종 1년 4월 22일 기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fa_10104022_001, 확인날짜=2026-09-26.
- ↑ 반고, 《한서》 권93 〈영행전(佞幸傳)〉 중 〈동현전〉.
- ↑ 사마천, 《사기》 권120 〈급정열전(汲鄭列傳)〉.